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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백종원·황교익 논란 - 위근우 특별기고]황교익의 ‘백종원 비판’, 논리적인 것 같지만 인문학으로 포장한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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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조작 의혹 제기 이어 또 ‘설탕 막 퍼 넣는다’ 우회적 저격

제기한 가설에 ‘믿을만한’ 책임 있는 답변 모습 보여준 적 없어

‘음식 맛 획일화’ 따지지만 정작 ‘자신의 주관’만 파는게 아닐까


경향신문

EBS 1TV <질문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또다시 백종원씨의 조리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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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이 또? 지난 11일 방송된 EBS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단맛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텔레비전에 좀 뚱뚱한 아저씨가 나와서 음식을 하는데 컵으로 설탕을 막 퍼 넣는다”며 우회적으로 백종원을 비판했다. 그는 백종원에 대해 “공공매체에서 설탕을 퍼 넣으면서 ‘괜찮아유’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최초의 사람”이라며, 그가 결과적으로 “설탕에 대한 (먹고 싶지만 자제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해결해준 사람”이며 “많은 청소년들이 그 선생에 대해 팬덤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이것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이 일을 사회적 현상으로 읽는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의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가 조작일 가능성을 주장하고 논란이 일어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황교익의 백종원 저격이 반복된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황교익이 또?’라고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현재 방송을 중심으로 한 공론장에서 펼치는 해악을 축소할 수 있다.

맛 칼럼니스트로서의 황교익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것은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며, 그가 맛과 음식에 대해 항상 맞는 말을 하는 건 아니더라도 그의 전문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를 음식으로 인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음식을 매개체로 잘못된 가설을 유포하며 그에 대한 지적 권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 자체로서도 문제지만 이것이 최근 가설적 이야기가 지적 논의를 대체하는 어떤 경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장 위의 방송에서 그가 백종원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신드롬을 분석한 것을 보자. 그는 백종원이 공공매체에서 최초로 설탕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준 사람이며 그것이 백종원 팬덤의 핵심이라고 본다.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건강을 해치는 것도 사실이고, 백종원이 설탕을 이용해 맛의 빈틈을 잡아내는 것도 사실이며, 백종원의 쉽고 빠른 요리 레시피가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사실이 하나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설탕의 과도한 섭취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백종원의 등장 이후 한국인의 당 섭취가 위험한 단계로 올라갔는가? 닭볶음탕에 설탕 세 숟가락을 넣는 백종원의 사람 좋은 미소와 설탕 여덟 티스푼이 들어간 청량음료 광고에서 청량함만을 강조하는 광고모델의 산뜻한 이미지 중 무엇이 더 단맛에 대한 경각심을 해제하는가? 정말로 백종원 신드롬은 10대만을 중심으로 생겨났는가? 황교익의 가설은 꽤 그럴싸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해주진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들 질문 앞에서 쉽게 좌초할 정도로 허술하다.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재밌지만 검증에 취약한 가설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구라’라고 부른다.

황교익의 진짜 문제는 백종원을 저격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식이 김어준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특정 정치 팬덤이 주장하는, 그 둘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따위의 정치적 음모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어준은 영화 <더 플랜>에서 후보 간 득표율과 미분류표에서의 후보 간 득표율이 동일해야 한다(해당 비율을 뜻하는 K값이 1에 수렴해야 한다)는 가정 아래 그것이 같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2012년 대선에 개표 조작이 작동됐다는 거대한 ‘구라’를 유통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반박했듯 후보 간 득표율과 미분류표 득표율이 동일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으며(이는 2017년 대선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됐다), 잘못된 전제를 근거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취합했을 때 그것은 군데군데 팩트가 끼워 맞춰진 소설에 불과하다. 황교익이 퍼뜨린 수많은 말, 말, 말도 마찬가지다. 분유를 먹고 자란 세대가 단맛에 중독됐다는 그의 주장에는 분명 두 가지 팩트가 존재한다. 모유보다 분유를 많이 먹고 자란 세대가 있으며 그들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시간 인접성이 있을 뿐 논리적 인과까지 증명되는 건 아니다. 당장 다른 가설도 가능하다. 그 어느 때보다 식료품이 풍족해진 시대에 분유가 모유를 대체하며 같은 맥락에서 소비문화가 확장하면서 해당 세대가 더 많은 단맛의 유혹에 노출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가설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가설이 더 믿을 만하냐다. 가설을 진정 믿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해당 가설에 들어맞는 팩트의 조합이 아닌, 상충되는 가설에 대한 검토 및 논박이다. 김어준이 그러하듯, 황교익도 이 부분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하버마스가 <진리와 정당화>에서 설명했듯 “누군가가 거짓으로 밝혀지게 될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그 사람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논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독단적으로 주장하고 고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을 황교익만의 문제, 황교익만의 책임이라 말할 수는 없다. 저널리스트 박권일은 김어준에 대해 ‘서사 과잉’이라고 적절히 비판한 바 있는데, 현재의 방송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서사 과잉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앞서의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을 비롯해 OtvN <어쩌다 어른> 이후 등장한 수많은 인문학 강연쇼는 연단 위의 강사에게 절대적 권위를 요청하는 동시에 부여하며, 이런 유혹 앞에선 꽤 현명한 전문가들도 자기 제한의 미덕을 잃는 경우가 많다. 가령 황교익은 tvN <수요미식회>에서 떡볶이를 맛있게 느끼는 것에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엄청난 논리의 점프와 서사 과잉이 동반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박학다식한 사회탐구영역 강사 최진기가 어느 순간 ‘인문학 종결자’라는 타이틀로 등장해 조선미술사를 다루다가 남의 작품을 장승업의 작품으로 상찬했던 걸 기억한다. 이후 잠시 방송에서 하차했던 그는 같은 프로그램에 다시 등장해 무려 인공지능에 대해 강연했다. <더 플랜>이란 거대한 음모론을 주장하던 김어준은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MC로 발탁되기도 했다. 서사 과잉엔 언제나 권위의 과잉이 동반된다. 최근 몇 년간의 예능 인문학과 지식인의 방송 진출은 당의정을 입힌 지식의 인기보다는, 지식의 권위를 덧입힌 ‘구라’의 인기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경향신문

과거 황교익은 “백종원을 디스하는 게 아니라 아무 음식에나 설탕 처바르면서 괜찮다고 방송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따지는 것”이라며 “그놈의 시청률 잡는다고 언론의 공공성까지 내팽개치시지는 말라”고 했다. 사실 이 말은 그를 비롯해 방송을 누비는 유사 인문학자들과 그들의 지적 오류에 관대한 방송들을 설명하는 데 더 유용하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들 방송은 아무 말에나 지적 권위를 처바르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황교익은 그동안 백종원의 설탕에 대해, 식당의 갖은 양념(다대기)에 대해 음식의 맛을 획일화한다고 비판해왔지만 정작 그야말로 자신의 주관적 독선에 대해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비법 양념을 뿌려 대중에게 팔아치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이번 강연에서도 자신이 단순히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인간 집단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하고 관찰을 하며 의미를 도출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시도는 좋지만 그것이 단 음식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연결시키는 무책임한 가설로 이어진다면 인문학이나 문화 연구라는 수식은 그냥 안 쓰는 게 나을 것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기에 나라도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과잉된 비장함이야말로 설탕만큼 뇌를 마비시키는 맛이다. 듣는 사람에게도, 우선 본인에게도.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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