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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만물상] 종교 멸절 北에도 신앙의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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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평안도 황해도는 차별을 받았다. 사서삼경을 읽어도 과거 붙기가 어려웠고 농업 생산도 시원찮았다. 평양 전투에서 보듯 청일전쟁 피해도 컸다. 대신 중국과 가까워 상업과 신문화에 일찍 눈을 떴다. 이곳은 자유와 평등 의식도 남달라 예수 신앙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1884년 한국 첫 예배당으로 황해도에 소래교회가 세워졌다. 1898년엔 전체 장로교 신자 7500명 가운데 79%가 평안·황해 주민이라고 했다.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평북 선천군은 1930년대 인구 절반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그쪽 기독교와 천주교는 원래 저항 정신이 강했다. 일제는 1911년 독립 세력을 탄압하려고 애국지사 105명을 체포해 고문했는데 대부분 평안도 신자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장군은 황해도 천주교인이다. 1935년에는 평양 기독계 학교 교장들이 단체로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그러나 해방 후 공산주의 탄압은 일제보다 더 모질고 가혹했다. 신자들은 반체제 인사로 찍혀 전 재산을 빼앗겼고 재판 없이 처형당했다. 지금도 성경을 갖고 있다 적발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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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어머니가 교회에 다닌 사실을 밝히면서도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주민 적개심을 부추겨 그걸 기독교인에게 돌리는 수법을 썼다. 1968년에는 "공화국에서 종교는 완전히 멸절됐다"고 선언했다. 저들은 신(神)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김씨 일가'를 올려놨다. 그러던 김일성이 1988년 갑자기 평양에 장충성당과 봉수교회를 세운 건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종교 단체들이 적극 나서는 것을 보고 이들을 포섭하려는 통일전선 차원"이라고 태영호 전 북한 공사가 말했다.

▶그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초청장이 오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김정은이 초청장을 보낸다면 교황의 첫 방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노동당이 1991년 교황 초청을 추진하면서 가톨릭 신자 한 명을 찾아냈다고 한다. '과거 신자'였던 그 할머니는 처음엔 종교를 부정하다 "한 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내 지하 신도가 10만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교황이 옛 '신앙의 땅' 평양에 간다면 주민 마음속 숨겨진 신앙의 불씨가 되살아날까. 그런 기적을 바라고 또 바란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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