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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판빙빙 사과문 보라 … 찍히면 숙청, 문화대혁명 공포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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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언론 “사과문, 마오 연설문 닮아

시진핑 맞먹는 명망 누려 괘씸죄”

‘개인 자유 vs 국익 우선’ 가치 충돌

전 인터폴 총재 구금도 같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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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되기 전 공식석상에 섰던 판빙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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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예전의 저는 국가의 이익이나 사회의 이익과 나의 이익의 관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2. ‘우리 공산당은 전적으로 인민의 이익을 섬깁니다. (중략) 우린 인민의 이익을 알고, 절대 다수의 고통을 마음에 품을 것입니다. 인민을 위해 죽는 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두 문구가 흡사하다는 느낌이 드셨나요. 표현 방식은 살짝 다르지만 ‘이익’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등 마치 동일인이 썼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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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판빙빙이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사과문. [판빙빙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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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 이후 모습을 드러낸 판빙빙. [중국 시나닷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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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글은 다른 이가 작성한 것입니다. 무려 7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말이지요. 첫째 문구는 탈세 의혹과 실종설로 전세계를 들썩이게 한 중국 영화배우 판빙빙(范??)이 지난 3일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사과문입니다. 둘째 문구는 문화대혁명을 지휘한 전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의 1944년 대중 연설문 중 일부이지요.

최근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두 글의 흡사한 대목을 근거로, 시진핑(習近平) 주석 아래 중국 공산당의 ‘문화대혁명 회귀설’을 제기했습니다. 뉴요커는 “판빙빙의 탈세 사과문이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대의 마오쩌둥 연설뮨 판박이”라며 “그의 사과 표현의 톤은 (문화대혁명 당시) 고문 혹은 사형에 처한 반(反)혁명주의자들이 강제로 작성해야 했던 자기비판문을 연상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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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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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실종·사망설을 비롯해 여러 설이 파다했지만, 판빙빙은 ‘무사히’ 대중의 품에 돌아왔는데요. 얼마 안돼 또 한 명의 중국 유명 인사가 실종됩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첫 중국 출신 총재인 멍훙웨이(孟宏偉)이지요. 인터폴 본부가 위치한 프랑스에 있던 멍 전 총재는 지난달 25일 “모국(중국)으로 출장간다”고 한 뒤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며칠 후 중국 공안부는 "멍 전 총재가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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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중국을 찾았다 연락이 끊긴 멍훙웨이(孟宏偉) 인터폴 전 총재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멍 전 총재는 지난 7일 사퇴의사를 밝혔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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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홍콩 사우스모닝포스트차이나(SCMP)는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공안 물갈이’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는데요. 시 주석이 ‘다오바즈(刀把子·칼자루)’라고 불려온 공안(중국 경찰)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면서 멍 전 총재를 숙청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뉴요커는 “판빙빙과 멍훙웨이의 (사회적) 추락은 시진핑에게 권력이 점점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뉴요커는 “지난해 시진핑의 사상이 중국 헌법에 명기된 이래로 당에 대한 충성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며 “판빙빙의 사과문에서 나타나듯이, 개인의 행위가 ‘정치적 행위’로 확대 해석될 여지가 커졌다”고 덧붙였습니다.

“‘경제 자유’란 판빙빙 세대 가치, 시진핑 이념과 충돌”


뉴요커 분석에 따르면 판빙빙 실종 사태는 ‘시대적 가치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덩샤오핑(鄧小平) 의 개혁 개방 이후 태어난 판빙빙(1981년생)은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로 꼽힙니다. 뉴요커는 “판빙빙이 경제 자유화·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던 덩샤오핑 시대의 수혜자”라며 “당시 시대적 미덕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화(economic liberalization)’라고 전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뉴요커 기사를 작성한 중국계 지아양 판 기자 역시 바링허우 세대란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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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국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덩샤오핑 .




문제는, 판빙빙 세대의 시대적 가치(개인의 경제 자유)가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한 ‘시진핑 사상’과 충돌을 빚었다는 것이지요.

뉴요커는 “판빙빙은 33세의 나이에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줄리아 로버츠의 수입을 제칠 정도로 명성과 부를 쌓았다. 세계적 브랜드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그녀를 섭외하기 위해 중국 시장에 몰렸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난 부유한 집안에 시집 갈 필요가 없다. 내 자신이 부유하기 때문”이라는 판빙빙의 옛 발언 역시 소개했지요.

결국, 이런 ‘튀는 언행’ 때문에 판빙빙이 공산당으로부터 찍혔다는 지적입니다. 뉴요커는 “판빙빙이 ‘시 주석에 버금가는’ 명망을 누린 괘씸죄를 받았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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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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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전 총재의 경우는 어떨까요. 중국 당국은 멍 전 총재의 체포 사유로 뇌물과 부패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공안 출신인 멍 전 총재 자신이 ‘형사사법체계의 전문가’라는 사실이라고 뉴요커는 전합니다. 고위 관료들의 부패 혐의 추적 및 본국 송환 작전을 담당했던 이가 거꾸로 부패 혐의를 받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뉴요커는 또 다른 주장을 제기합니다. 뉴요커는 “중국 정부에 연일 비판을 가하며 ‘시진핑 정권의 적’으로 부상한 부동산 부호 궈원구이(郭文貴)를 체포하지 못한 것이 그(멍 전 총재)의 숙청에 연관됐을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멍 전 총재가 시 주석과 공산당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해 처벌을 받았다는 관측입니다.

자국 정치적 위협, 국제 이미지보다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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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진행요원으로부터 헌법 수정안 표결 용지를 전달 받고 있다. 이날 헌번 수정안 투표는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사진=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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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이 마오쩌둥 시대와 흡사한 건 문구 표현 뿐만이 아닙니다. 뉴요커는 판빙빙과 멍 전 총재에 대한 강제 구금 조치가 ‘문화대혁명의 산물’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판빙빙의 ‘홀리데이 리조트’ 감금이 마치 구시대(마오쩌둥)로의 회귀를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지요. 이런 식의 처벌이 마오쩌둥 정권의 인사 숙청 방식이라는 분석입니다.

‘문화대혁명 회귀설’까지 회자되는 시 주석의 공산당. 이들은 대외적으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진 않을까요. 서구 전문가들이 “판빙빙과 멍 전 총재에 대한 감금 행위는 중국 공산당이 정통성 훼손을 자초한 것”이란 따끔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요커는 “중국 정부 입장에선 해외 언론에 불명예스럽게 오르내리는 것보다 자국의 정치적 위협을 방치시키는 것이 더 큰 리스크”라고 진단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내외 이미지보단 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충성심’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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