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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사우디 “우리 제재하면 더 크게 보복” 석유무기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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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4일 외교부 성명…‘카쇼기 실종 사건’ 정면 돌파 선언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 언급하며 원유 무기화 암시

이번 사태 이후 국제 유가 급등 중동 정세 흔들려

터키-사우디 합동수사반 만들었지만 타협 땐 미궁에 묻힐 수도



사우디 왕실을 호되게 비판해온 저명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의 ‘음험한’ 실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사우디아라비아가 성명을 내어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사우디는 성명에서 풍부한 석유 자원을 무기 삼아 경제 제재에 대응할 수 있음을 암시해, 11월 초로 예정된 미국의 이란산 석유 금수 조처로 급등한 국제 유가가 다시 한번 출렁였다.

사우디 외교부는 14일 성명을 내어 “사우디는 그동안 지역과 세계의 안전, 안정, 번영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고, 극단주의나 테러리즘과 싸우는 노력을 주도해 왔다”며 “왕국(사우디)은 경제 제재이든 정치적 압력이든 되풀이되는 잘못된 비난이든 아랍과 국제사회에서 왕국의 위치를 약화시키려는 어떤 위협이나 시도에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만약 (국제사회가) 왕국을 상대로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동으로 갚아줄 것이다. 사우디 경제는 세계 경제에 영향력이 있고, 필수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대응 조처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세계 1~2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석유를 ‘무기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성명에 대해 ‘매우 강도 높은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에너지 투자 기업인 ‘블랙 골드’의 게리 로스 대표는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를 향해 그들의 강함을 기억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이번 성명은) 매우 강하고 상당히 예외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거꾸로 사우디가 이번 사태의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얼마나 당혹스러워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4일 사우디 주식시장은 한때 7% 급락했고, 브렌트유가 1.8% 올라 81.9달러를 기록하는 등 주요 유가가 나란히 급등했다. 사우디는 지난해 한국의 최대 원유 수입국(비중 28.5%)이다.

사우디가 이례적 성명을 내놓은 것은 예상보다 냉담한 미국 여론 때문으로 보인다. 취임 이후 줄곧 사우디에 우호적 태도를 보여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14일엔 카쇼기가 무함마드 빈 살만(33) 왕세자의 지시로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의혹에 대해 “우리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고, 가혹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마코 루비오 의원(공화)도 같은 날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카쇼기를 영사관으로 유인해 그를 살해하고, 그의 몸을 동강 낸 것이라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만장일치로 매우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11월5일로 예정된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조처와 맞물려 중동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견제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위기를 중재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응하는 (미국의) 중동 정책의 중심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빈 살만 왕세자를 뒀었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미국의 ‘충직한 동맹’을 자임하며, 이달 들어 하루 원유 생산량을 역대 최고치(1070만배럴)로 늘리는 등 미국의 중동 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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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터키는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4일 전화 회담을 통해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합동 수사반’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터키와 사우디가 이번 사태가 중동 정세에 미칠 파괴적 영향을 우려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면 카쇼기 실종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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