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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MT리포트]나는 월요일마다 시체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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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편집자주] 의학(medicine)은 산 자를, 법의학(forensic medicine)은 죽은 자를 구한다. 망자(亡者)가 보내는 억울한 죽음의 신호를 해석하는 이들이 법의학자다. 우리나라 사망자 수는 연간 28만명 선이다. 법의학자들은 이 중 원인불명의 사망을 해부한다. 안타깝게도 부검이 필요한 시체는 늘고 있는 반면 국내 법의학자들은 수년째 40~50명 선에 그치고 있다. 법의학자를 둘러싼 편견과 오해, 처우와 현황을 알아봤다.

[부검, 외로운 사명①]어느 법의학자의 하루…유성호 서울대 교수 "편견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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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부검 관련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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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오전 8시 서울 대학로 서울대 의대(연건캠퍼스) 교육관 3층. 파란 수술복과 수술용 일회용 앞치마를 갖춰 입은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46)가 2명의 어시스턴트(법의조사관)와 함께 부검실에 들어섰다.

이날 유 교수를 찾아온 검체(시신)는 모두 3구다. 유 교수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병원 인근 경찰서들이 의뢰한 사인불명의 사체 3~4구를 부검한다. 일반 의사들이 하루에 일정 횟수 이상 수술을 집도하지 않듯 부검의 역시 피로도와 집중도 등을 고려해 하루 4구 이상 부검하지 않는다. 미세한 증거도 놓치지 않으려 부검은 반드시 자연광이 비치는 오전에 진행한다.

유 교수는 '꼭 사인을 밝혀드리겠다'며 시신에 마음 속으로 말을 건넨 뒤 집도를 시작했다. 첫 번째 사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사한 남성이었다. 투명 비닐과 천에 감춰졌던 사체가 모습을 드러내며 차가운 부검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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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을 하고 있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사진제공=유성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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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림을 방지하기 위해 유 교수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재빠르게 메스를 움직였다. 고혈압 병력이 있었던 이 남성의 경우는 심근경색이 의심됐다. 유 교수는 지름이 직경 1.5~2㎜밖에 되지 않는 관상동맥을 일일이 살핀 후 막힘 증상이 보이는 혈관 단면을 촘촘하게 잘라 동맥경화를 확인했다.

두 번째 사체는 목맴으로 숨진 여성이었다. 극단적 선택이 유력했으나 타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므로 부검을 진행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쇄골 부위 근육을 제외하면 상처가 크지 않다. 반대로 타인이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면 목 주변 근육 상처가 크다. 약물 복용 등으로 사망 후 목맴으로 위장한 경우는 목 부위 근육 손상이 전혀 없다. 숨진 후엔 상처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여성에게서는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세 번째 사체는 물속에서 발견돼 사인이 익사로 추정됐다. 앞선 사체들과 달리 시취(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강하고 신체 일부가 부풀어 오른 점이 특징이다. 사체가 물속에 있다가 공기 중으로 나오면 몸속 세균들이 급격히 번식하며 가스를 만들어 내고 이 때문에 안구 등 신체가 상당히 부푼다.

유 교수는 가슴을 열어 폐나 식도 등 각종 장기에 물이 찼는지 확인했다. 또 사체에 흡수된 플랑크톤을 추출하기 위해 장기 일부를 잘라뒀다. 혈관이나 장기에 얼마나 플랑크톤이 퍼졌는지를 보고도 익사 여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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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부검 관련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부검은 오후 1시쯤 돼서야 끝났다. 어시스턴트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체를 봉합했다. 사체를 싣고 온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외부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검실로 올라와 다시 사체를 들고 나갔다. 사체는 1구 별로 병원관계자 1명이 직접 운반한다.

유 교수는 각 사체 부검이 끝날 때마다 작성해 둔 조직검사표를 어시스턴트들에게 건넸다. 조직검사는 마약분석, 유전자분석, 조직분석 등 각 항목에 따라 사체에 필요한 검사들을 간단히 표시해두는 일종의 체크리스트다.

이후 연구실에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인 서류 작업을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부검소견서 작성이다. 부검소견서는 부검 당시 확인한 사실 외에도 미리 요청해 둔 조직검사 결과, 사건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해 사인을 병사·외인사·원인불상 중 하나로 결론낸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적어도 수일이 걸리기 때문에 부검소견서 작성까지는 사체당 2~3주 정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제출한 유 교수의 소견서는 사건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다. 사법기관이 요청하면 유 교수는 감정서의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한다. 쉴 틈 없는 하루에도 유 교수는 "나는 그래도 부검을 적게 하는 편"이라며 "국과수 법의관들은 이런 부검을 일주일에 2번, 즉 최대 8건의 부검을 하다 보니 사명감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처럼 부검을 하는 의사는 전국에 딱 59명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지는 식의 억울한 죽음을 용납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부검의 중요성은 커지지만 매년 법의학자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 기준 전국 의대 중 법의학교실에서 유 교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전공자(의사 출신)는 단 3명뿐이다.

유 교수는 "법의학자는 망자의 사인을 밝혀 정의를 구현하는 보람찬 일임에도 '사체를 해부한다'는 부정적 편견 등으로 전공자가 부족한 점이 상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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