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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디지털스토리] "성관계 영상 유포한 전 남친, 벌금형으로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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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포르노, 피해 심각한데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한번 유포된 영상, 삭제해도 '좀비'처럼 다시 살아나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전 남자친구를 고소했는데 징역형도 아니고 벌금형만 받고 끝났습니다. 그런데 재판 이후에 제가 자신을 고소한 게 괘씸하다며 복수 목적으로 영상을 다시 퍼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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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를 겪은 A씨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통해 털어놓은 말이다. A 씨는 재판이 끝나고 전 남친이 처벌받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만약 다시 재판하더라도 그 기간 더 많은 영상을 올릴 텐데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막막해했다.

과거 모텔에 누군가 몰래 설치한 카메라에 남친과 성관계 동영상이 찍혀 유포됐던 B 씨는 최근 다시 한번 절망했다. 그는 "3년 전 포르노 사이트에서 발견한 영상을 삭제 업체를 통해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다른 제목으로 퍼져있었다"라며 "영상을 올린 아이디를 모아 전부 처벌하고 싶어도 현재 법으로는 어렵다고 한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몰카 등 성(性)과 관련한 불법 촬영물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이를 제대로 처벌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피해자는 많지만, 가해자는 벌금형,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놓이는 경우도 있어 전문가들은 관련 법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 몰카 등 심의 건수 해마다 곱절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청원인이 "리벤지포르노를 유포한 대학생이 징역 6개월 집행유예를 받았다"라며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내달 3일 마감을 앞둔 해당 청원은 19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24만6천64명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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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 의원(바른미래당)이 방송통신심의 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심위의 올해 1~7월 디지털 성범죄 정보 심의 건수는 7천648건에 달했다. 현재 추세로는 연말까지 1만 건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접속차단 7천461건, 삭제 106건 등 모두 7천567건에 대해 조치가 이뤄졌다. 방심위는 사용자 신고 등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접수되면 해외사이트는 접속차단, 국내 사이트는 삭제 등 조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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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강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5년간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인원은 7천446명에 달했지만,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는 8.7%(647명)에 그쳤다.

성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몰카 등으로 재판을 받은 여성들은 75명으로 전체의 1% 수준으로 나타나 남성 몰카 가해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음란물을 유포한 경우에는 같은 기간 재판을 받은 인원 1천680명 중 징역, 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30명으로 1.8%에 불과했다.

◇ 한 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어…"반복 삭제"

피해자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영상 삭제'다. C 씨는 "전 남친 인스타그램 가계정에 내 나체 사진이 공유되면서 극심한 자살 충동을 느꼈다"라며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신고하고 게시글이 삭제됐는데,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미 많이 퍼진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8월 발간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정책의 운영실태 및 개선과제' 보고서를 살펴보면 온라인상 불법 촬영물 등의 삭제와 차단은 방심위에서 전담하고 있지만, 민원이 제기되고 심의가 이루어진 후 제재를 내리는 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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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은 "방심위가 올해 심의 기간을 평균 10.8일에서 2~3일로 단축하기 위해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도입했지만, 인터넷 특성상 불법 촬영물이 매우 짧은 시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간도 피해 노출을 최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번 유포된 영상은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다. 온라인상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지속해서 업로드되기 때문에 모니터링과 삭제 작업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 영상이 올라가면 삭제가 어려워 사이트 차단이 이루어지는데, 우회 프로그램으로 접속이 가능해 일반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정보 삭제 민간 기업 담당자는 "피해자로부터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을 받으면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을 찾아 모든 관련 촬영물을 삭제한다"며 "개인이 보관한 촬영물이 계속 유통되기 때문에 평균 6개월 정도 모니터링과 삭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 혐의 입증 어렵고 법적 사각지대 있어…합성사진 처벌 어려워

이처럼 피해는 크지만, 가해자를 처벌할 방법은 요원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의 범죄 혐의 입증이 어렵고 법적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진응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에 따라 불법 촬영 및 불법 촬영물 등의 유포자는 대부분 불구속 수사로 진행된다"며 "이 경우 피해 촬영물에 대한 증거의 은닉, 폐기, 나아가 2차 유포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제삼자가 유포한 경우에는 가해자를 잡는 게 더 힘들어진다. 리벤지포르노의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어 수사가 가능하지만, 제삼자가 피해 촬영물을 유출한 경우 설사 잡아내더라도 '불법 촬영물인 줄 몰랐다'고 발뺌하면 강한 처벌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라고 최 입법조사관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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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유포자는 검거가 쉽지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관은 "국내법상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해 해외에서는 불법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라며 "더욱이 이들 사이트에서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아니라면 게시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게시자의 신원을 확보하기 힘들다"라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가해자를 잡더라도 처벌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2013년 이별 통보를 받은 것에 앙심을 품은 서 모(50) 씨가 유부녀 D(49)씨가 보내준 나체 사진을 자신의 구글 계정 사진으로 설정한 뒤 D 씨 딸의 유튜브 동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그로부터 3년 뒤 대법원은 사진 주인공이 스스로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서씨가 나체 사진을 공개한 혐의는 무죄라고 판결했다.

대학생 김 모(26) 씨는 "누군가 내 개인정보와 함께 내 얼굴과 나체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법적으로는 내 신체가 아니라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합성한 경우는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처벌하기 어렵다.

◇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전문가들은 현행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촬영물에 해당하지 않아 성적 촬영물 유포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고, 기술발달로 인해 유포행위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이를 모두 규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남인순 의원은 "불법적으로 촬영하거나, 촬영 당시 동의했더라도 이를 미끼로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라며 "특히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했을 경우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포 후 재유포 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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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3월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디지털 성폭력의 특성상 최초 촬영자 외에도 누구든지 언제든지 소지하고 있던 파일을 다시 유포할 수 있다"라며 "가해자가 유포 후 다시 재유포하는 것은 유포와 별도로 그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선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에 관한 개정법률안이 상당수 발의된 상태다.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처벌 대상이 되는 카메라 촬영물의 범위에 '촬영물을 재촬영한 것도 포함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또 이 영상물을 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연한 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유포자와 유통 플랫폼, 소지자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수준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신설하고, 디지털 성범죄물을 생산·유통·삭제하는 웹하드 산업 구조 자체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최진응 입법조사관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강화도 필요하지만, 피해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을 위해 민관 협력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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