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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고려의 시작’과 ‘세계의 처음’, 남한 관람객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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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좀체로 보기 힘든 북한 문화재를 가져오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5일 있었던 남북고위급회담에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가 참석해 유물 대여를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고려 건국(918년) 1100주년을 맞아 12월 개최할 예정인 ‘대고려전’에 북한 문화재 10건 17점을 빌려오기 위한 것이다. 운송 방식 협의, 유물 상태 확인 등을 위한 실무자급 회담이 열려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전언이다.

세계일보

고려 태조상은 1992년 왕건이 묻힌 현릉 부근에서 발굴됐다.


대여 목록에 올라있는 유물 중 큰 관심을 끄는 것이 ‘고려 태조상’과 고려 금속활자다. 고려의 역사를 연 태조 왕건의 동상이라는 점, 세계사를 바꾼 인쇄혁명의 최첨단을 걸었던 고려 문화의 한 절정을 증언하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고려의 ‘시작’이자, 세계의 ‘처음’인 유물들의 방문이 성사된다면 고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 태조상, 고려 국풍(國風)에다 선진문화 결합

태조가 묻힌 개성의 현릉을 새로 단장하던 1992년 10월, 봉분에서 약 5m 떨어진 지점에서 태조상이 발굴됐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상은 광종 2년(951) 경 제작돼 개성 봉은사에 봉안됐고, 왕조 내내 국가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한 뒤 경기도의 작은 암자로 옮겨졌고, 성리학의 제사법에 따라 동상과 초상화를 없애고 위패로 바꾸면서 세종대에 이 동상은 현릉 근처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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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성 만월대 남북한 공동발굴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138.3㎝의 높이에 의자에 앉은 모습인 태조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나체로 관(冠)을 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제도와 불교문화, 고려의 전통이 융합한 결과다.

관은 중국의 천자가 쓰는 ‘통천관’(通天冠) 형태다. 진나라 때에 황제의 관으로 쓰기 시작했고, 형태와 제도가 조금씩 바뀌긴 했으나 한나라 이후 널리 쓰인 것이다. 태조상의 것은 내·외관으로 나뉘며 지금도 도금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당나라 이후의 통천관 양식을 따랐고, 내관의 상단에 천하를 비추는 고려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듯한 해와 달 형상의 원판 8개가 달려 있다.

나체로 표현된 신체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당당한 장년의 모습을 한 태조상에는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삼십이대인상’(三十二大人相)의 특징을 일부 드러내고 있다. ‘발바닥이 완전 평평한 것’, ‘손가락, 발가락이 가늘고 긴 것’, ‘평평하고 곧은 등’ 등이 그렇다. 가로로 주름을 새겨 오므라든 모양으로 표시한 2㎝ 남근도 이런 특징 중 하나다. 삼국시대의 왕이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거대한 남근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것과 대비되는 특징이다. 이는 불교의 ‘마음장상’(馬陰藏相·남근이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은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몸을 삼가하여 색욕을 멀리함으로써 성취한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대 노명호 명예교수는 “왕건상이 32상의 요소들로 표현된 것은 왕건을 전륜성왕(무력이 아닌 법으로 세상을 지배한 불교의 이상적 제왕)과 유사한 신성한 존재로 본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고려는 태조상에 옷을 입혀 제사를 지냈다. 이는 토속제례의 방식이다. 개성 송악산 성모당에 모신 여신상이 옷을 입히는 나체상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12세기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목격한 동명성왕 신상도 옷을 입히는 양식이었다.

◆금속활자, 최첨단 고려 인쇄문화의 위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갖고 있는 ‘직지심경’은 1377년 인쇄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내용이 전하고,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는 1239년에 금속활자로 찍은 것을 다시 찍은 책이라는 기록이 있다. 서양보다 훨씬 앞서 금속활자를 향유한 ‘세계 최초 금속활자 보유국’의 위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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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대 전경


고려의 궁궐터인 개성의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의 금속활자들이 남한의 관람객들과 만날 지도 관심사다. 2015년 11월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에서 금속활자 1점이 출토됐다.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의 크기로 ‘오로지 전’(女+專)자와 유사한 형태의 글씨를 새겨놓았다. 이 금속활자가 발굴되기 전에는 남북한이 1점씩 소장하고 있던 것과 비교하면 “서체나 주조 수준이 세련되고 정교해 고려 귀족문화가 절정이던 12∼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은 2016년 5월에 만월대에 4점을 추가로 발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가로 1.2∼1.3㎝, 세로 1∼1.1㎝, 높이 0.6∼0.7㎝의 크기로 직육면체의 한 면에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로써 현재까지 발굴된 고려 금속활자는 모두 7점. 오는 22일 만월대에 대한 공동발굴이 재개돼 또 다른 금속활자가 모습을 드러낼 지도 관심사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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