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은둔형 외톨이, 얼마나 아시나요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사회가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걸 보고 차라리 ‘맞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크니까 관심과 대책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 아니니까,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편견을 덧씌우는 일이니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범죄와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외톨이와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둔하는 외톨이들이 각각 다 다른 상황과 이유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데 그걸 뭉뚱그려 반사회적 행동과 결부시키는 건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공식적 현황 통계조차 없어

여 원장은 국내에서 공공차원에서는 유일하게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한 연구조사 책임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13년 전인 2005년 당시 청소년위원회(국무총리실 산하)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은둔형 부적응 성향을 가진 비율을 조사하면서 여 원장과 연구진은 국내의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한 바 있다. 당시 고교생 중 위험군 비율이 2.3%로 약 4만3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수치를 근거로 전체 인구 중에서는 30만~50만명이 은둔형 외톨이일 수 있다는 ‘추정치’를 조심스럽게 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수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더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대로 실제 수치인 것처럼 굳어졌다. 은둔형 외톨이의 특성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행정력을 동원한 정부 차원의 공신력 있는 조사가 필요했지만 후속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간의 눈길에서는 멀어져 있다고 해서 은둔형 외톨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겪는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와 가족들이다. 대학생 김지훈씨(27·가명)는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공부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집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했다. 검정고시에 이어 대학에 합격한 뒤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도 수업 외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기는 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때로 만나기도 하는 등 은둔한 외톨이의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하기 전 다시 본가로 돌아가면서 본격적인 은둔이 시작됐다. 불화가 있던 집안 상황에다 딱히 친밀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어 게임과 인터넷 활동을 하며 방 안에만 박혀 있던 습관이 사회복무기간 중에도 종종 도졌다. 근무지와 담당업무를 바꾸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의무복무기간은 마쳤다. 대학에 복학할 의욕도, 일자리를 찾을 생각도 없이 보낸 세월이 1년을 넘기는 동안에도 스스로가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느날 집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나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보니 어머니가 울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는 김씨는 “그때 내가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 깨닫긴 했는데 막상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니 막막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서 그렇게 또 몇 달을 보냈다”고 말했다. 상담을 받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김씨는 다시 대학에 돌아갈 결심을 했다. 아직도 인간관계나 취업이 장벽처럼 느껴지지만 적어도 집 현관을 나설 때마다 누가 발목을 잡는 듯 불안이 도지던 상황은 극복한 상태다.

전문가들의 기준에 따르면 김씨는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되는 경계선상에서 생활하다 한동안 정도가 심해졌고 다시 회복 중인 상태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공식 통계나 조사가 없는 만큼 학계에서도 은둔형 외톨이를 정의내리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체로는 최소한의 사회적 접촉 없이 3개월(일본의 경우 6개월) 이상 집 안에만 머무르면서 외부 활동이나 인간관계를 피하고, 자신의 은둔상태에 불안감이나 초조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를 은둔형 외톨이로 본다. 여 원장은 “스스로 외톨이 생활에 만족하면서 프리랜서와 같은 식으로 일정한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면 은둔형 외톨이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은둔형 외톨이의 현실을 묘사한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의 한 장면./두산아트센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책 없는 정부에 시행착오 겪는 가족들

지금 국내의 은둔형 외톨이 현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누구도 파악하지 못하는 점은 단순히 이들을 위한 지원대책이 없다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발적 외톨이나 반대로 위험 소지가 있는 반사회적 외톨이를 은둔형 외톨이와 구분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이 문제의 정도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업이나 취업 등 진로문제나 연애, 인간관계 등으로 좌절을 겪은 경험에서 회복을 하지 못한 채 침체된 생활에 빠져들게 된다. 여기에 이들을 밖으로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반항심을 일으키게 하면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불안한 고립’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진단과 대응이 없이 방치될수록 이 기간이 길어질 소지도 커진다.

특히 한국보다 먼저 ‘히키코모리’ 문제에 관한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했던 일본과는 달리 구체적인 진단을 내리기 힘든 국내에서는 부모들의 시행착오도 큰 편이다. 공동생활과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참여와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인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오쿠사 미노루 매니저는 “일본에서도 히키코모리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던 초기에는 부모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 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부모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져 자녀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걸 인정하고 대책을 찾는 모습이 일반적”이라며 “한국에서도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고 있지만 참여자는 소수라 아직은 부모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자책만 하고 막상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부모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나 지자체, 의회 차원의 노력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시의회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을 위한 조례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다. 당시 조례안을 대표발의한 김미경 시의원이 올해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으로 당선된 서울 은평구를 비롯해 경기 군포시 등에서만 관내 보건소를 통한 방문상담 사업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안팎 청소년들의 경우 학교를 통한 실태조사나 현황 파악이 가능하고 청소년 전문 상담센터와 연계한 대책도 나올 수 있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장기적인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외톨이들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가 될 위험요인이 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대책이 주효할 수 있지만 성인 은둔형 외톨이들은 심리적인 문제 외에도 일자리 같은 경제적인 문제까지 진단과 대책이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상담과 치료를 넘어서 적응과 직업훈련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관련부처와 기관들이 참여하는 지역별 ‘허브’와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애선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은둔형 청소년들의 경우 그 연령적인 특성에 맞춰 ‘예방’과 ‘구출 및 지원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한 사람이나 한 기관 차원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관기관들이 긴밀하게 협력체제를 이룰 때 실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찾고 지원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