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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Why] 성동구치소 부지 등에 공공택지 지정하자… 주민소환투표까지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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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집값 잡기' 정책에 반발… 지역 이기주의인가, 당국 일방통행인가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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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지옥, 과밀학급 해결 없는 일방통행 주택정책 결사반대한다!"

지난 9일 서울 강동구 고덕역 앞 광장에선 주민 250명이 모여 고덕·강일지구 내 민영부지의 신혼희망타운 전환을 반대하는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신혼희망타운은 내집 마련이 어려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주변 아파트 매매가 시세의 80% 이하로 분양 또는 임대하는 주택이다. 당첨만 되면 주변보다 낮은 분양가에 집을 마련할 수 있어 '로또'라는 지적과, 자산이 없는 무주택 신혼부부가 요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사다리'라는 의견이 병존한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총 10만 가구를 신혼부부에 공급할 예정인데, 계획대로라면 강동구에는 서울(전체 6000가구)에서 가장 많은 3538가구가 들어선다. 주민들은 "강동구에는 이미 임대주택이 많은데, 정부가 의견 수렴 없이 구민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날 집회 현장엔 에어프라이기와 압력밥솥, 수입맥주 세트 등 건립 반대 서명을 독려하기 위한 경품까지 등장했다. 앞선 지난 3일 열린 집회보다 참여 인원이 2배 이상 늘었다.

치솟는 집값과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에 정부가 꺼내 든 '회심의 카드'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21일 ▲수도권 내 30만호 공급을 위한 공공택지 개발 ▲신혼희망타운 10만호 조기 공급 ▲서울과 경기도 사이 '3기 신도시' 건설 등을 핵심으로 하는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1만호 공급을 예정하고 있는 서울 11개 지역에선 가장 기초적인 주민 공람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비대위가 들어서 공공택지 지정과 신혼희망타운 건립 철회 등을 요구한다. 지자체장 면담은 물론, 일부 지역에선 주민소환투표까지 거론하고 있다. 9·21 부동산대책 이후 한 달간 지속되고 있는 파열음을 두고 '지역이기주의'와 '당국의 일방통행'이라는 지적이 맞선다.

국민청원 넘어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신규 택지 지정을 취소해달라."

지난달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성동구치소 부지 신규 택지 반대 지정' 글에는 2700여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송파구청장이 복합문화시설, 공공도서관, 청년스타트업 공간을 짓겠다는 공약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투표했다. 이기심과 님비(NIMBY)가 아닌 정당한 요구"라고 주장한다.

성동구치소는 1977년 건립됐다. 행정구역상 송파구인 지금과 달리 당시는 성동구였고, 작년 6월 문정동 법조타운으로 이전했다. 새로 생긴 부지는 총 5만8000㎡ 규모. 개발 주체는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다. 강남에 얼마 남지 않은 '금싸라기' 땅으로 주목받던 이 부지를 정부가 1300가구를 아우르는 공공택지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주민들의 반발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넘어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으로 번졌다. 일부 주민은 서울시청 앞에서 호소문을 낭독했고, 회원 수 1000명에 육박하는 '성동구치소 임대주택 반대' 카페 등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지역에 불리한 특정 기사를 공유하고, 소위 '좌표'를 찍어 '댓글 여론을 선점하자'는 글들도 보인다. 일부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성수 송파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까지 검토하고 있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민의 10%(시장) 또는 15%(구청장) 이상이 주민투표 실시에 찬성 서명을 하면 지자체장에 대한 제재 여부를 물을 수 있다.

역시 공공택지로 지정된 경기 광명의 하안2지구 주민 반발도 거세다. 9·21 대책에 따르면 59만3000㎡의 대부지에 5400가구의 공공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광명 공공택지 조성철회 연합회 평재인 위원장은 "지금도 출·퇴근 때면 교통 정체가 심해 서울 경계까지 닿는 데 1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5000가구를 공급하면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선 10만장의 택지철회 전단 배포를 계획하고 있고, 국토부 담당 공무원의 전화번호까지 공유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광명시도 공공주택지구 지정에 대한 국토부 주민 공람 요구를 거부했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신도시로서의 기능 없이 아파트만 짓고 떠나버리는 '베드타운 전략'은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돌하는 이해관계

양측의 이해는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신혼부부 등 무주택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 요지에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에 찬성한다. 결혼해 미취학 아동을 두고 있는 직장인 김준식(32)씨는 "서울에 주택 공급을 마냥 늘리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절대 내집 마련을 못 하니 서로 입장 차를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부 지역 주민의 이기주의를 지적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집값 오른 곳의 지역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결사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더 강력하게 공급 확대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반면 지역 주민들은 "단순한 '님비'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강동구는 임대주택뿐 아니라 장애인 학교 등 공공성을 띤 시설이 서울에서도 상위권 수준인데, '왜 우리 지역에만 편중됐느냐'는 것이 구민들의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강동구의 경우 강일지구 6000가구 가운데 4000가구 정도가 임대주택이다. 고강시민연합회는 "2012년 지하철 9호선 연장의 반대급부로 서울시와 공공주택 1만 가구 증설에 합의했는데,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계획 수정으로 임대주택 숫자는 1만1584가구까지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갈등 지속… '공약 남발' 정치인들도 책임

공급 확대로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와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주장하는 지역 주민 간 갈등 상황은 앞으로도 재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외에도 수도권 내 입지가 좋은 곳에 30만호 규모의 공공택지를 추가로 공급해 향후 안정적인 수급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수도권에서만 22곳이 이미 공공택지로 확정됐고, 추가 지정이 줄을 이을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정부가 신혼희망타운 부지로 선정한 남양주 진접에서는 지역민들이 토지 강제 수용에 반대하면서 현장 실사조차 하지 못했고, 7월 공공택지로 지정된 성남 분당에서도 지역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갈등을 의식한 탓인지 당국도 지난 9월 서울지역 9개 부지(8642가구)는 비공개로 남겨뒀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정부는 계획과 일정 등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최대한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반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있다. 박 실장은 "선거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을 남발한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비수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시장과 박성수 송파구청장 후보는 "성동구치소가 떠난 자리에 복합문화시설과 공공도서관, 청년 스타트업 지원센터 등 주민 복지시설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문화시설 등 복지 관련 인프라가 확충되면 생활환경이 쾌적해지고 집값도 오른다. 당시 박성수 구청장 후보는 득표율 56.9%를 기록해 자유한국당 후보(37.6%)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하지만 공약은 4개월 만에 정부 발표로 뒤집혀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게 됐다.

부동산·경제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법을 주문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직장과 집이 가까운 소위 직주근접(職住近接)이 부동산을 고르는 주요 잣대가 된 시대인데, 주민 반발이 심한 공공택지 지정 대신 규제를 풀어 도심 노후 주택을 개발해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해당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권 교수는 "개발을 시장 원리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주민과 기업 간에 합의가 이뤄져 주택 공급 확대를 포함한 모두에게 유익한 개발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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