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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프리카 개발에 눈 먼 중국의 신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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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해 아프리카 케냐와 중국과의 협력 사업으로 개통한 케냐 철도 착공식에서 케냐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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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원한 친구이자, 형제’라고 칭했던 아프리카에서 반중 감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인 사업가들 사이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 행태가 횡행하면서, 아프리카 바닥 민심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차관은 빚더미로 돌아오고, 국가 기간 산업 인프라와 천연 자원만 고스란히 빼앗기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가 신 식민주의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케냐에서 오토바이 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인 사업가 류자치씨가 케냐인 전체를 원숭이에 빗대는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다가 중국으로 전격 추방 조치 됐다고 전했다. 류씨의 발언은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케냐인 리처드 오치엥(26)씨가 SNS(소셜네트워크)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해당 영상에서 류씨는 “모든 케냐인은 원숭이 같다. 우후루 케냐타(케냐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류씨는 오치엥씨와 출장길에 원숭이를 만나자 바나나를 던져주며 “너도 같은 형제 아니냐, 나눠 먹으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류씨는 중국으로 쫓겨났지만 케냐 사회는 중국에 대한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특히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며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20,30대가 폭발했다. 곳곳에서 그간 중국인들로부터 당했던 인종 차별 ‘제보’가 속출했다. 익명을 요구한 케냐인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회사에선 중국인 직원과 케냐인 직원이 별도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고, 중국인 화장실을 치우는 일은 케냐 직원의 몫이라며 서러움을 폭로했다. 중국인 관리자가 사소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케냐인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일도 있었다. 오치엥씨의 경우 임금미달은 기본, 회사에서 “웃지 말라”는 황당한 규칙까지 감내해야 했다.

케냐와 중국 협력의 상징인 철도 산업 역시 차별과 착취의 대표적 공간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케냐 현지 언론 더스탠다드에 따르면, 같은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케냐인과 중국인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밥을 먹고, 중국인 직원들에겐 객차 내에서 흡연과 휴대전화 소지가 허용되는 특혜가 제공되는 반면 케냐인들은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임금 차별도 만연하다.

특히 케냐인 직원들에겐 열차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하는 등 기술 이전과 교육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열차 시설 대부분의 장비 안내문을 중국어로만 적어놔 중국어를 익히지 않는 이상 케냐인들은 허드렛일만 전전해야 하는 것이다.

NYT는 “마치 ‘짐 크로 법’(인종분리법)이 존재했던 19세기 미국과 비슷하다”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케냐인 직원들은 신식민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노골적인 차별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전직 NYT 특파원인 하워드 프렌치는 '중국의 두번째 대륙'이라는 저서를 통해 아프리카에 정착한 많은 중국인들이 문화와 인종에 대한 계층 의식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를 최하층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케냐에 거주하는 중국인 수는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대부분은 거대 주택 단지에 살면서 직장까지 버스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케냐 현지인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로비에 거주했던 중국인 환경운동가 홍샹 황은 "(케냐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분리됐기 때문에 대체로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며 "이들은 바깥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구에서 퍼트리는 편견이라는 변명을 내놓고 있다. 노예무역과 식민지 개척을 일삼았던 서구 제국주의와 달리 자신들은 아프리카와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9월 아프리카 53개국 정상을 베이징에 초청해 아프리카의 관계 증진을 위해 무상원조 150억 달러를 포함, 600억 달러의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그러나 프렌치씨는 “이는 요점을 흐리는 변명이다. 지금 이순간 아프리카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중국인들이다”고 일갈했다. 전근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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