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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Why] 관람객까지 한복 차림 '왕·기생 놀이'… 인증샷 후 "재미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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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촌 캐릭터알바 해보니

조선일보

지난 17일 오후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 농악공연장 앞에서 기생 캐릭터로 분장한 본지 기자(왼쪽에서 셋째)가 수학여행 온 경북 문경 가은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학생들에게 민속촌은 이제 인증 샷 천국이다. / 용인=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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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비슷한 옷 입으셨네요. 저도 일부러 기생 옷 입었는데 같이 사진 찍어요."

지난 16~17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에서 '기생'역을 맡아 일일 캐릭터 아르바이트에 도전한 기자에게 경북 문경 가은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 온 김은솔(12)군이 대뜸 인증 샷을 찍자고 제안했다. 일일 캐릭터 아르바이트는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고 민속촌 투어를 안내하는 역할이다.

김군은 남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연두색 전모(氈帽·조선시대 여성이 나들이할 때 쓰는 모자)를 삐뚤게 쓰고 있었다. "남학생인데 여자 옷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재밌잖아요" 하고 수줍게 웃었다.

"신하 복장을 한 친구한테 곤장을 때리는 게 제일 신났어요." 곤룡포에 익선관, '임금 복장'을 갖춰 입은 이승락(12)군은 한복 입은 친구들과 민속촌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경기 남양주 월산초등학교에서 체험학습 온 이군은 마상무예 공연도 보고 '셀카'도 찍으면서 즐겼다고 했다. 이군은 "진짜 임금님이 된 것 같다"며 갓 쓰고 도포 걸친 친구 주윤서(12)군에게 "무엄하도다" "저기 앉거라" 하고 호령했다.

지난 1974년 문을 연 한국민속촌이 요즘 젊은 층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00년대만 해도 하루 평균 방문객 4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하루 평균 1만명이 방문하는 초대형 테마파크로 거듭났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캐릭터 놀이'. 민속촌 스타로 유명해진 캐릭터들을 만나고, 입구 옆 대여점에서 빌린 한복을 입고 270여 채의 전통가옥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왕 놀이' '기생 놀이'를 한다. 이렇게 캐릭터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를 하며 찍은 사진들이 소셜미디어(SNS)에 넘친다.

다 같이 '코스프레'

"겨울엔 '블랙 팬서(전신에 검은색 갑옷을 두른 히어로물 주인공)' 복장으로 오는 관람객도 있어요."

민속촌 관계자의 말이다. 기자가 찾은 날 민속촌에선 한창 '코스프레 대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사또, 포졸, 기생 등 민속촌 고정 캐릭터를 맡은 직원들뿐 아니라 올해 초 정식 오디션을 통해 채용된 '캐릭터 알바'들도 저마다 역할에 맞는 복장을 하고 관람객을 맞이했다. 관람객도 코스프레를 즐기기는 마찬가지. 개량 한복 커플룩을 곱게 차려입은 대학생에 소풍 와서 두루마기 입고 돌아다니는 초등생까지, 다 같이 한복을 입고 캐릭터 놀이를 만끽하고 있었다.

오후 3시 30분, 민속촌 정중앙 농악공연장에서 가을 시즌 정기공연이 열렸다. 마당극 '이상한 나라의 흥부'. 흥부를 비롯해 선녀, 제비, 산신령 등이 등장하는 이 마당극 줄거리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 패러디 같다. 흥부가 이상한 나라로 갔다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내용.

백미는 다 아는 흔한 전래동화 줄거리가 아니다. 출연자들이 즉흥 아이돌 댄스를 추거나 몸 개그와 애드리브를 섞어가며 객석으로 돌진하는 장면이다. '선녀' 역할을 맡은 하효정(여·26)씨는 끼를 인정받아 민속촌 정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남자 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여성 관람객 질문에 현란한 웨이브를 보여주며 최신 아이돌 댄스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흥부' 김정원(30)씨는 틈틈이 거지 연기를 했다. "돈은 안 받아도 마음은 받겠다"며 여성 관객들에게 전화번호를 구걸하는 애드리브를 구사한다. 이 밖에도 "침을 놔주겠다"며 침을 퉤 뱉어주는 '무면허 의녀' 캐릭터, '조선시대 황재근(괴짜 디자이너)'을 표방하며 민속촌 전역을 런웨이로 만드는 '맵시꾼' 캐릭터 등 별종 캐릭터들이 등장해 가을 시즌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드립으로 시작해 영상으로 명맥 유지

"소셜미디어로 영상을 접한 분들이 '어, 나도 여기 와서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한 번씩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민속촌의 '스타 캐릭터'들은 '소셜미디어 스타'이기도 하다. 화공 캐릭터를 맡은 송영진(여·23)씨는 16.5㎡(약 5평) 크기 합판에 페인트로 용을 그려내 한동안 민속촌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다. 장사꾼 캐릭터를 맡은 신동혁(29)씨는 가수 '신현희와 김루트'에서 '김루트' 닮은꼴로 인기를 끌다가 실제로 가수 콘서트에 초대받기도 했다. 김정원씨는 해병대 출신. 민속촌에 방문한 해병대 후배들에게 군가 제창을 시켰다가 이후 선배들이 방문하는 바람에 '역갈굼'당하는 유쾌한 비교 영상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민속촌 소셜미디어 계정은 '소셜 마케팅 성공 사례'로 유명하다. 2010년대 초반엔 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네티즌과 소통했다. 그 시기 민속촌 계정은 재치 있는 애드리브를 주고받으며 진화했다. '민속촌 소 이름 공모전'을 벌여 네티즌으로부터 '닥쳐밭은내가간다, 핵발전소, 제5원소, 엿좀드소, 해우소' 같은 이름을 추천받고 공유하는 식이다. 최근엔 '유튜브'가 주목받으면서 캐릭터들을 주축으로 영상 홍보를 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온·오프라인으로 관람객을 만나 소통하는 일이 즐겁다는 캐릭터들에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고 물었다. 가을 시즌 '나무꾼' 역할을 맡아 열연 중인 이상준(22)씨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알바'를 시작한 8개월 전부터 매달 민속촌을 찾은 가족이 있어요. 무릎 정도 키의 어린 꼬마가 달을 거듭하면서 허벅지까지 오는 키로 자라 요새는 또박또박 인사도 건네요. 말할 수 없이 뿌듯합니다."





[용인=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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