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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Why] 100m 함께 걸으면 사랑에 빠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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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올해 가을 하늘을 두고, 잊을 수 없는 문장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파란 하늘을 보며 속삭인 밀어(蜜語). "요즘 같은 날씨에는 사람 가려 만나라. 100m만 함께 걸으면 사랑에 빠질지도 몰라."

나머지 하나는 그토록 파랬던 하늘을 밀어내는 미세 먼지를 원망하며. "하늘이 안 도우니,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전자는 후배의 주말 소개팅 작업용이었지만, 후자는 중국 고위 관료의 공식 발언입니다. 우리 환경부 격인 중국 생태환경부 류우빈 대변인의 우려이자 독려죠. 중국 기후센터와 환경감시종합센터가 분석해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올겨울 중국 대기가 불량할 거랍니다. 엘니뇨 때문에 따뜻한 날씨가 예상되고, 겨울 계절풍마저 올해는 잦아든다네요. 따뜻한데 바람마저 불지 않으면 미세 먼지가 힘을 받는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우려는 미·중 무역 분쟁입니다. 석탄 등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공장의 겨울 가동을 전면 금지해왔는데, 이번 겨울에는 허용한다는군요. 자기들도 힘들다 보니, 경제 엔진을 조금이라도 더 돌려보겠다는 거죠. 서울만큼이나 맑았다던 베이징 하늘에도 지난주 처음으로 심각한 스모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미세 먼지가 중국 탓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미세 먼지가 두렵기는 중국도 마찬가지. 노우지독(老牛舐犢)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5년 전인 2013년, 중국에서 8세 소녀가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큰 원인 중 하나가 미세 먼지였죠. 대략 그 전후로 중국 정부는 공해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리커창 총리는 2014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빈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치렀던 것처럼, 공해와의 전쟁을 단호히 선포한다"고 선언했죠. 4년간 240조원의 예산을 들였고, 중국은 주요 도시에서 2017년까지 4년 동안 미세 먼지 32%를 줄였습니다. 1970년대 미국 공업도시에서 12년 걸렸던 전쟁이었습니다.

하늘이 안 도우니,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한국도 중국도, 더 이상 하늘에 핑계를 댈 수는 없겠죠. 무역 분쟁 탓하며 공장 돌릴 게 아니라, 100m 함께 걸을 사람 고르는 가을을 더 꿈꾸니까요.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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