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금액 적어 성매수 아냐" 주장에 법원 대답은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그림은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대 남성 A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난 B양(당시 14세)과 수개월에 걸쳐 성관계를 하며 이따금씩 1만~3만원을 빌려줬다.

A씨는 청소년 성매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년여의 재판 과정 내내 "성매매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돈을 빌려준 것도 맞고, 성관계를 한 것도 맞지만 성관계 대가로 준 돈이 아니란 주장이다. B양도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한 것이고, 돈은 그냥 빌려줬다"며 A씨의 선처를 탄원했다.

1심 "그냥 빌려준 돈 아냐…성매매 묵시적 합의"
중앙일보

채팅·SNS 어플리케이션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건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2016년 6월, A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B양을 알게됐다. SNS로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A씨는 노골적인 성적 질문을 던지며 만나자고 했다. B양은 "나중에요" "이번 주는 바빠서" 등 소극적으로 답하다 결국 A씨와 만난다. 처음 만나기로 한 날 B양은 갑자기 "3만원만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A씨는 "빌려주는 대신 자주 만나 놀자"고 한다.

법원은 이 날 "둘 사이 3만원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하는 것에 대한 묵시적 합의"를 했다고 본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부장 노호성)는 "A씨는 B양과 처음 만난 날 B양의 거주지에서 성관계를 하면서 3만원을 빌려줬고, 만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헤어졌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그 날 이후 "만원만" "2만원만" 하는 B양과 "돈을 빌려주면 성노예 되는거야" "갚을 때까지 매일 성관계 하는거야" 하는 A씨의 관계는 4개월간 이어졌다. A씨는 "주인님처럼 잘 모셔라" "시키는 것 다 해라"며 점점 더 대담한 발언들을 했고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다. (A씨는 B양에 대한 성희롱·촬영 혐의로도 기소됐다.)

"연인관계" "역할놀이" 주장했지만…法"둘 다 아니다"
중앙일보

그림은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는 "B양과 연인관계였고, '주인과 노예' 역할놀이의 일환으로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성관계를 요구하는 설정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양은 A씨에게 돈을 빌릴 때만 연락을 했고, A씨의 자극적인 문자에 대해 소극적으로 일관했으며, '넌 나의 노예'라는 말이 짜증났다고 하는 걸 보면 B양이 역할놀이에 참여했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B양은 "A씨와 좋아하는 사이였다" "A씨가 보낸 문자는 장난이었다"면서도, "A씨가 보낸 문자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울먹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14살이었고 이제 16살이 된 B양이 "A씨와의 관계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성희롱·불법촬영의 피해자이기도 한 B양이 A씨의 선처를 바라는 것은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성매매 방지강의 40시간을 선고했다(2018년 4월).

2심 "사고 팔 수 없는 것에 '적정한 액수'가 있나"
중앙일보

서울고등법원 청사 전경. [사진 서울고법 홈페이지]




A씨는 항소심서부터는 변호사를 고용해 새로운 주장을 폈다. "준 돈이 1만~3만원으로 성매매 대가 치고는 매우 적다. 그 돈은 성관계와 무관하거나 성매수의 직접성·등가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서을고법 형사9부(부장 김우수)는 11일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이를 "논할 수조차 없는 주장"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청소년의 성은 도대체 돈이나 어떤 물품을 지급하고 살 수가 있는 상품이 전혀 아니다"면서 "청소년과 성교 행위가 어느 정도의 적정한 대가 범위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돈과 성관계 사이의 직접성이나 등가성은 논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A씨의 변호인은 "(성관계가 아닌) 원하는 성관계 '방법'을 B양이 거부하지 않도록 준 돈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해 봤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성관계의 종류나 방법은 성관계의 본질적인 내용으로 분리할 수 없다"면서 "원하는 성관계의 종류나 방법을 청소년이 거부하지 않는 대가로 금품을 지급하는 행위도 전형적으로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달라"는 A씨의 호소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면서 "성매매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계속하는 A씨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