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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부장판사 "밤샘수사는 고문, 법원이 조서 인정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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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前행정처 차장 19시간 밤샘조사 받은 후…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6일 오전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검찰의 밤샘수사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전날 검찰에 출석해 이날 새벽 5시에 귀가한 지 약 4시간 뒤였다. 강 부장판사는 특정 사건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날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밤샘수사, 논스톱 재판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워 묻고 또 묻는 것은 근대 이전의 '네가 네 죄를 알렷다'고 고문하는 것과 같다"며 "밤샘수사는 피의자·변호인이 동의해도 위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밤샘수사로 작성된) 이런 조서(調書)의 증거 가치를 배척하면 단박에 고칠 수 있다"며 "형사재판 법관 한 명의 결단만 남았다. 검사를 비난할 게 아니라 법원이 변하면 된다"고 했다.

판사들이 밤샘수사를 통해 작성된 검찰 조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결단을 내려 검찰 수사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밤샘수사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과거 이를 둘러싼 인권 침해 논란이 제기되면서 검찰은 당사자가 동의한 경우 동의서를 받아 밤샘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작성된 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지는 판사 재량이다. 관련 대법원 판례도 없다. 그런 만큼 이제는 판사들이 그런 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말자는 게 강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지난해 1월 소셜미디어에도 쓴 글인데 최근 법원 수사를 계기로 검찰의 조사 관행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에 올렸다"고 했다.

최근 검찰의 법원 수사와 관련해 현직 판사가 실명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한 법원 사무관이 검찰에 소환돼 긴 시간 동안 동일한 내용을 계속 되묻는 식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만 말하면 돼)'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며 "'검사는 불러서 조지고, 판사는 미뤄서 조진다'는 말이 요즘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6월 수사 착수 이후 50명 넘는 전·현직 법관들을 소환 조사했다. 현직 부장판사들의 연이은 비판 글은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법원 내부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오후 2시 임 전 차장을 전날에 이어 다시 소환해 조사했다. 전날 오전 9시30분부터 조사를 받고 이날 새벽 5시에 귀가한 지 9시간 만에 다시 소환한 것이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혐의를 대체로 부인하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게시문 전문이다.

◉ 밤샘수사(조사), 논스톱 재판에 관한 단상

2018. 10. 16. 적고 10. 18. 수정하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강민구)

※ 아래 글은 종전에 적은 글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특정 개별 사건과 관련한 언급이 아니고, 법원의 공식 견해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평소의 필자의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견해이니 곡해하거나 견강부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한국 법조계의 관행 중 외국인이나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눈에 비추어 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밤샘수사(조사)”, 장시간 휴식 없이 하는 “논스톱 재판”진행 이 두 가지에 대해 한정해서 본다. 형사 피고인의 구속기간의 제한도 속히 개선되어야 하나 초점이 넓혀지는 것 같아 이 두 가지 논제에 대해서만 소박한 개인 의견을 개진한다. 이 문제제기를 계기로 여러 가지 지혜와 실천이 모아져서 입법으로 해결되기 이전이라도 이 문제가 해소되었으면 하는 자그마한 소망이 필자의 바램이다.

[1] 밤샘수사(조사)

중범죄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신문조서 획득 관행을 보면 수시로 통밤을 넘겨 새벽이나 그 다음날 동이 트고 나서 수사기관에서 나오는 모습을 흔히 본다. 언론에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보도한다. 오히려 밤을 새워 열심히 일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흔히, ① 피의자 등의 명시적 동의가 있고, ② 해당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온 김에 다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③ 조사는 밤 12시 이전에 끝났는데 당사자의 조서 확인 과정이 필요해 스스로 밤을 새운다. 는 이 세 가지 논거로 밤샘조사를 정당화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의견을 피력한다.
① 동의가 있어도 위법이다. 밤샘조사나 밤샘재판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형사재판에서 중대하게 지켜져야 할 내용이며, 피조사자의 동의가 있다고 하여 그 부적절함이 제거된다고 볼 수 없다.
형사절차는 그만큼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더 큰 법익을 지켜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조사자가 동의하면 된다는 것은, 가령 구속된 피의자가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구치소내가 더 편하다는 이유로 더 머무는데 동의하면 계속 구치소에 둘 수 있다는 이야기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이다.
② 조서확인시간 포함해서 적어도 초저녁 이전에 마쳐야 한다. 조사 시간을 18:00까지 마치면 21:00 전후이면 확인시간이 충분할 것이다.
③ 당사자가 두 번 오기 싫다고 단 번에 끝내 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위법행위를 방치되면 안 되고, 차라리 숙박시설을 수사기관 청사에 구비 못할 바에는 당사자가 밤샘을 원해도 돌려 보내야 한다.

