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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창간 기획-콘텐츠가 미래다]비보잉·게임에 웹툰까지…영역 넓힌 한류 ‘뜨겁게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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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산업의 명과 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한·일 공동선언 발표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일본에서는 치즈, 닭갈비가 유행하고 있다. K팝의 가치가 올라가는 등 제3차 한류 붐으로 불릴 만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된 2004년 욘사마 열풍을 1차 한류, 2010년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등이 일으킨 K팝 열풍을 2차 한류라 부른다. 당초 한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한시대를 풍미한 뒤 바람처럼 사라졌던 홍콩영화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한류는 K팝과 K드라마가 앞뒤로 밀고 당기면서 20여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한류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다양한 한류 생태계를 든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보이, 게이머, 웹툰은 글로벌 한류팬을 확대하고 문화 콘텐츠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 세계 비보잉 랭킹 1위 ‘진조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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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시작은 비보이라 자부…해외 마니아들에게 우리 연습실은 관광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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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세계순위 사이트 ‘비보이랭킹즈닷컴’에 접속하면 세계 1위에 ‘진조 크루’라는 이름이 보인다. 진조 크루는 2001년 중·고등학생 7명이 모여 만든 한국의 비보이팀이다. 10여년 뒤 이들은 세계 최고의 비보이팀이 돼 중학교 체육 교과서에도 실렸다. ‘진조’는 ‘나아갈 진(進)’에 ‘불태울 조()’를 합쳐 ‘불태우며 나아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지난 5일 경기 부천시 상동에 있는 진조 크루 연습실에서 ‘스킴’ 김헌준 대표(33)를 만났다.

연습실 입구에 들어서면 각종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상패와 트로피 수십개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김 대표는 중학생이던 1999년 우연히 김수용 작가의 만화 <힙합>을 보고 감명받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폭력적이던 학창 시절에 춤은 탈출구였다. 김 대표와 친구들은 경기 성남의 한 청소년수련관 복도에서 춤을 추면서 실력을 키웠다. 김 대표는 “힙합은 유행이 아니라 문화다. 싸이가 유명해지기 전 외국인에게 한국은 삼성과 비보이의 나라였다. ‘한류의 시작은 비보이였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 비보이 마니아들에게 진조 크루 연습실은 ‘관광 코스’가 됐다. 연습실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소속 비보이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선물을 주고 돌아간다. 그는 “외국에서 공연하면 관객 중 절반은 비보이 마니아, 또 절반은 한류 마니아”라며 “한류가 처음에 비보이 덕을 봤다면 지금은 비보이가 한류 덕을 보고 있다”고 했다.

진조 크루는 2008~2012년 비보이 5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이뤘다. 진조 크루가 ‘R-16’에서 두 차례 우승한 뒤 김 대표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봤다. 국악과 비보잉을 접목한 퍼포먼스였다. 진조 크루는 이 공연으로 2012년 3년 연속 R-16에서 우승했다. 이후 ‘국악 비보잉’을 계속 시도하자 외교부와 각국 대사관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진조 크루는 50여개 나라에서 공연하며 한국과 비보이를 알렸다. 최근에는 국악뿐 아니라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방탄소년단의 ‘마이크 드롭’ 등 K팝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진조 크루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끝없이 반복되는 연습이 있었다. 연습실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새벽 시간을 택해 아침까지 10시간씩 춤을 췄다. 김 대표는 “우리는 오직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연습했다”고 했다. 유명해지자 공연 말고도 행정·홍보 업무가 많아졌지만 진조 크루는 여전히 하루 약 4시간의 연습을 빼놓지 않는다. 비보이랭킹즈닷컴 ‘세계 1위’ 비보이에 이름을 올린 ‘윙’은 김 대표의 동생 헌우씨(31)다.

