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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Why] 오래 살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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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

조선일보

지난 목요일 오후였다. 원고를 정리하다가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뒷산을 거닐었다. 오래된 습관이다. 지난밤까지 내린 비 때문일까, 산과 숲 전체가 생기에 넘치고 있었다. 언덕 위를 지나면 나무의자에 앉아 쉬곤 한다.

오늘은 나이 들어 보이는 신사가 먼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노인이 일어서면서 "선생님, 이렇게 오르내리는 산길인데 힘드시지 않으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신과대학을 은퇴한 M교수였다. M교수와 나는 70년간 사제 관계를 이어온 사이다. 중앙학교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고, 연세대에서도 내 강의를 들었다. M교수가 학위를 받은 후에는 나와 함께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런 과거였기 때문에 지금도 흠 없이 지내면서도 남달리 예의를 갖추고 지내는 제자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 E목사가 연대 출신이던데요?"라고 했더니 "예, 제가 가르친 제자입니다"라는 것이다. 그 교회의 신도만 해도 수만 명인데, 그런 목회자를 많이 길러 낸 M교수가 나보다 더 많은 후배를 키웠다는 생각을 했다. 칭찬하고 싶었는데, 그런 M교수가 내 제자이니까, 사실은 내가 더 자랑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M교수가 "선생님, 제 제자의 제자가 벌써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가정으로 따지면 증조할아버지 격의 스승이십니다"라면서 좋아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부자 관계는 30년 전후가 대를 잇기 마련인데, 사제 관계는 20여 년이면 뒤를 계승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가정에서는 증손주까지 있는 셈이지만 대학에서는 4대를 이어온 고조부 스승이기도 하다.

제자와 헤어져 혼자 산책을 하면서 옛날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M교수는 나보다 키가 작은 편이다. 그 옆자리에는 외무장관이었던 변영태의 아들 혜수군이 앉아 있었다. 변군은 내 뒤를 이어 철학을 전공했다. 후에는 미국 뉴욕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한번은 "중앙 학생 때는 선생님을 대하면서 철학자가 근사하게 보여 철학 공부를 했는데 교수가 되어 나 자신을 보니까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라면서 웃었다. M교수가 내 신앙을 계승했다면 변 교수는 철학을 이어준 고마운 제자이다.

내가 중앙학교에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런데 국내와 미국 등지에서 교수가 된 제자가 20명이 넘는다. 토론토 대학의 윤택순은 한국인 최초의 캐나다 정교수(물리학)가 되었다. 서울대 국어학의 주축을 차지한 이기문, 김완진 교수도 중앙학교 때 제자다. 춘원의 아들인 이영근 교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혈통을 밝히는 DNA 검사를 하듯이 스승과 제자의 정신과 인간적 인과를 밝히는 검사법이 개발된다면 교육계 4대에 걸친 내 직간접 제자의 수는 엄청날 것이다. 뉴질랜드 인구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교육자가 되기를 잘했다. 오래 살기도 잘한 것 같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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