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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육아, 정말 지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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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경 기자]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버티다 버티다 떨어져 나가면 '경단녀’가 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을 동시에 하는 워킹맘의 고통을 제대로 기록하고 남겨야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결혼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성평등지수가 높은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10년 차 기자인 임아영 경향신문 기자는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생각의힘, 2018년) 속에 진땀 나는 진짜 육아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임아영 기자를 만났다. 엄마들은 '경단녀’가 될 수밖에 없고 아빠들은 아이와 지낼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우리 사회 구조를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된 '리얼 워킹맘’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82년생' 임아영 기자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성취지향적으로 살아왔지만 아이를 낳고서야 가정생활의 행복을 알게 됐다. 그 행복을 남성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저출생(저출산)의 원인을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해온 한국식 자본주의와 공고한 가부장제"로 꼽았다.

◇ "임금노동과 돌봄노동 병행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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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 저자인 임아영 기자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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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가 책 제목인데요, 어떤 것들을 모르고 엄마가 되셨어요?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막상 낳아보니까 정말 지옥 같았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예상하지 못한 무게의 고통이 오니까, '왜 이런 걸 아무도 얘길 안 해줬지?’, '이런 걸 알려주면 아기를 낳지 않을까봐 얘길 안 해줬을까?’(웃음) 생각을 했어요. 첫 아이 낳고 육아휴직 복직 후 본격적으로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을 병행하니까 분노가 계속 커졌어요. '두 가지 일을 지금 노동시간 체제에서는 병행할 수 없는 거구나’ 하고요.

한때 제 직업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다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도 노동시간이 길고 조직 눈치 보느라 쓸데없이 회사에 눌러앉아 있는 시간도 길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 돌볼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죠. 두 가지를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걸 많이 느끼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 낳았을까’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어요. 지금 저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참고하고 있는 거예요."

Q. 일곱 살, 27개월 두 아이 엄마로, 기자로 일하고 계십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어제도 야근하고 퇴근길에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택시가) 안 잡혀서 결국 지하철 타고 갔어요. 그러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란 생각을 했어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걸까?’, '일 안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얼마 전에 친정엄마가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울면서 '내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게 내가 평생 노력한 결과인데,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그만두면 상실감이 클 것 같아 놓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원래부터 나였던 나를 증명하는 것도 있고, 엄마가 된 이후에 나를 증명하는 아이들도 있으면 좋겠는데,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여자 후배들은 저한테 기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제가 버텨야 여자 직장인으로서 다른 모델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수없이 있지만 그래도 제가 버티면 후배 세대, 더 나아가 제 아이들 세대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도 있고요."

◇ "아이 세대도 그래야 한다면 '한국에서 살지 마’라고 얘기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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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는 '일도 좋아하고 아이도 사랑하려면 노동시간이 줄고 모든 걸 엄마한테 쏠리는 구조를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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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 사회에서는 일과 아이, 둘 다 좋아하고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일도 좋아하고 아이도 사랑하려면, 노동시간이 줄고 모든 걸 엄마한테 쏠리게 하는 구조를 바꾸면 됩니다. 저는 다행히 순한 남편이랑 결혼해서 집 안에서는 거의 마녀처럼 '더 많이 네가 양보해야 해’ 하면서 어떤 다른 여자보다는 유리한 구조에 있어요. 이 책이 완성되고 마음에 걸렸던 건 '더 가부장적인 남편이랑 사는 여자들도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Q. 일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어요.

"아침에 8시 20분에 나와서 저녁에 8시에 들어가요. 12시간이죠. 아이는 10시간 자니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평일에 2시간입니다. 너무 부족해요. 아이한테 '엄마가 일하는 사람이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지’라고 넘겨요. 우리 아이 세대에도 그래야 한다면 '넌 한국에서 살지 마’라고 얘기할 거예요.

최근에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갔어요. 수요일에는 초등학교 수업이 오전 11시 40분에 끝나더라고요. 학교 앞에 갔더니 아빠, 할머니, 엄마 다 데리러 와 있었어요. 한국식 자본주의가 정말 문제라고 느끼는 게,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없는 시간이 기껏해야 10년이에요. 0세부터 10세까지면 됩니다. 그 이후는 아이들이 부모가 곁에 있겠다고 해도 싫어해요. 그런데 이 사회가 10년을 주지 않아요.

부모가 아이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은 결과가 1명도 안 되는 출산율인 거죠. 사람의 유전자는 아이를 기르는 행복을 안다고 생각해요. 물론 육아는 고통스럽고 체력전이지만 아이가 한 번 웃으면 모든 고통이 다 날아가는 작업이지 않나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젊은 사람이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안 낳는다거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겠죠."

◇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게 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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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는 '절대 자신의 탓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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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좋은 직장 다니면서 돈 많이 버는 게 최고인 줄 알았어요. 아이가 웃어줄 때, 아이한테 음식을 만들어 먹였을 때, 이런 사소한 게 행복이라는 걸 몰랐죠. 원래 제가 굉장히 성취지향적 인간인데,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그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행복을 남성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어른이 한 아이를 행복한 시민으로 기르는 것 말고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뭘까? 조직에 1등 직원이 되는 것만큼, 한 아이를 풍요로운 감정을 지닌 아이로 키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달라진 점은 그 전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거예요."

Q. 여성이 일하러 나가면 '욕심 많은 여자’라고 비난받고, 집에 있으면 '논다’고 비난받아요.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건 뭘까요?

"전 세계적으로, 남성에 대한 소득분배가 악화되면서 여성이 일하러 나온 것이라는 통계가 많이 나왔어요. 제가 일하러 나온 게 거창한 뜻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일하러 나온 만큼 남자들도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북유럽,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저출생 문제를 그렇게 풀었어요. 여자들이 나오면서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전업주부로 집으로 들어갔죠. 노동시간 단축과 같이 가는 겁니다. 아빠가 가정주부고 엄마가 비행기 조종사인 그런 집이 평범한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이 오면 개인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로도 활동하셨어요. 엄마들의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모임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가 다양하게 구성돼야 합니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수도 적고 회원도 많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환경, 탈핵 등 덩어리가 커요. 보육도 큰 덩어리지만 당사자 단체가 많이 생겨야 해요. 독일에 가서 세입자협회를 보고 놀랐어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힘은 커져요.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Q.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일도 하고 싶고 아이도 잘 기르고 싶은 보통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계속하면 안 돼요. 이렇게 계속하면 아이를 기르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게 무엇인지 계속 글로 쓰고 싶어요. 글을 쓰면 다양한 피드백이 오니까 제 스스로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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