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학교앞 성범죄자 살아” 밤외출 삼가고 호신술 배우는 학생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려대 총학 긴급공지… 불안 확산

“여성 상대 범죄로 10년형 살다 출소”, 야간실습 학생들 날 밝아야 하교

일부 카톡방선 실시간 ‘위치’ 공유… 당사자 “잘살아 보려는데 억울”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꼭 확인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범죄입니다.”

13일 고려대 안암캠퍼스 재학생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총학생회가 보낸 ‘긴급 공지문’을 받았다. 학교 주변에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으니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검색하고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총학생회가 긴급 조치에 나선 것은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A 씨가 고려대 후문에서 100m 떨어진 곳에 거주한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A 씨는 20대 여성 6명을 성폭행 또는 간음하려다 상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10년형을 받은 뒤 올 8월 출소했다. A 씨의 집은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원룸과 기숙사에서 가깝다. 현재 성범죄 전력이 공개된 사람 가운데 고려대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은 A 씨가 유일하다. 김태구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A 씨는 특정 연령대 여성에게 가해를 했던 사람이고 학교 근처에 살고 있으니 안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여학생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모 씨(18·여)는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캠퍼스 밤 산책을 포기했다. 김 씨는 “호신술 수업을 더 열심히 듣고 있다”며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간작업이 많은 디자인학부 학생들은 오전 2∼3시에 작업이 끝나도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아진 뒤에 하교하기도 한다. 일부 학생은 A 씨를 목격하면 카톡방을 통해 위치를 공유하거나 새벽 외출을 피하고 있다.

불안이 커진 배경에는 최근 대학가에서 잇따르는 성범죄가 한몫하고 있다. 식당 아르바이트생 박모 씨(28)는 동덕여대 강의실과 복도 등지에서 음란행위를 한 뒤 사진과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가 15일 경찰에 붙잡혔다. 동덕여대 학생 중 일부는 16일 교내에서 열린 이 사건 관련 공청회에서 박 씨가 알몸으로 강의실 등 곳곳을 휩쓸고 다닌 만큼 박 씨의 몸이 닿았을 수도 있는 책상과 의자를 전면 교체해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대에서도 5월 이 학교 졸업생 김모 씨(33)가 도서관 열람실에서 여성의 신체 사진 10여 장을 불법촬영하다 체포된 적이 있다.

재학생 김모 씨(20·여)는 “요즘 성범죄 사건이 워낙 많은 데다 학교 주위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무섭다”고 토로했다. 재학생 이모 씨(19)는 “학내 도서관 몰카 사건 이후 학생들이 더 예민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A 씨는 본보 기자와 만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여기에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쁜 짓을 한 건 안다. 이제 안 그럴 것이고 진짜 잘 살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A 씨는 매일 보호관찰관에게 자신의 위치와 일과를 보고하고 있다. 경찰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전화를 하고, 3개월에 한 번꼴로 대면 면담을 한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려대 안팎에서는 A 씨가 이미 법적인 처벌을 받았고, 헌법상 주거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범죄자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고 해도 인터넷 등을 통해 이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재학생 강모 씨(19·여)는 “A 씨의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며 “학내에서 ‘A 씨를 찾아서 쫓아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지나친 것”이라고 말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