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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평화의 기운이 감도는 비무장지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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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 동행 취재

임종석 실장 등 이행추진위 강원도 철원 방문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현장 참관 뒤 장병 격려

남북 공동조사·복원 상징될 태봉궁 철원성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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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이 열렸다. 강원도 철원 6사단이 주둔하는 비무장지대(DMZ)로 들어서는 입구다. 차량이 오가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비포장도로 양 옆으로는 억새가 지천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름과는 달리 남북한의 병력 6천여명이 전방초소(GP) 200여곳 안에서 기관총, 박격포 등 중화기로 무장한 상태에서 상주하고 있는 이 곳 비무장지대에도 평화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회(이하 이행추진위·위원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가 17일 강원도 전방 부대인 5사단과 6사단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합의한 평양공동선언과 4·27 판문점선언의 이행 추진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 유럽 순방을 수행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제외하고 임 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통일외교안보 관련 장관급 인사들이 네 명이나 동행한 자리였다. 청와대에서는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김의겸 대변인 등 이행추진위 배석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행추진위와 기자단 등 일행은 이날 오후 1시께 국방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강원도 5사단으로 향했다. 30분 거리였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곳에서 30분 거리에 수도권 시민 1천만명이 모여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비무장지대를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안내를 자처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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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단 헬기장에 내려 지뢰 제거 작업이 한창인 전방초소(GP)로 향하기 전, 군복 상의와 무게가 꽤 나가는 방탄조끼, 헬멧을 지급받았다. 초소에 도착하니 지뢰 제거 작업 중에 발견된 양쪽군의 지뢰와 수류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들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하고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구체화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이행하고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려면 초소 주변부터 시작해 지뢰가 없는 지역을 넓혀 나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전유광 5사단 사단장은 브리핑에서 “화살머리 고지, 공작새 능선, 백마 고지 등이 있는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격전지였다”며 “특히 미군 2사단 희생자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대략 우리군이 포함된 유엔군이 1500명, 북한군이 3000명, 북을 지원하러 참전했던 중공군이 1만명 정도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시된 유품 중에 총알 자국이 선명한 수통 한 개가 이행추진위 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군이나 미군 혹은 유엔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수통에 크고 작은 구멍 30여개가 뚫려 있다는 설명을 듣고, 임종석 실장은 “세상에… 이것 하나에…”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 날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주인을 잃은 녹슨 허리띠 버클도 있었다. 지뢰 제거 작업 뒤 본격화할 유해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어 발견 일시와 장소들을 적어 따로 보관한다고 군은 설명했다. 초소의 한 쪽 벽면에는 ‘남북공동 유해발굴 완전작전-저희 품으로 반드시 모시겠습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프랑스군의 희생자들이 많았던 탓인지 프랑스어와 한국어, 영어로 각각 표기된 ‘자유를 위한 비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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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추진위는 5사단 초소에서 병사들의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지켜본 뒤 고려 태동기에 궁예가 철원 평야에 지었던 태봉국 철원성터가 있는 6사단으로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지난 9월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채택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남북 군 당국은 “비무장지대 역사유적을 민족정체성 회복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공동조사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지뢰 제거, 출입과 안전보장 등 군사적 보장책을 마련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대표적인 곳이 태봉국 철원성터다. 왕궁터는 북쪽 지역에, 외성은 남북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걸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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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아 남북 공동조사단이 성터를 직접 방문해 조사하지만, 이날 이행추진위 위원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성터가 표시된 위성사진으로 설명을 듣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임 실장은 “위성사진으로 보일 정도니 현장에 가면 (육안으로도) 성터의 흔적을 볼 수 있겠는데요?”라며 관심을 표명했다. 위원들은 철원성 복원사업을 비롯해 경원선 철도 복원 사업, 현재는 노반만 남아있는 철원-금강산 철도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면서, 분단의 상징인 이 곳에 평화가 내려앉을 경우 관광 중심지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철원/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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