비보잉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2018 유스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진조 크루는 유스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라온’ 팀 예술멘토를 맡고 있다. 김 대표는 비보이에 대한 한국의 낮은 인식을 아쉬워했다. 비보이를 하나의 예술로 인정해주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어린 행동’으로 취급한다. 김 대표는 “외국에서는 정말 ‘스타’가 된 기분인데 한국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계속 우승하고 태극기를 펼치면서도 ‘이런다고 누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발레 같은 무용은 품격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같은 춤인데도 비보잉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김 대표는 비보이 ‘후진 양성’이 고민이다. 김 대표가 어렸을 때와는 달리 비보이를 꿈꾸는 청소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진조 크루 연습실에는 연습생 5명이 정식 단원이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진조 크루는 대중에게 비보잉을 알리기 위해 2016년 7월부터 매년 부천시와 함께 부천세계비보이챔피언십(BBIC)을 연다. 김 대표는 “사람은 춤을 추면서 살아야 한다. 미술 교사를 하라고 학교에서 미술을 배우는 게 아니잖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 배운다. 저는 춤도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미 로맨스 웹툰 랭킹 2위 ‘아가씨와 우렁총각’

‘우렁각시’ 설정 빌려와 일본 중국서도 인기

“연재 끝나면 실직, 불법 다운로드 근절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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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의 웹툰 <아가씨와 우렁총각>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공개됐다. 레진코믹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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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아가씨와 우렁총각>은 혼자 사는 여자와 그 집에 얹혀살며 집안일을 하는 남자의 얘기다. 당찬 사회인으로 보이지만 외로운 여자 ‘수하’와 집도 절도 없는 남자 ‘태수’가 주인공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한집 생활을 하는 이들은 점차 가까워진다. ‘우렁각시’라는 다분히 동양적인 설정을 제목에 달고 있는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웹툰은 온라인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통해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서비스되는데, 조회 수는 상위권이다. 작가 제이드(필명)는 해외 인기에 대해 “작품에 갈등이 많은 것이 드라마와 유사하다”며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아는 팬들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와는 지난 7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가씨와 우렁총각>은 이달 초 기준 레진코믹스 미국 로맨스 부문 랭킹 2위에 올랐다. 레진코믹스가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등을 제치고 올해 상반기 미국 구글플레이 만화 부문 매출 1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작품의 인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우렁각시 설화를 생각하면 제목만 보고도 웹툰의 내용을 대략 추측할 수 있다지만, 영어판은 제목부터 고민스러웠다.

영어 제목은 ‘The lady and her butler(아가씨와 그녀의 집사)’다. 작가는 “우렁각시를 대체할 단어를 찾기 위해 번역팀과 많은 상의를 했다”며 “처음엔 ‘집 요정(house elf)’이라는 표현을 써볼까 했는데, 서양의 집 요정은 매우 작다고 해서 ‘가정부(house keeper)’와 ‘집사(butler)’ 중 고민했다. 태수가 수하를 여러모로 돌봐준다는 생각에 결국 집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해외 제목 중 원작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은 중국어 제목 ‘我與田螺先生(나와 우렁선생)’을 꼽았다. 중국에도 한국과 비슷한 우렁각시 설화가 있기 때문에 ‘우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일본어판 제목은 ‘お孃さんと家政夫(아가씨와 남자 가정부)’다.

작가는 작품을 들고 해외 팬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기 때문에 인기를 크게 실감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다만 “종종 인터넷 검색을 하면 작품을 봐주는 팬들이 늘었다는 걸 느낀다. 개인 SNS에 외국어 댓글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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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해외 서비스는 원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국어판에서 크게 달라지는 내용은 없지만, 일부는 지역에 맞게 수정한다. 일본어판은 배경도 일본이고 주인공도 일본인이라 특정 장면의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었다. 작가는 “장례식 장면 중 주인공이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있었는데, 번역팀에서 자료를 가져와 이 부분을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다시 그렸다”고 말했다. 등장인물 이름을 활용한 개그를 즐긴다는 작가는 언어유희를 해외판에서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번역팀이 언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한다”며 “번역이 정말 어려운 경우에는 한국어로 원래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따로 달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과 정식으로 해외 서비스 계약을 맺지 않았던 이전 작품의 경우 불법으로 번역돼 유통됐다. 작가는 “페이스북이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 다른 언어로 번역돼 올라온 작품을 봤다. 충격이기도 했고 내 웹툰이 해외로 나갈 줄은 몰랐던 터라 얼떨떨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웹툰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다. 전통적인 출판 만화시장 강국인 일본과 미국에 도전하는 작품을 보며 ‘웹툰의 세계화’를 말하는 이들도 생겼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도 크게 늘었다.

