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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SC] 이끼 물 마시고, 낙엽 덮고···‘생존 기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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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 : 탐험

생존 기술인 부시크래프트

오지 탐험·재난 대비 관심 커져

생존 기술 전문가 김종도 “필수품은 두꺼운 칼”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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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다음 날에도 불씨를 만들어 몸을 데우고 생선을 잡아 구워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정글 등에서 출연자들이 맨몸으로 생존하는 모습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생존 전문가 김종도(42)씨는 "최소한의 도구로 버티는 디아이와이(DIY) 캠핑인 ‘부시크래프트’(BushCra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의 기술을 최대한 배제하고 원시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부시크래프트는 라이터로 간단히 불 피우면 될 것을 부싯돌을 이용한다. 그야말로 원시의 형태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런 기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생존 기술’이자 ‘탐험기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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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등산 길에 오른 당신에게 예기치 않은 위험 상황이 닥친다면? 독특한 낭만을 만끽하기 위해 생소한 지역을 탐험하고자 나섰다가 돌발 상황을 만난다면?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부시크래프트’다. 덤불을 뜻하는 ‘부시’(bush)와 기술을 뜻하는 ‘크래프트’(craft)의 합성어로 ‘숲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말한다. 과거 미국 서부시대, 금광을 찾아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탐험하던 이들, 봇짐을 메고 수도 한양을 향하던 조선시대 양반들과 산꾼들의 생존 기술이 부시크래프트의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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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에 있는 ‘서바이벌 스쿨’을 운영하는 김종도(42)씨는 국내 대표적인 생존 전문가다. 최근 <최강 생존의 달인 김종도의 부시크래프트>(꿈의 지도)라는 책도 펴냈다. 김씨가 생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군대 시절 코브라 헬기 부대에서 전투 헬기 조종사로 임무를 수행하면서부터다. 대전차 공격용 헬기인 코브라는 적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추락할 경우 스스로 부대에 복귀해야 한다. 생존 기술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때부터 김씨는 생존 관련 외국 원서를 구해 공부하고 실전 연습을 해보며 생존 기술을 익혔다. 최근 탐험에 관심이 커지면서, 지진 등의 자연재해를 목격하면서 그의 ‘서바이벌 스쿨’은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

지난 12일 ‘서바이벌 스쿨’에는 교육업체 ‘리틀코리아’ 직원 28명이 모여 있었다. 직원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김씨는 “한 강연당 최대 30명이 정원인데 최근 기업, 학교 등에서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며 “지난주엔 중부대학교 교직원에게 강의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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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나뭇가지, 노끈 등을 이용한 불 피우기, 비상 가방 준비하기 등의 생존기술 수업이 진행됐다. 불 피우기에 성공한 최유리(29)씨는 “원래 해병대 체험을 하려고 했는데 사내에서 지진이나 재해 대비 교육을 받자는 의견이 나와서 듣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진 김씨의 강연은 자세하고 촘촘했다. “누구도 자신의 조난을 예측한 이는 없다. 위기 발생 시 대부분 긴장한 탓에 골든 타임을 놓치곤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소 몸으로 생존 기술을 익혀두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산이나 바닷가로 탐험 겸 캠핑을 떠나는 건 흔한 일이다. 김씨는 “낮은 산에서도 하산하지 못해 동사하는 경우는 매년 꾸준히 있다”며 산세가 험하지 않다고 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은 등산은 조난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필수 준비물로 제일 먼저 ‘칼’을 챙길 것을 권했다. 일반 캠핑에서 칼은 음식을 조리하는 용도지만, 부시크래프트에서 칼은 불을 피우고 임시 집과 보온용 옷을 만드는 도구다. 이 때문에 두께가 두꺼운 캠핑용 칼을 구비해야 한다.

김씨와 같은 생존 전문가들은 생존에도 원칙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름하여 ‘3.3.3’ 원칙이다. 사람은 최대 30일간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지만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위험하다. 저체온(20도 이하) 상태로는 약 3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조난 당했을 즉시 체온을 유지할 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문 장비가 없을 경우 자연 재료를 이용해 방풍막을 만들어야 한다.

초보자의 경우 쉽지 않기 때문에 은박 돗자리·담요나 비상용 보온장비(비닐 우비, 방수 겉옷)등을 챙기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다. 은박 돗자리의 가운데를 구멍을 내, 얼굴을 넣어 입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때 노끈으로 허리를 묶어 마치 겉옷처럼 밀착시켜야 한다. 은박 담요를 노끈을 이용해 나무에 묶은 뒤 나머지 부분을 땅에 고정시켜 천막을 만들어도 체온 유지에 도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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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가 마련됐다면 물을 확보해야 한다. 근처에 계곡이 없다면 이끼를 찾아보자. 그늘진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는 스펀지처럼 빗물을 머금고 있다. 떼어낸 이끼를 손이나 손수건, 면 옷을 이용해 짜면 된다. 그러나 흙과 섞여서 나온 물이기 때문에 바로 마시는 것은 위험하다. 김씨는 “끓여 먹거나 정수해 먹어야 한다. 휴대용 정수 필터나 정수 알약을 사전에 챙겨두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산엔 추위만 있는 게 아니다. 진드기에 물리거나 넘어져 상처가 날 경우도 있다. 김씨는 “산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상약품은 다양하다. 쑥을 손가락으로 비벼 나온 진액을 상처에 바르면 소독 효과가 있다. 여름에는 생잎을 태워 해충을 쫓을 수도 있어 일석이조다. 소나무 진액인 송진도 상처 부위에 바르면 소독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초코바, 육포, 꿀 등 보관 기간이 길고 열량이 높은 비상식량이 떨어졌을 때 배를 채울 방법은 없을까. 조난 장소가 섬이라면 해양 생물이 물가나 모래 위에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손으로 주우면 된다. 단 홍합은 여름철 독을 품는 경우가 있어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다. 바위에 붙어 있는 고둥, 삿갓조개나 거북손을 먹는 게 안전하다. 잡은 조개는 나뭇가지에 꼬치처럼 꿰어 숯불에 굽거나 미역에 말아 20분 정도 불에 구우면 된다. 김씨는 “버섯은 가급적이면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칼로리가 높지 않아 생존에 도움이 안 될뿐더러 독성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란다. 반면 더덕은 보이는 대로 수집해 저장해놓고 먹는 게 좋다고 한다.

생존에도 이처럼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지만 생존 전문가 김씨는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한 태도’라고 말한다. 전문가인 그조차도 3년 전 산을 오르다 중턱에서 갑작스러운 폭설로 고립된 적이 있다. 나무로 불을 피워 보려 했지만, 조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마저 방전돼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뒤늦게 침착하게 정신을 차려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생존 기술은 칼 한 자루와 맨몸에만 의존하는 극단적인 탐험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co.kr

탐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에 가 살펴보고 조사하는 행위. 산악, 극지, 사막, 정글 등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은 스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라 일컫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13일(현지시각)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탐험대 5명이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 원정 중 눈 폭풍에 목숨을 잃었다.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활동이지만, 최근에는 <정글의 법칙>, <거기가 어딘데?> 등의 예능을 통해 ‘탐험’과 일반인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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