필자는 이제는 이런 관행이 비록 당사자나 변호인의 자발적 동의가 있다 해도 위법이라고 외칠 때가 한참 지났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필수 욕구 중 하나가 수면인데,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워 묻고 또 묻고 하는 것이 과연 근대 이전의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고 언어 고문하는 것, 즉, “답정너”(답은 정해 졌고 너는 대답만 하라)과 진배없는 것이다. 이미 종전에 학술적으로, 그리고 판례의 방론으로 이런 관행에 대한 우려가 지적된 바 있다.

가장 깔끔한 해결은 입법적으로 모든 피의자신문조서는 전문증거로 당사자가 법정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하지 않게 개정하면 된다. 하지만 그 이전이라도 증거능력과 증명력 이론으로 얼마든지 탄력성있게 형사재판에서 운용할 수 있다.

검사를 비난하고 욕할 게 아니라 판사가 피고인의 부동의사 밤샘조서를 증거로 보지 않으면 수사기관 종사자도 밤새는 것는 하라 해도 안할 터이다. 즉, 법원이 변하면 검찰이 변하고, 그러면 나라가 다 변한다.
결국 이 문제는 검찰의 문제이기도 하나, 결국 법관의 문제로 귀결된다.

부디 필자의 사소한, 그리고 외로운 외침이 ‘기디온의 나팔’처럼 당장 내일부터라도 시정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고자료]

『그동안 수사관행으로 굳어져온 철야신문은 인간의 수면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일종의 고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같은 해석론에도 불구하고 철야 신문의 관행은 여전하다. 언론에서는 철야 신문을 심지어 열심히 수사하는 모습으로 미화하기까지 하는 현실이다. 피의자 수사 시 하루 8시간의 수면을 보장하고, 연속해서 2시간 이상 신문할 수 없으며, 신문 시간의 막간에 휴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영국의 수준에는 아득히 못 미치더라도, 최소한도 철야 신문은 허용될 수 없음을 법적으로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장시간의 야간 신문을 통해 얻은 자백과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할 수 있겠다.』
- 한인섭, 『형사소송법 중 개정법률에 대한 검토 및 대안』, 서울대학교 법학 36권 3·4호(99호), 1995년 발간 논문 중에서 인용

『공소외 4는 검찰에서의 제1, 2회 진술조서 작성 당시 비록 이 사건에 관하여 처음으로 신문을 받기는 하였으나 30시간 넘게 철야로 조사를 받으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한 데다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공소외 4는 .... 당시 미국으로 출국하여야 하는 상황임에도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상태여서, 수사관들이 구속 또는 출국금지조치의 지속 등을 수단으로 삼아 공소외 4를 회유하거나 압박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검사가 작성한 공소외 4에 대한 제1, 2회 진술조서도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인데,....』(대법원 2006.01.26. 선고 2004도517 판결 중에서 일부 인용)

2. 장시간 논스톱 재판

예전에 오대양 사건에서 밤을 세워 재판한 것이 칭찬 비슷하게 회자된 바 있고, 왕왕 국민참여재판에서 심야를 넘겨 논스톱 재판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근래에는 오후 2시에 개정하여 6.5 시간 동안 휴정 없이 논스톱 재판했다는 기사도 있다.

필자는 이런 관행에 단호히 반대한다.

아무리 좋게 봐 주어도 두세 시간 이상 쉬지 않고 재판 진행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 재판장이야 재판에 몰두, 집중하여 생리현상도 저절로 억제되나, 참여관, 실무관, 피고인, 속기사, 대리인, 방청객들의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1~2시간 재판하고 중간에 10분 정도 휴정한다고 재판이 망가지지 않는다.

흐름이 끊어진다고 죽 이어서 한다지만 이는 재판장 본인만 생각하는 처사이다. 화장실 가고 싶은 욕구도 인간의 본질적 욕구 중 하나인데 법관(재판장)이 무슨 권한으로 이를 억압시킬 수 있을까.

이제는 이런 잘못된 법조계 관행들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외쳐야 할 때가 한참 지났다. 왜 지금까지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떠드느냐는 비난도 감수한다. 하지만 필자는 오래 전부터 공개적으로 주위에 구두로, 글로 이 소신을 피력해 왔다. 그리고 스스로 재판정에서 장시간 연속재판을 하지 않은 것을 지켰다.

이러한 개인적 주장에 좀 과격한 언사가 있어도 새겨서 이해하리라 믿고 제도개선과 관행개선에 대한 건설적 의견과 선진각국의 경험이나 사례에 대한 지혜를 집단지성으로 전부 모으고 싶다.

비록 지금은 혼자만의 외로운 외침이고 주장이나 조만간 우리 사회는 반드시 이 길을 갈 것이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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