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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임금 떼먹어도 벌금내면 땡?..근로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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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사진=연합뉴스


#. A씨(35)는 지난 2014년 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부동산 개발·시행 업체에서 대리로 근무했으나 급여가 밀리자 퇴사를 결정했다. 당시 A씨가 받지 못한 급여와 퇴직금은 870여만원 수준. 사표를 낸 후에도 업체 측은 임금지급을 차일피일 미룰 뿐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A씨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으나 업체 대표는 출석을 거부했고, 이어진 민·형사 소송에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임금체불에 3년 분쟁..대표는 '모르쇠'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40단독 이민수 판사는 A씨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업체 대표 한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A씨는 떼인 임금을 받기 위해 업체를 상대로 채권가압류를 신청했으나 업체에는 재산이 한 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개인사업주에 의해 임금을 체불 당했을 경우 대표를 상대로 가압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의 경우 법인에만 한정돼 법인 소유의 재산이 없으면 소송에 이기더라도 근로자는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셈이다.

A씨의 사례는 후자였다. 분쟁만 하다 3년이 흐른 지금 A씨의 임금체불액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1500만원으로 늘어났다. 피해자는 A씨 뿐만이 아니였다. A씨가 회사를 떠난 후 다른 직원 3명도 급여와 퇴직금을 받지 못해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이들은 '밀린 급여를 주겠다'는 대표의 말만 믿고 진정을 취하했으나 여전히 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저 이외의 직원들도 임금체불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는데 가중처벌도 시원찮은 판국에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이해가 안된다"며 "형사처벌이 약하게 나온 점에 대해 항소하지 못한 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이제는 대표와 연락도 안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업체가 사실상 가족회사로 운영된다는 점도 논란이 된다. A씨가 갈등을 빚고 있는 업체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한 대표를 제외한 가족지분이 68% 이상을 차지한다. 회사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는 한 대표의 차남은 21곳의 가맹점을 두고 있는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자신이 주주로 있는 업체의 임금체불을 '모르쇠'하고 새로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점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

차남이 운영하는 업체 측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일축하면서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지, 저희는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파이낸셜뉴스

■임금체불액, 일본의 10배 수준.."대책 마련돼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근로자 수는 2015년 29만5677명, 2016년 32만5430명, 2017년 32만6661명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23만5700명의 근로자가 1조1274억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임금체불액은 경제 규모가 세 배나 큰 이웃나라 일본의 10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임금체벌 문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법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상혁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노무사는 "사실상 개인회사인 업체도 법인 형태로 만들어 놓고, 경영상 문제가 생기면 문을 닫은 뒤 다른 가족명의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근로자에 밀린 급여를 끝까지 주지 않아도 처벌 수위가 낮아 '비용보다 편익이 더 크다'고 여긴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 근로기준집행국장이 임금을 체불한 사업자에 대해 법원에 재산 압류를 신청하고, 사업중단명령도 낼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사업주가 압박을 느껴 근로자에 돈을 지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용자를 처벌받는 게 아닌 체불된 임금을 받아내는 게 목적"이라며 "현 상황에서 처벌 강화는 실효성이 없고, 신속하게 임금을 받아낼 수 있는 절차나 제도 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에 대해 국가가 임금을 먼저 지급하고, 국가가 대신 소송을 맡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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