웹툰 작가로서의 삶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연재가 끝나면 실직 상태가 되는 게 웹툰 작가”라며 “나 역시 <아가씨와 우렁총각> 이전 공백기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수익을 빼앗는 불법 다운로드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 ‘LoL 최강자’ 프로게이머 이상혁

“한국 e스포츠 인프라 선구축…선수들 집중력·판단력 좋지만 자본력 앞세운 미·중 맹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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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들은 e스포츠대회에 참가해 한결같이 ‘타도 한국’을 외친다. e스포츠에서 한국의 위상은 축구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과 비슷하다. 그 위상을 이어가는 선수가 ‘페이커’ 이상혁(22·SK텔레콤)이다. 그는 전 세계 3억명이 지켜본 글로벌 최고 e스포츠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의 3회 우승자다. 세계 e스포츠팬에게 이상혁의 인기는 방탄소년단 못지않다. 공항에서는 수많은 팬이 꽃다발과 선물로 그를 맞는다. 경기장은 더 뜨거워 공연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SK텔레콤이 거액을 이상혁에게 쏟아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혁의 추정 연봉은 ‘30억원+α’로 알려져 있다.

해외 체류 중인 이상혁은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의 장점은 게임 집중력이나 판단력인데 중국 게이머들이 노력을 통해 점점 따라오고 있다”며 “특히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인프라 확대, 한국 프로코치 영입 등 e스포츠산업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의 맹공에 역전당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혁은 초등학생 때부터 취미 삼아 게임을 즐겼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락실, 비디오 등 여러 게임을 접하다 흥미를 느꼈고 프로게이머 직업을 갖게 됐다. 2012년 1월 국내 LoL이 정식 출시된 뒤 ‘재미 삼아 한번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상위 랭크에 오르면서 프로게이머 제의를 받게 됐다. 게임 성적이 워낙 좋아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아버지께서는 늘 ‘어떤 일이든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다”며 “감사하게도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고 말했다.

게이머가 되기 전과 실제 게이머가 된 후 느끼는 차이는 뭘까. 그는 “게이머가 되기 전에는 우승만 생각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하지만 게이머가 되고 난 뒤 게임도 중요하지만 공인으로서의 역할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스포츠 종주국인 한국 대표 플레이어로서 책임감을 갖고 매 경기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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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2013년 ‘LoL 챔피언스 서머 2013’을 들었다. 그는 “데뷔 이후 첫 결승전이기도 했고, 이 대결에서 3 대 2로 극적으로 역전승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가장 아쉬웠던 경기로는 지난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한·중 결승전을 꼽았다. 이상혁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패했다”며 “현지 상황도 열악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회여서 부담감도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게이머가 초강세를 보이는 데는 앞선 인터넷 보급의 영향이 컸다. PC방 활성화도 한몫했다. 2000년대 초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기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프로스포츠 정규리그가 출범하는 등 모든 제도와 인프라가 앞섰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들도 e스포츠 투자를 늘리면서 상향 평준화되는 추세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e스포츠는 단순히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 개발사, 플랫폼, 프로게이머 구단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상혁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 대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열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게 정말 보람 있다”면서도 직업으로 택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프로게이머는 1등을 놓고 경쟁하는 가장 경쟁률이 높은 직업 중 하나”라며 “학업과 게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신의 재능이나 여건 등을 잘 파악해 뛰어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진무·고희진·박병률·주영재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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