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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열대·사막·지중해…빌딩 숲 사이 세계의 식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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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오솔길을 걸으면서 열대, 사막, 지중해의 이국적인 식물을 차례로 만난다. 구세대에겐 선진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푸른 잔디를 맘껏 밟을 수 있다. 아파트 분양광고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숲속 요가 수업도 열린다.

지난 11일 강서구 마곡동로에 임시개방한 서울식물원에는 나흘 만에 21만명이 찾았다. 좋은 공기, 아름다운 식물에 대한 도시인들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서울식물원은 나들이 명소를 넘어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을까. 지난 17일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51)와 함께 서울식물원을 돌아봤다.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정원의 발견> 등을 집필한 오씨는 영국 에식스대학 조경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속초에서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와 오경아정원학교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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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물원 온실 스카이워크에서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가 실내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지름 100m, 높이 25m 규모의 온실에는 세계 12개 도시의 식물이 전시돼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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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마곡나루역을 빠져나오자 드넓은 잔디마당이 서울식물원의 초입을 알렸다. 마중 나온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 정수민 주무관은 “일반적으로 식물원이 연구기관이고, 수목원은 힐링 공간이라면, 서울식물원은 이를 결합한 ‘즐기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서울식물원은 호수원, 습지원, 열린숲, 주제원으로 나뉜다. 주제정원, 식물문화센터, 식물전문도서관, 카페 등 편의시설이 있는 주제원(매주 월요일 휴관)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식물문화센터 옥상에 오르자 축구장 70개 크기의 서울식물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변가로를 끼고 있는 호수는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시험 가동 중인 수중 분수는 방문객들이 꼽는 촬영 포인트다. 바람의 정원, 추억의 정원, 치유의 정원 등 테마별로 꾸며진 주제정원은 완연한 가을색을 입었다. 곳곳에서 조경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무를 심는 적기는 식목일이 있는 4월인 줄 알았는데, 오씨는 “지금이 딱 나무 옮겨 심고 식재하는 시기”라고 했다. 올겨울을 무사히 난 나무들은 내년 5월 서울식물원의 정식 개원을 맞을 것이다.

지름 100m, 높이 25m 거대한 사발 모양의 온실을 품고 있는 식물문화센터의 지붕은 오목한 돔형이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지붕의 소재는 유리가 아니었다. 공기는 통과되고 빗물은 통과하지 않는 특수 플라스틱 소재로 이뤄진 바이오돔은 폭설의 하중도 견딜 수 있는 특수 구조로 설계됐다고 한다. 현재 온실에는 하노이부터 바르셀로나, 이스탄불, 케이프타운에 이르는 세계 12개 도시 식물이 전시돼 있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 우아한 자태의 선인장, 핑크색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체리세이지가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세계의 다양한 기후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공간을 랜드스케이프 식물원이라 해요. 열대우림이라면 타잔이 살았을 법한 풍경을 만들어 해당 지형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는 거죠.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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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70개 크기의 서울식물원은 열린숲,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으로 구성됐다. 지난 11일 임시 개방 이래 나흘간 21만명이 찾았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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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기온은 외투를 벗기고 이국적인 식물과 남국의 새소리(비록 음향효과임에도!), 모형 열기구는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이쯤 되면 올겨울 최고의 피한지 예약이다. 온실을 가로지르는 스카이워크를 따라 내부를 조망할 수도 있다. 작은 연못가를 따라 걷는 유치원생들의 대열이 경쾌했다. 서울식물원은 유아와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정원학교를 따로 마련해두었다. 텃밭을 직접 가꾸고 수확하는 체험 및 실습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정원학교라고 하면 식물을 심고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 안에서 미술수업, 수학수업도 할 수 있어요. 다섯 손가락을 닮은 단풍잎으로 덧셈을 익히고, 3배수 4배수의 꽃잎을 가진 식물을 통해 곱셈을 배우며, 솔방울로 피보나치수열을 공부할 수도 있지요. 아웃도어에서 교과 과목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씨는 식물 체험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해 많은 교과를 종합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영국의 스쿨가드닝이라고 소개하며 “서울식물원이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해당 교육을 실시하는 허브센터가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축구장 70개 크기의 식물원, 하노이부터 이스탄불까지 세계 12개 도시 식물 전시…유아·어린이 위한 ‘정원학교’도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 “식물원은 연구·힐링 결합한 즐기는 공간…날 잡아 오는 곳 아닌 일상 생활권에 흡수 돼야”

평일 오전임에도 온실 내 인공 폭포 아래에는 ‘대기 인원’이 있었다. 한국의 축제나 행사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 이른바 ‘포토존’이다. “사실 식물원은 볼거리를 찾아가는 곳은 아니에요. 서양의 경우 정원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어요. 그냥 그 자체를 즐기러 가는 거죠. 볼거리를 만들려다보니 포토존을 세우는데 그런 관상 포인트가 많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간판이 와글와글 들어서는 것과 다름없어요.”

