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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탈레반 테러로 후보 10명 사망… 피로 얼룩진 아프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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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보이콧” 유세장 폭탄테러… 민간인도 수백명 죽거나 다쳐

20일 투표 앞두고 공포감 확산

美가 이라크 등에 눈 돌린 사이 아프간 영토 30% 장악 세력확장

전쟁에 환멸 시민들 투표 열망, “선거일 살아있다면 반드시 투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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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고 확성기를 설치한 선거 유세 차량들이 골목을 누비며 후보들의 공약을 선전한다. 20일 총선을 앞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거리 모습이다.

겉보기에는 선거를 앞둔 여느 나라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공포감이다. 유세장마다 언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폭탄 테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짙게 깔려 있다.

지난달 28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탈레반은 선거 보이콧을 요구하며 후보자와 선거사무소를 노린 테러 공격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탈레반 테러로 후보자 10명이 숨졌다. 다른 후보자 2명은 탈레반에 납치돼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유세 지원에 나서거나 이를 구경하던 민간인 수백 명도 숨지거나 다쳤다. 2일 동부 낭가르하르 주 유세 현장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13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는데 사상자 중 상당수는 유세를 구경하던 노인과 어린이들이었다. 한 시민은 “후보자가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큰 폭발음이 들렸고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떠 보니 주변에 온통 시신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17일에는 남부 헬만드주에 위치한 압둘 자바 카흐라만 후보자의 선거사무소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한 헬만드주는 대표적인 탈레반 장악 지역 중 한 곳이다. 후보자의 의자 밑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후보자를 포함해 4명이 숨졌다.

탈레반은 테러 직후 성명을 내고 전국 교사들에게 “선거 관련 협력 혹은 지원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프간 정부는 20일 총선 투표소로 전국 학교와 의료시설 등을 활용하고 교사들을 현장 관리자로 지정한 상태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이날 “잔혹한 테러와 범죄 행위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선거를 향한 사람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선거 강행 의지를 밝혔다.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 영토의 3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전쟁을 시작해 한 달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이후 미국이 이라크 등으로 관심을 돌린 사이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전쟁이 17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탈레반 세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원의원 249명을 뽑는 이번 총선에는 총 256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선거를 무산시키려는 탈레반은 유권자 등록소가 문을 연 4월 14일부터 폭탄 테러 및 무장 공격을 이어오고 있다. 유권자 등록센터의 직원이나 경찰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권자 사전 등록 중 테러로 부상을 당했던 한 유권자는 AFP통신에 “(탈레반이) 우릴 계속 죽이려 한다면 누가 투표소를 갈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카불에서 출마한 한 의원은 “모든 후보는 집을 나설 때부터 죽을 각오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테러 위협으로 총선일인 20일 전체 투표소의 30%가량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투표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쟁, 탈레반 및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위협을 끝내지 못한 기존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의 투표 의지가 높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이 변화를 이루려는 젊은 세대와 기존 엘리트 세대 사이의 경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부 낭가르하르주에서 출마한 무카데스 암마자이 후보(25·여)는 “기존 정치권 엘리트들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선거에 출마했다. 그들은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는커녕 우리의 권리를 남용했고, 그것이 아프간의 위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아프간에서 비둘기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 중인 딜 무함마드 씨(60)는 미군 기관지 성조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선거일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반드시 투표할 것이다. 아프간에 평화와 안정을 갖고 올 사람을 우리가 뽑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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