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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국GM 'R&D 분리' 주총, 2대 주주 産銀 참석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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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연구개발 법인 신설을 둘러싸고 "한국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노조와 2대 주주 산업은행이 반발하는 가운데, 한국GM이 19일 주주총회를 열고 연구개발 조직 분리 및 법인 신설 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노조원 수십 명은 인천 부평 본사 사장실 앞을 봉쇄하는 등 주총을 저지하려 했으나, GM은 다른 장소에서 주총을 열고 안건을 통과시켰다. 산은 측은 노조 저지로 주총에 아예 참석하지 못하고 결과만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법인을 새로 만드는 중요한 경영 결정을 내리면서 1대 주주 GM(지분 77%)이 2대 주주인 산은(지분 17%)을 아예 '패싱'한 만큼, GM과 산은은 또다시 첨예한 갈등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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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은 지난 4월 말 한국GM 경영 정상화를 위해 약 7억5000만달러(약 8500억원)를 신규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GM의 일방 독주에 끌려다니는 처지가 됐다. 이를 두고 "혈세만 투입하고 할 말도 못하는 엉터리 협상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태는 GM이 지난 7월 1만여 명의 직원 중 디자인센터·기술연구소 등 연구·개발 인력 3000여 명을 분리해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라는 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GM은 미국 본사와 이 연구·개발 법인이 직접 소통할 예정이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산은은 "법인 분할로 소수 주주의 지분 가치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대해왔다. 하지만 GM이 지금까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게 산은 주장이다.

결국 이날 신설 법인 설립 안건이 통과되자 국내 자동차 업계와 금융권 안팎에서는 "군산 공장 철수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GM이 일방적으로 경영 방침을 밝히고, 산은은 이를 저지할 별다른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또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산은은 GM 협상 때 '10년간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약 8500억원을 투자하는 대신 10년간 GM을 남게 해 일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가성비 있는 협상을 했다는 게 이동걸 산은 회장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당시 협상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지적이다. 산은이 2대 주주로서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게 확인됐고, GM이 10년간 한국을 떠나지 않더라도 일방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일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당시 GM이 철수하면 대량 실업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하면서 산은이 시간에 쫓겨 협상을 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협상력을 잃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며 "눈앞의 불만 끄고 보자는 식으로 일단 위기를 무마하려는 산은과 협상에 관여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일찌감치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서 GM의 입김에서 보다 자유로운 여건을 만들어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도 이 문제를 집중 검증할 예정이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태를 해결해야 할 산은의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산은은 이날 주총 결과를 일방 통보한 것에 대해 "주총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법인을 분할하는 것은 지난 4월 협상에서 보장한 거부권 행사 대상"이라며 "GM과 노조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법인 신설 등을 반대하는 노조도 22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총파업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노조가 약 1만명의 조합원 중 신설 법인으로 3000여 명이 떨어져 나가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노조의 이 같은 행동이 GM 측의 한국 철수나 사업 축소 명분만 키워준다는 지적도 있다.

김수욱 서울대 교수는 "칼자루를 GM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가 회사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보다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이 사태에 자칫 산은이나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기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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