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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뒤끝뉴스] 가짜 공인중개사 사기, 문제는 장롱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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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부동산 중개사무소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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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줄 테니 빌려달라는 사람이 꽤 있죠.”

2016년 공인중개사가 된 직장인 이모(27)씨는 최근 지인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공인중개사자격증을 빌려주면 매달 30만원을 입금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씨는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취득했기에 공인중개업에 종사하지 않는 지금은 자격증을 쓸 일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장롱 면허’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자격증 대여는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부동산중개사무소를 개업하지 않는 이상 공인중개사 대부분은 장롱 면허 소지자”라며 “빌려주기만 하면 돈을 받는다는 말에 쉽게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자격자가 공인중개사에게 자격증을 빌려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영업하며 사기를 벌이는 사건이 수년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수시로 단속 점검을 나서고 분기별로 보고서까지 제출하고 있지만, 근절까지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입니다.

최근 서울 도봉경찰서는 2013년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며 전ㆍ월세 이중계약 등의 수법으로 14명에게서 총 10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공인중개법 위반)로 김모(48)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3명에게 월 100만~150만원씩 자격증 대여료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4월에는 부산 해운대경찰서가 불법으로 빌린 공인중개사자격증으로 2년간 신혼부부 등 14명에게 받은 전세보증금 총 8억4,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부동산중개업소 소장(39) 등 2명을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단속 건수는 미비한 실정입니다. 서울시가 2016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단속한 공인중개사자격증 불법 대여는 불과 16건에 불과합니다. 2만4,300여개에 달하는 서울 내 부동산중개사무소 수를 고려하면 큰 문제로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자체 이야기는 수치와 조금 다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청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담당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며 “구청 직원과 함께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봉경찰서 관계자 또한 “지자체에서 불법 대여의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자격증을 빌려주고 출근하지 않던 공인중개사가 단속만 나가면 사무소에 떡 하니 앉아있더라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우선, 40만개에 달하는 공인중개사자격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는 10만6,000명 정도”라며 “30만개에 달하는 자격증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스레 불법 대여를 유혹하는 사기꾼들이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상 소득이 없는 학생이나 전업주부, 은퇴자가 많이 당한다고 합니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절대평가로 진행되는 시험을 상대평가로 바꾸거나, 시험 과목을 늘려 무분별한 공인중개사 배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자격증 대여가 단순히 벌금 몇 만원으로 끝나는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공인중개사들이 인식해야 합니다. 무자격자가 자격증을 빌려 사기를 벌여도, 민사적 책임은 그 자격증을 빌려준 공인중개사가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방문하는 시민들은 거래를 도와주는 공인중개사가 자격증에 적힌 인물과 동일한지 비교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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