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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관, “북한도 실수한 김일성 연설 날짜, 사료에는 나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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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실록’ 1차분 30권 출간 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관

광복 이후 광범위한 자료 모아…서울 아파트 한 채 값 들어가

1990년대까지만 1000권 분량…디지털 아카이브 구축도 병행

경향신문

<북조선실록> 책임편집자인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17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조선실록> 1차분 30권 발간 기념 워크숍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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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치고 사료를 갈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국편) 편사연구관(59)의 북한 사료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는 표현을 뛰어넘는다. 그는 최근 1945년 8월15일부터 매일 북한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정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수록한 편년체 사료집 <북조선실록> 1차분 30권을 펴냈다.

지난 20여년간 거액의 사재를 들여가며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민주청년, 청년전위, 민주조선 등 북한의 주요 기관지를 비롯해 북한이 발간한 각종 자료를 창간호부터 닥치는 대로 모은 결과물이다. 1949년 6월30일까지 다룬 1차분 30권은 글자수가 2744만3976자, 200자 원고지로 13만7228장이다.

<북조선실록> 1차분 발간 기념 워크숍이 열린 17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김 연구관을 만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냐는 질문에 김 연구관은 스스로 “미쳤다”며 “북한 자료가 있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한양대에서 ‘일제식민지시대 노동계급 형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고 1992년 국편에 들어갔다. 그는 애초부터 북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국편 자료실에서 방선주씨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해 보내온 이른바 ‘노획문서’(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노획한 북측 문서)를 보면서 차츰 빠져들었다. 방씨는 1979년부터 NARA에서 한국사 관련 자료를 다수 발굴해왔으며, 국편 해외자료 수집 위원도 맡았다.

김 연구관은 “이후 ‘북한 정권 초기 당과 정부, 군의 간부 양성’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는데 자료를 1947년 4월 것까지밖에 못 구했다”며 “북한 연구에서 자료가 매우 중요함을 깨달은 계기였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지금도 북한 관련 박사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료 수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한다”고 덧붙였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 남북 대치 상황 등으로 북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북한의 대표적 기관지인 ‘노동신문’조차 국내외 어느 곳도 결호 없이 모두 소장한 기관이 없다. 날짜별로 사건을 기록한 ‘북한 연표’도 신뢰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김 연구관은 지적했다. 북한이 ‘저작선집’ ‘저작집’ 형태로 펴내는 자료집도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 당국이 우상화 등을 위해 체계적으로 과거 문서를 통제·왜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측의 단순 실수도 발견된다. 김 연구관은 “<김일성전집>을 보면 김일성이 1949년 9월9일 정권 수립 1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고 나온다”면서 “그런데 실제 자료를 찾아보면 김일성은 9월8일에 연설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전날 기념행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9월9일로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김 연구관이 북한 사료 수집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김 연구관은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면서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 이상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2년여 전부터는 출판사 ‘선인’과 ‘민속원’이 사료집 출간을 맡기로 하고, 경남대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출간 작업을 위해 구성된 ‘코리아 데이터 프로젝트’팀에 작업공간을 내주는 등 지원을 했다.

학계에서는 <북조선실록>의 발간이 계속될수록 북한 역사에 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바로잡힐 것으로 본다.

1차분 발행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김 연구관은 말한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점부터는 한 달 치가 800쪽짜리 책 한 권 분량이 된다”며 “1990년대까지 하면 1000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관은 향후 사료집 발간을 계속해 나가는 동시에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김 연구관은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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