보여주기에서 얻는 위안은 ‘가짜’ 식물 인테리어로 이어진다.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초록을 가까이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비용이나 여건 등의 이유로 플라스틱 화분을 사들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죽지 않는 식물에 대한 집착은 강한 생명력을 가진 다육식물의 인기를 불러왔다. 원예 농가는 실패 확률이 적은 다육식물 재배로 몰리고, 결국 식물 시장의 다양화는 요원한 일이 된다.

“식물이 좀 죽으면 어때요? 식물 하나 10년, 20년 키우면 원예업자들이 어떻게 식물 개발을 하겠어요?(웃음) 짧은 기간이나마 식물이 우리 곁에서 산소 내주고, 이산화탄소 먹어주고 내 기분을 좋게 해줬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요.”

그렇다면 가든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오씨는 ‘공생’이라 정의한다. 본래 한곳에서 살기 힘든 식물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의미이기도 하고, 사람과 식물의 어우러짐을 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씨가 꼽는 좋은 정원의 미덕은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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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물원 관계자는 호리병 모양으로 통통한 몸매가 매력적인 아프리카물병나무가 온실 식물 중 가장 인기가 좋다고 전했다. 김창길 기자


‘뉴욕의 허파’로 불리는 맨해튼 센트럴파크는 낮에는 뉴요커들의 쉼터지만, 밤이면 찾기 두려운 곳으로 돌변한다. 오씨는 이를 공원의 두 얼굴이자, 가든 디자인의 딜레마라고 했다. 20년 전 광장에서 공원으로 변신한 서울 여의도공원은 최근 무성하게 자란 일부 나무를 잘라냈다. 울창한 수목은 공원을 풍요롭게 하지만 자칫 우범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그래서 공공 공원의 디자인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서울식물원은 시민들의 원활한 출입을 위한 12개의 출입구와 함께 400개 이상의 보안등을 설치해두었다.

“주말에 날 잡아서 오는 곳이 아니라 아침에 조깅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먹기 위해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 생활권 안에 공원이 들어오려면 긴 동선, 짧은 동선 등이 다양하게 확보되어야 하고요. 이렇게 큰 정원도 좋지만, 동네마다 작은 포켓정원을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반드시 이 식물원을 지나가야 한다면 해가 떨어져도 오가는 사람이 많을 거고 당연히 우범지대화되는 일도 줄어들겠죠.”

오씨는 일상에 흡수된 공원으로 호주 시드니 왕립식물원을 예로 들었다. 공원 개방을 통해 선박이 출입하는 항구와 전철역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공원 안에 자리한 오페라하우스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립형 대단위 공원보다는 시민들의 동선을 감안한 공원 조성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미국, 호주, 영국 각지에서 쇼핑센터와 연계된 공원을 찾아볼 수 있다. 정수민 주무관은 내년에는 한강과 연결된 습지원의 저류지에 진입로가 마련돼 한강과 서울식물원을 오갈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2020년에는 서울식물원 부지 내에 LG아트센터 개관도 예정되어 있다. 오페라하우스 못지않은 랜드마크로 식물원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서울식물원을 둘러본 오씨는 “빌딩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이렇게 넓은 녹지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 정말 반갑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우리가 정원을 왜 좋아하고,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생활의 질 문제와 직결됩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정원이 필요하죠.”

서울식물원 내부에는 등록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된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1928년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인근 평야에 물을 공급하던 펌프장이다. 오씨는 “마곡동 토착민의 조언을 받아 일부를 논으로 조성해 벼농사를 지었더라면, 아이들에게는 생태교육이자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는 추억의 공간이 될 수 있어 식물원이 한층 풍성해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서울식물원은 마곡문화관을 마곡지역의 역사와 농업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 세계에 한국인들만큼 걷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스마트폰마다 만보계 앱 다 쓰시잖아요. 도시에 들길, 산길, 논길 같은 길을 만들어드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직장 가는 길이 도심 아스팔트가 아니라 정원의 오솔길이라면 당연히 걸으실 거고요. 이왕이면 도시 개발할 때 그런 면을 감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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