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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긴 기부천사 … “나누면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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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문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회장

류시문(70)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회장은 7세 때 왼쪽 다리를 다쳐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영양실조 상태에서 중이염을 앓아 양쪽 청력마저 잃어버린 청각장애인이다.

류 회장은 인터뷰에서 “나는 장애인이 아니며 여태껏 정상인과 경쟁하며 살았다”며 “장애인 취급하면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장애를 스스로 극복한 것은 물론 조금도 위축되거나 기죽지 않고 당당히 살아간다는 의미다. 류 회장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 편견, 차별, 특별대우를 질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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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성장한 그는 자신과 가족에게는 ‘구두쇠’다. 류 회장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집안의 가구가 낡아도 좀처럼 바꾸지 않고, 비싼 음식 대신 값싼 라면을 많이 먹어 고지혈증에 걸릴 정도로 근검절약을 한다. 하지만 불우이웃을 보면 돈을 빌려서라도 쾌척해야 직성이 풀린다.

류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설립한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서울시 1호, 전국 2호 회원으로 초창기 우리나라 기부문화 정착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외아들 류원정씨(전국 50호)와 함께 부자(父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돼 국민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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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문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한맥도시개발 사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현금 기부 대신 경북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장려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라며 “도시에서 성공한 출향인은 자신의 고향에서 청년 고용 창출에 발 벗고 나서는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창업에 성공한 그는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산 기부 서약까지 했다. 류 회장은 “자유 시장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는 공정경쟁에 약하다”며 “부모가 일군 재산을 자식이 물려받는 일은 공정경쟁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유산 기부 서약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보통 시민보다 조금 상회한다”며 겸손해했다.

류 회장은 “남에게 의지하고 지원받는 것보다 남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 일이야말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이라며 “기부함으로써 뿌듯한 자부심을 갖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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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복지를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기부가 절실하다”며 “기업, 공동체 등의 다양하고 다원화된 민간 자원을 통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의 재원을 세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면 국민의 복지 재정 부담을 줄이고 이웃 간의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유지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향약’ ‘두레’ ‘울력’ ‘품앗이’ 등의 상부상조 정신을 발휘하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류 회장의 생각이다.

그의 기부 행위는 계속된다. 류 회장은 “앞으론 현금 기부를 지양하고 남은 재산을 경북지역의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쏟아부을 계획”이라며 “특히 지방의 젊은이들은 직장이 있어야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도시에서 성공한 출향인은 자신의 고향에서 고용 창출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한맥도시개발 사무실에서 류 회장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고 꿋꿋하게 살며 겪은 경험담과 기부와 관련된 뒷얘기 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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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을 설명하면.

“7세 때 소 먹이러 산에 갔다가 산소 앞에 있는 개석(蓋石, 비석 위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돌)이 왼쪽 다리에 떨어져 무릎 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에 큰 병원에 갔으면 고칠 수 있었을 텐데 돈이 없어 조그만 읍내 병원에 치료하다가 감염이 됐다. 이후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권유했으나 어머니(장월분)가 반대해 그것만은 막았지만, 길이가 다른 두 다리 탓에 평생 절름발이 신세가 됐다. 그때 어머니 눈에 고인 눈물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또 영양실조와 중이염이 겹쳐 양쪽 고막을 잃어버려 청력이 약하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리를 저는 것도 불편했지만 귀가 안 들려 더 힘들었다. 특히 상대방과 대화하며 잘 들리지 않아도 ‘네’ ‘네’라고 말한 것이 괜한 오해와 불신을 가져온 경우도 많았다. 인공 고막을 사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듣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기부를 한 동기는.

“고등학교 진학 무렵 남동생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가난으로 형제가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 돼 동생에게 중학교 진학을 양보해달라고 간청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고된 농사일을 거들다가 지친 동생은 서울로 올라와 점원 생활하다 18세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결혼도 못하고 50년간 병상에 누워 지낸다. 동생에게 늘 미안하다. 가슴이 미어지며 한이 맺힌다. (류 회장은 눈물을 흘렸고,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하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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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아너 소사이어티를 발족했는데 당시엔 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가 찾아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쓴다며 1억원을 기부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흔쾌히 동참했고 2억원을 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을 설립하며 사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이를 뒤늦게 안 어머니는 아들(류 회장)이 재산을 사회에 다 내놓고 손자(류원정)에게 안 줄까봐 큰 걱정을 했다. 어머니는 평생 저축한 1억원을 손자에게 줬다. 1억원은 제가 드린 용돈도 있었으나 어머니가 폐지를 주어 판돈으로 모은 돈이기도 하다. 손자는 ‘자수성가해 가난한 사람을 도울 것’이라며 그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기부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는.

