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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세대 분리’ 안했다가… ‘퇴거 소송’ 내몰리는 임차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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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결혼해 분가한 아들 집 샀다고…

별거 40년 배우자가 집 샀다고…

제도 악용 사례도 있지만

규정 모르거나 착오도 빈번

“주택소유 여부 기계적 판단

계약해지 통보 관행 시정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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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동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공급한 영구임대 아파트다. 전용면적 30.36㎡로 채 10평이 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ㄱ씨는 입주가 시작된 2001년 생계·의료수급자 자격으로 이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얻었다. 홀로 아들과 딸을 키웠고, 장성한 아들은 2016년 결혼해 분가했다.

ㄱ씨는 올해 초 에스에이치공사 쪽으로부터 “집에서 나가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직장이 있는 충남 천안의 한 공단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산 것이 문제였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포함한 가족이 임대차계약기간 동안 다른 주택을 구입·소유하게 되면 계약이 해지되고 퇴거 조처된다. ‘분가’한 아들이 세대원 분리를 제때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ㄱ씨는 이런 배경 설명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에스에이치공사는 아파트를 넘기라며 소송을 냈다. ㄱ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재판을 치르며 아들 결혼사진, 청첩장, 예식비용 명세 등을 세대원 분리 증거로 제출했다. 서울북부지법은 “결혼식을 올리고 실질적으로 분가한 아들을 세대 구성원으로 보기 어렵다”며 ㄱ씨 손을 들어줬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임대주택 입주자 중 다른 주택을 소유한 사실이 밝혀져 퇴거된 사람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7686명에 달한다. 재산이 있으면서도 임대아파트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ㄱ씨처럼 규정을 제대로 모르거나 착오로 집 밖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 임대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던 ㄴ씨도 엘에이치공사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2015년 7월 결혼한 아들이 집을 구입한 점이 문제가 됐다. 아들이 분가했다는 설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소송으로 번졌다. 제주지법은 “아들이 전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ㄴ씨는 한숨을 돌렸다. 장애인인 ㄷ씨도 15년간 살던 집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40여년 전부터 따로 사는 ‘서류상 배우자’가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배우자가 함께 살 가능성이 없다”는 ㄷ씨 소명을 받아들였다.

함께 살던 가족이 ‘분가 후 주택 구입’을 했다면 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은 계속 유지된다. 그런데도 관련 소송이 그치지 않는 데는 입주자의 부주의 외에도 주택 소유 여부를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ㄱ씨 소송을 대리한 강상용 변호사는 15일 “상당한 자산을 확보하고도 임대주택 제도를 악용하는 임차인도 존재하지만 세대원 분리 규정을 잘 알지 못 해서 퇴거로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 주택 소유 여부를 형식적인 잣대로만 판단해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관행은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미 2006년 임대주택 퇴거 통보 사건에서 “무주택자의 주거생활 안정이라는 임대주택 공급제도 취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라”고 밝힌 바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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