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8138192 0092018101248138192 09 0902001 5.18.16-RELEASE 9 뉴시스 0

[미래생각]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

글자크기
뉴시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필자가 일본에서 공부를 하던 시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로 재임하던 기간(약 5년)과 상당부분 겹친다. 한국에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과 같은 극우적 색채가 강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이와함께 필자에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하면 ‘성역 없는 구조개혁’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구조개혁의 핵심은 “관(官)으로부터 민(民)으로”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에 있었다. 고이즈미 전총리가 부르짖던 구조개혁의 구호가 너무나도 강렬하여 필자의 뇌리에는 “구조개혁=신자유주의”라고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흥미로운 현상을 보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최근의 고용 부진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이다. 정책실패에 대해 변명하거나 정쟁도구로서의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구조가 문제라고 한다면 구조를 고쳐야 해결될 것이니 그 해결책은 구조개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문재인정권의 정책기조는 구조개혁인 것이다. 즉,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이다. 형용모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구조개혁이 신자유주의자의 전가의 보도는 아닐 터이다.

문제는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은 신자유주의자의 구조개혁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에는 공식화된 목적이나 처방전을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독일 사민당 정권의 총리였던 슈뢰더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이나 영국 노동당 정권의 총리였던 블레어가 추진한 제3길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슈뢰더나 블레어는 종전의 진보주의 노선을 과감하게 수정하였다. 문재인 정부도 국민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규제완화를 포함하는 혁신성장정책도 경제정책의 한축으로 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자유주의자의 구조개혁에는 명확한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식화된 처방전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자는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을 통하여 시장의 자유와 경쟁을 촉진하면서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등을 하면 잠재 GDP내지 잠재성장률이 높아질 것으로 굳게 믿는다. 이러한 처방전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서 일관되게 적용된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이유는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 과제는 그 실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국민소득주도성장을 예로 들어 보자. 저소득근로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소득을 함께 올려야 한다는 목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요술봉이 없어서 다양한 정책을 패키지로 시행하여야 한다. 더군다나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서 영세자영업자의 갑작스러운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도 시행하여야 한다. 정책을 패키지로 도입하는 것도 매우 어렵거니와 그 효과가 발생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거래구조와 관행을 바꾸어야 하는 공정경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경제분야의 구조개혁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에는 그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취임 초반에 노동과 복지에서 구조개혁 수준의 국정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들 과제를 정책화하고 시행하는데도 역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어려움은 집권 2년도 되지 않은 문재인 정권에게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의 고용부진에 당황한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정책에서는 속도를 조절하고 혁신성장정책에서는 속도와 힘을 더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는 딜레마에 빠진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급격히 인상하였지만 그 반발을 달래고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하여 엄청난 논란속에서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였다. 최저임금의 지급 여부에 대해서 노동행정당국은 철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여 법의 준수를 확보하여야 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반발을 의식하여 노동행정당국이 근로감독을 주저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들린다.

그리고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한 은산분리 완화에 있어서도 여당 내부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규제혁신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신자유주의자의 규제개혁과 차별을 드러내고 싶겠지만 규제를 푸는 문제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이러한 어려움과 딜레마는 결코 속도조절과 같은 임시방편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정 최고책임자가 구조개혁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조개혁의 달성을 위한 전략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여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진보주의자는 신자유주의자의 구조개혁에서 배워야 한다. 신자유주의자가 추진하는 구조개혁의 비전과 전략 과제는 단순 명쾌하고 그 추진은 확고하고 단호하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구조개혁에 성공할 수 없고 구조개혁 없이는 경기 회복도 없다고 부르짖었다. 모두에게 좋은 구조개혁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 지도자는 구조개혁의 고통과 불안에 대해서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개혁의 핵심 과제의 추진에서는 단호하여야 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개혁에 반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집권 여당의 거물 정치인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저항세력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의 구조개혁에는 ”성역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다고 구조개혁을 단호하게 추진하여야 한다는 것이 무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선택과 집중속에서 구조의 개혁에 핵심적인 과제를 추진하여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개혁의 과정에서 어떤 집단이 불이익을 입게 된다면 세심한 주의력과 인내력을 가지고 그 불이익을 완화·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5년 단임의 대통령제의 한계 탓일까 종래의 위정자들은 집권 초기 지지율이 높을 때 선명하고 상징적인 핵심 과제를 밀어붙이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먼저 집권 여당의 기능과 역할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은 5년 단임이지만 집권 여당은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연속성을 기하여야 하는 주체로서 집권 여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현재의 대통령을 밟고 나가서는 정권 재창출은 요원할 것이다.

나아가 여당만이 아니라 국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구조개혁의 핵심 과제에 대해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다면 그 과제의 생명력은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넘어설 것이다. 진보주의자의 구조개혁이 안고 있는 태생적인 어려움은 정당 정치의 복원을 통해서, 그리고 여당, 야당, 정부의 협치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jyh1974@nafi.re.kr)

일본 교토대학 법학 박사

일본 쿄토대학 법학연구과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교수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 뉴시스 빅데이터 MSI 주가시세표 바로가기
▶ 뉴시스 SNS [페이스북] [트위터]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