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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Why] 편견 없이 나를 예뻐해 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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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순간 속으로]

조선일보

올해 6월 개봉한 영화 ‘아이 필 프리티’에서 여주인공 르네(에이미 슈머)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주변 시선에 관계없이 자신이 미인이라 생각하니 어딜 가나 위풍당당하다. 일도, 사랑도 술술 풀린다. 내가 나를 예뻐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이 당신을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STX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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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성의 70%가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70%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이 필 프리티'란 영화의 주인공인 르네는 70%에 해당하는 여성. 일도 잘하고 상큼 발랄한 성격이지만, 늘 예뻐지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도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땀을 쏟는다. 그러다가 그만 사이클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 르네.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자 양귀비도 울고 갈 미인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거울 앞에서 치명적인 미소를 날려 보내기도 하고, 모든 남자가 하는 행동은 자신의 미모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데,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전에 남자들이 무례하게 대할 때와 르네가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의 사회적 대우가 전혀 다르다. 르네는 승승장구하며 회의 때도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는 과체중인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러니까 살 좀 빼'라는 뻔한 결말로 끝나기 십상이다. 르네는 전보다 훨씬 화려한 옷을 입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 좀 빼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예전처럼 소심했다면 무시당했을 그녀의 의견에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아임 낫 프리티(I'm not pretty)'에서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로 바뀌는 순간, 르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만 싶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에게 자신이 정말 예뻐지지 않았냐며 자랑을 하지만, 친구들 입장에선 르네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걱정이다. 르네의 외모 자랑은 점점 심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예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흥미를 보인다고 착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은 말 잘 통하고 매력적이고 명랑해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체인지 디바'라는 미국 드라마도 얼핏 이와 비슷해 보인다. 멋진 변호사 남자친구가 있는 아름다운 모델 뎁은 교통사고로 그만 죽고 만다. 그런데 시스템 오류로 뇌사 상태에 빠져 있는 어느 환자의 몸에 빙의하게 된다. 환자의 이름은 제인. 뎁이 보기에는 저 엄청난 살들을 어찌하나 싶은데, 육체의 살과 상관없이 '제인'은 명문대를 졸업한 30대 초반 여성. 워낙 머리가 좋기 때문에 제인의 몸속에 들어간 순간 뎁은 자신이 무진장하게 똑똑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낯선 사무실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내 남자의 냄새가 난다. 한동안 몸이 안 좋아 회사를 쉬었던 제인은 까무러치게 놀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남자친구 그레이슨이 새로운 로펌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내가 뎁이라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뎁이라고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천상의 규칙을 깨는 일이라 허용되지 않는다. 일단 다시 건진 목숨, 살기는 살아야 하는 데다가 그레이슨까지 있으니 성실하게 회사 일에 매진한다.

그러면서도 그전의 제인이라면 하지 않았을 화장과 옷 코디 등을 해 본다. 보통 통통한 여자들은 '나한테 저게 어울릴 수 없어' '단추가 다 터지고 말 거야' 하면서 용기를 못 내지만, 제인은 씩씩하게 옷들을 고르고 사적으로 입을 캐주얼한 옷들과 드레스를 사고 그전 제인이 입었던 구닥다리 정장은 싹 정리한다. 제인이 맡게 되는 사건들도 흥미로운데, 잡지 광고를 보고 옷을 사러 갔다가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옷에 맞지 않는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이에 다양한 사이즈를 갖추고 있지 않은 업체 측과 싸우면서 결국 처음에 입고 싶었던 드레스를 제인의 맞춤 사이즈로 선물받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질감도 적잖게 들었는데, 제인은 딱 한 가지, 그러니까 몸매 말고는 완벽한 여성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정의감에 넘치고 무료 변론을 맡고, 노래도 가수 수준으로 잘 부르는 데다가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워 늘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로펌이 북적인다. 그렇게 고결한 인격을 지닌 제인을 보면서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아름다운 여자는 그냥 아름답게 앉아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지만 과체중인 여성은 부족한 아름다움을 채우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한다. 사무실에서도 실수 하나 없이 빠릿빠릿하고 추리력도 웬만한 탐정 저리 가라다. 그래서 예쁘지 않은 여성은 드러나지 않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다행히 우리의 제인은 탁월한 변호 능력, 가수 뺨치는 노랫소리를 지녔지만 언제나 '외유내강'형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줘야 하는 역할까지도 사무실에서 혼자 맡고 있는 신세다.

조선일보

이 부분이 가장 불편했던 것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킴 같은 동료는 여성성을 과시하며 쉽게 일을 따가지만 그럴 만한 성적 매력도 없고 그럴 의도도 없는 제인이 이 드라마의 '디바'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인은 부정적인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과체중 여성에게 사회가 적극적으로 권하는 모습일 것이다. 다정하고 온화하고 돌봄 노동에 충실하면서 유능하지만 남자 기를 눌러 버릴 만큼 잘나지 않았고, 사회가 여성다움이라고 간주하는 옷을 충실히 착용한다. 예쁜 여성들은 그냥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제인은 변호 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죄수들을 돕기도 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 여성 변호사는 변호 일도 해내고 좋은 일도 하고 노래나 춤 같은 재주도 선보이고 집에 가서는 수퍼우먼이 되어 온갖 일을 다 해내야 한다. 과체중이면서 디바가 되고 싶다면 허드레 잡일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외모는 별로라도 성실하고 매력적인 노동자라는 것을 계속해서 인정받아야 한다.

'아이 필 프리티'와 '체인징 디바'에서 결국 주인공들은 해피 엔딩을 맞게 되지만, 이것은 꼭 우리 사회에서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선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제인에게 그토록 많은 재능을 부여했어야만 하나? 춤, 노래, 훌륭한 인격, 변호 실력까지 다 갖춰야 비로소 출발대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통통한 여자랍니다. 한국에선 특히 여자가 아닌 취급을 받지요. 성적 긴장감을 느낄 만한 긴장감이 없으니 저를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 필 프리티' 쪽이 보다 현실적이다. 내가 나를 예뻐해 주지 않으면 타인은 우리를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김현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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