“한참 전 일이다. 어머니가 농사지으며 모은 300만원을 결혼 밑천으로 주셨다. 어느 날 길가에서 요구르트를 한참 쳐다보는 노숙인을 우연히 봤다. 그는 몇 번 요구르트에 손을 대려고 하다가 참는 것을 보고 절제력이 대단함을 느꼈다. 당신의 참을성을 지켜봤는데 사업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격려하며 지참했던 돈을 그분에게 고스란히 드렸다. 그 후 소식이 없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사무실을 찾아 와 미국 미네소타 대학을 다니다가 등록금이 없어 중퇴했다고 얘기하더라. 그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고 2000만원을 빌려서 줬는데 지금껏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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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입원 중인 여동생 치료비를 마련해 병원에 갔는데 마침 옆 병실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젊은 엄마를 본 후 마음을 바꿔 먹었다.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 여동생에게 주려던 돈을 그 젊은 엄마에게 준 기억이 있다.

현금 기부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더라. 어느 단체는 운영비가 부족하다고 해 5000만원을 기부했더니 (돈을) 계속 요구하더라. 그 단체는 모 여성 국회의원 옷까지 사줘야 한다고 말해 이를 거절했더니 앙심을 품고 중상모략을 해 안타까웠다.

미국의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태국 휴양지에 나를 초청한 일이 있다. 18만원짜리 양복을 사 입고 그를 만났다. 올리버 감독은 새 옷을 산 것을 알아보고 ‘평소 좋은 옷을 안 입고, 먹는 것도 절약한다고 들었는데 새 옷을 입고 왔다’고 말하더라. 성산효대학원대학교에서 95세 노모를 모시고 있다며 명예효학 박사를 받았는데 부끄럽고 감사하다.”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 실천을 설립한 배경은.

“양극화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가족만 잘살려고 해서는 안 되며 병역, 납세 등 국민의 의무는 물론 기부를 자발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돈을 가질수록 사회지도층일수록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한다. 공동체정신을 함양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 실천을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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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초대 원장과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명박정부 때 취약계층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출범했다. 정부의 요청으로 원장을 맡았으나 6개월 만에 사의 표명했다. 진흥원 운영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의사결정 과정도 공무원과 교수 중심으로 진행돼 현장성이 없고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그만두었다. 최초로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직선제 회장에 당선됐다. 취임 후 공개 입찰 등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으나 내부의 거센 저항과 근거 없는 음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맥도시개발을 창업한 동기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며 건물과 다리의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주변의 권유로 건물 안전점검과 시설물 안전진단, 보수보강 공사를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경북도가 추진 중인 ‘경북형 사회공헌기업’(가칭) TF팀장을 맡아 기대가 크다.

“그동안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지원, 보조금으로 유지하다가 3~5년 만에 문을 닫는 등 생존율이 높지 않았다. 사회적 기업도 이제는 일반 기업처럼 설립 단계에서부터 신기술을 개발하는 등 창의성과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경북형 사회공헌기업은 사회적 기업에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해 성장 파이를 키우고, 더 많은 과실을 사회에 돌려주는 자생력 있는 특화 기업이다. 경북형 사회공헌기업은 민간 자본을 기업에 끌어들이되 기업운영을 통해 나오는 수익은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모델이다. 사회공헌기업은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자본금 가운데 49%는 사회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 49%는 취약계층 등을 소액주주로 참여시키고, 일부(지분 2%)는 감독을 위한 자본으로 활용한다. 사회공헌기업은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해 다시 저소득층을 돕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킬 것이다. 공익성을 띠며 자생력이 있고, 일자리까지 생기는 방식이다. 기존 사회적 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차별화된 경북형 사회공헌기업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계획은.

“고향에 돌아가 경북형 사회공헌기업을 통해 농촌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생활안정과 사회안전망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회적·경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겠다. 경북 청년들이 삶의 터전이 있어야 마음 놓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는가.”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류시문 회장은 …

△ 경북 예천(1948) △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명예효학 박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 류관순열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초대 원장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 △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서울시 제1호, 전국 제2호) △ 한신대 초빙교수 △ 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고문(현)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문(현) △ (주)한맥도시개발 회장(현) △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회장(현) △ 경북형 사회공헌기업(가칭) TF팀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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