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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변해가는 유시민, 그라쿠스 3형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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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오늘] 정치인 유시민의 어제와 오늘
2002년 이후 '노무현의 길' 따라 정치인 유시민으로 활동
2013년 자연인 됐지만 '문재인처럼' 정계 복귀 요구 받아



기원전 2세기,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공화정 로마는 막대한 부를 갖게 되지만 '빈부격차 심화'라는 부작용도 함께 얻는다. 귀족들은 늘어난 식민지 덕분에 대농장을 소유하게 되지만, 함께 전쟁에 참여한 평민들은 자신들의 농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몰락하게 된다.

호민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지법을 만들어 개혁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귀족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티베리우스 보다 9살 어린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도 호민관이 돼 농지법 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귀족들의 강한 반발을 이겨내지 못한 동생 그라쿠스도 죽음을 맞이한다. 두 형제가 꿈 꿨던 개혁안은 60여년 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시행된다. 그라쿠스 형제는 기득권에 맞서 평민들에게 부를 분배하는 시도를 역사상 처음 시도한 이들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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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노무현의 길' 걸었던 유시민의 12년
2011년 무렵이었다. 당시 야권에서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를 지키던 유시민과, 불행하게 일찍 세상을 떠난 노무현은 '그라쿠스 형제'를 떠오르게 했다.

달변가, 예상 밖의 행보, 팬덤 만큼 공고한 안티, 경상도 사투리... 13살 차이가 나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함께 하기 시작한 건 2002년 16대 대선 무렵이었다.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고,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렸다.

2006년에는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임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정도로 유시민을 아꼈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방송에서 "나는 자원봉사자였는데 눈에 띄어서 어쩌다 벼슬을 하게 된 것"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말기에 많은 정치인들이 '탈노(脫盧·노무현계를 탈출)' 했지만 그는 끝까지 친노계에 남았다.

'지역주의 타파'를 평생의 숙원으로 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좇기 위해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 출마했다. 당시 민주진보 진영 후보로선 처음으로 대구에서 30% 이상을 득표하고 낙선했다.

2010년 참여정부 인사들과 '참여정부 계승'을 기치로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전국민적인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당시 야권에서 차기 대권후보 중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행보도 '노무현스러웠다'. 2011년 말, 참여정부 인사들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준비하고자 '혁신과 통합'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시민 전 장관은 국민참여당을 이끌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합당해 통합진보당을 탄생시켰다. 1990년 3당합당에 반대해 (꼬마)민주당에 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는 동생 그라쿠스처럼 대권을 잡진 못했다. 17대 대선에선 경선에서 중도하차했고 18대 대선에는 출마 조차 하지 못했다. 18대 대선 이후 통합진보당 탈당해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만들었지만, 2013년 2월 19일 정계를 은퇴한다.

그의 정치인생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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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당시 혁신과 통합 문재인, 이해찬 상임대표가 서울 마포 국민참여당 중앙당사를 찾아 당시 유시민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스러워진' 유시민의 2018년
정계를 은퇴하고 유시민은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온다. 본업은 작가, 부업은 방송인인 자유시민.

정계 은퇴 이후 6년 동안 혼자 낸 책이 10권이나 된다. 심지어 출간할 때마다 대부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방송에서도 발군의 실력은 보인다. 예전에 출연하던 토론 프로그램 뿐 아니라 예능으로도 분야를 넓힌다.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썰전'과 여행 프로그램인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등에서 고정 출연자로 활약하 게스트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적지 않은 안티를 몰고 다녔던 그였지만,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자 국민적 이미지도 좋아졌다. 참여정부 시절 같은 당 의원에게 "저토록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 은퇴 후 온순해졌다. 한 언론에서는 "이제 좀 있으면 구름을 타고 다닐 법한 해탈의 경지"라고 그를 평가한다.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청년층부터 장년층에게까지 폭넓은 호감을 얻는다.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정계 복귀 여론은 더욱 높아졌지만, 그는 정치권에 더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그동안 몸 담아왔던 정의당에서 탈당하고,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서도 하차한다. '정치와 떨어진 삶, 작가와 비평가로서의 삶'을 위해서다.

그러나 올 7월 이후, 유시민 작가는 '2009년 이후의 문재인'과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랜기간 함께 활동한 노회찬 의원이 지난 7월 서거했고, 유시민 작가는 상주 역을 자처하게 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장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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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신임 이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된다. 지난 2010년 문재인 대통령이 맡은 그 자리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는 이사장 이·취임식이 진행됐다. 유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한다. 이사장 임명 때 제기된 정계복귀설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유 이사장의 분명한 태도에도 정치권 안팎에서 정계 복귀 가능성을 점치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선례 때문이다.

2010년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인이 되지 않겠다고 못 박았으나,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요청을 끝내 외면하진 못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도 (처음엔)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으나 그 진영에서 지지자들을 결집할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상징적 존재로서 정치에 나서게 됐다”며 “유 이사장도 이런 부탁을 받으면 고민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노무현의 길을 뒤이어 걷다가, 문재인의 길을 걷게 된 유시민이다. 그의 종착역은 어디가 될까.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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