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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건 많이 만들고 이겨서 ‘직장 갑질’ 바로잡아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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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전담 노무사 최혜인씨

비정규직 센터 활동 중 구체적 도움 주고 싶어 노무사 결심

‘정규직 전환을 해고 절차로 이용’한 첫 수임 사건으로 분주

경향신문

최혜인 노무사는 여러 노동 문제를 겪고 고민하는 노동자들에게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싶어서 노무사가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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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노무사(29)의 첫 직장은 생생한 노동 문제들이 넘쳐나는 한국 노동의 최전방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일한다. 최 노무사는 직장갑질119가 채용한 첫 전담 노무사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1월1일 출범한 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같은 노동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해왔다.

최 노무사가 맡은 첫 사건은 수원시에서 일하던 통합사례관리사 ㄱ씨(51)의 부당해고 구제 사건이다. 직장갑질119의 첫 수임 사건이기도 하다. 직장갑질119는 그간 여러 노무사·변호사 도움을 받아 상담을 주로 해왔다.

최 노무사는 ㄱ씨 사건을 두고 곧 중앙노동위원회에 출석한다. 비정규직인 ㄱ씨는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야 했지만, 함께 일하던 13명이 모두 전환된 뒤 해고됐다. ㄱ씨는 국선 노무사를 통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호소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패한 뒤 직장갑질119를 찾았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직장갑질119 사무실에 만난 최 노무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잘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되고 있고 누군가를 배제(해고)하는 절차로 활용되고 있다”며 “억울하게 해고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어 ㄱ씨 사건을 공익사건으로 보고 직장갑질119가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ㄱ씨 사건을 매일같이 꼼꼼히 들여다봤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ㄱ씨에 대한 부당한 인사 평가가 이뤄졌다고 본다. ‘특정 업무’를 장기간 지속했는지만 판단하면 되는 일을 ‘특정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정규직 전환 정책의 본질을 벗어났다고 최 노무사는 보고 있다. 최 노무사는 “ㄱ씨가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있다고 인정된 상태에서, 정규직 전환이 거절될 합리적 이유 없이 부당하게 평가가 이뤄졌다”며 “수원시는 정규직 전환을 신규 채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규정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과 채용은 분리되어 있다”고 했다.

최 노무사는 이 사건을 준비하면서 베테랑 노무사 박성우 ‘노노모(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회장에게 도움을 받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최 노무사는 박 회장에게 ‘사전 답사’를 부탁하면서 준비했다. 노무법인에 입사한 신참 노무사들은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사건을 해결해 가지만, 최 노무사는 직장갑질119에서 유일한 전담 노무사이기에 박 회장에게 ‘개인 과외’를 받았다.

최 노무사는 ㄱ씨 사건을 설명할 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종종 밝게 웃었다. 그는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만족스럽다. 노동 문제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무사가 됐다. 최 노무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사회복지사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노동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졸업 뒤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정책부장으로 일했다. 여러 노동자들을 만나 면접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썼다. 정책에 도움이 될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은 뿌듯했지만, 당장 현실의 삶에서 문제를 겪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노무사가 되기로 한 것도 이때부터다.

1년여 동안 노무사 시험을 준비해 지난 2월 합격했다. 수습 기간을 보낸 곳은 각종 부당한 처우를 받은 노동자들의 구제를 맡아온 노무법인 참터다. 지난 6월까지 약 5개월 동안 노노모 소속 참터에서 일했다. 수습을 마친 최 노무사는 ‘사용자’인 기업과 고용주의 사건을 맡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용자 사건도 수임하는 노무법인을 제외하고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남는 곳이 몇 없었다. 그러던 중 직장갑질119를 알게 됐다. 이곳은 구체적인 대안과 정책, 제도에 관한 일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최 노무사는 “직장갑질119가 사회에 꼭 필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모성 보호에 대한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는데, 다음날 아침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에 대한 상담이 많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에서 느꼈던 일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질문하고 해소할 창구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직장갑질119에서 더 많은 사례를 사건화하고, 계속 이겨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당한 일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진일보한 사회적 소통 창구가 되도록 많이 후원해주세요.”

‘회사에 불만 많으시죠?’라고 적힌 최 노무사의 명함엔 ‘농협 010-119-119-1199’라는 후원 계좌가 새겨져 있었다.

글·사진 |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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