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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핑크색 갈대밭' 사진 열풍...없어서 못 심는다는 '핑크뮬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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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느낌! 인생샷(인생사진) 건졌어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는 파스텔톤 핑크빛 억새를 배경으로 인증샷(셀프 카메라)를 찍는 것이 유행이다.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 부산 대저생태공원, 경주 첨성대 일대에서 넘실대는 핑크 물결의 정체는 외래종 여러해살이풀인 ‘핑크뮬리’다. 억새, 코스모스 등 가을을 대표하던 전통배경은 앨범 속으로 사라지고, 핑크뮬리가 SNS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2000㎡(약 606평) 규모 울산대공원 핑크뮬리 밭은 몰려든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너도 나도 울타리 뒤로 넘어가 핑크뮬리를 짓밟자 ‘낮은 시민의식이 남긴 흔적, 부끄럽지 않나요’라는 팻말까지 등장했다.

국내에선 드물었던 핑크뮬리가 언제, 어떻게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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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도 양주 나리공원에서 한 여성이 핑크뮬리 속을 거닐고 있다./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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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뮬리 배경, 인증샷 ‘聖地’로
핑크뮬리는 우리식 이름으로는 ‘분홍쥐꼬리새’이다. 꽃 이삭이 쥐꼬리를 닮은 풀이란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4년 전부터 "사진 찍기에 기가 막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제주 H자연생태공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은 이후 SNS에서 ‘인증샷 명소’ 바람이 분 것이다. 이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관광지에 핑크뮬리를 구해다 심기 시작했다. 2016년 전남 순천만, 2017년 경주 첨성대 부근에 핑크뮬리 밭이 생겼다. "핑크뮬리 서식지는 ‘인증샷 성지’"라는 말이 번졌다. 올해 들어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32곳에서 핑크뮬리를 볼 수 있다.

핑크뮬리의 원산지는 미국 중서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관상용 식물로 소문이 나자 아마존, 이베이 등 온라인쇼핑업체에서도 씨앗을 판매할 정도로 인기다. 미국에서 퍼져 나간 핑크뮬리는 이후 유럽 등지로 넘어가면서 차츰 개량됐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는 미국산(産) 핑크뮬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없어서 못 심을 지경이 되자 유럽산도 수입되고 있다. 핑크뮬리 인증샷 열풍이 일자 올해 국내 한 종묘회사(한미종묘)가 독일산을 톤(t) 단위로 수입했다는 것이다. 원예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핑크뮬리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30cm 길이로 자란 핑크뮬리 모종 한 묶음에 3만 5000원~5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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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핑크뮬리 누적 조성 면적./박길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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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 저항성 강한 억센 생존력
우리 생태계에 악(惡)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핑크뮬리를 심은 지자체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생태공원과 관계자는 "핑크뮬리는 외국에서도 조경(造景)소재로 많이 쓰이고 위해성도 없다"며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받은 후 심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핑크뮬리가 방치됐을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생존력이 강해, 한번 뿌리를 내린 곳에서 해마다 이삭을 틔우기 때문이다. 다른 작물을 새로 심으려면 독한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는 특징도 있다. 경기도에서 특용작물농장을 운영하는 조모(58)씨는 "겨울이 되면 (색이) 죽어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줄기에 씨앗이 달려있어 이듬해 그 자리에 다시 자란다"며 "핑크뮬리를 뿌리째 없애려면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잡초’처럼 다른 작물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김도순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학계에서는 제초제 저항성이 강한 핑크뮬리가 잡초처럼 흙에 숨어 있다가 다른 작물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도 보고되고 있다"면서 "인위적으로 들여온 외래종은 관리가 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생태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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