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에세이 오늘]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1962년 오늘 평양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김일성이 백두산 일대 국경조약에 서명한다.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이다. '북ㆍ중 국경조약'이라고도 한다. 이 조약으로 중국과 북한은 국경선의 주향을 명확히 규정하고 백두산 국경선 획분의 근거를 확정했다.

북한은 조중변계조약으로 그 전까지 중국 영토로 돼 있던 천지의 5분의 3과 그 일대를 편입했다. 백두산 최고봉인 백두봉(장군봉ㆍ2750m)과 송화강 상류지역 일부, 1721년 청과 합의해 설치한 백두산 정계비 터가 우리 영토에 들게 됐다. 1909년 9월 4일 제국주의 일본이 청과 맺은 간도협약 당시에 비해 영토가 약 280㎢ 늘었다. 북한이 천지의 절반을 중국에 넘겼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조중변계조약 제2조 제1항은 "조약 체결 전에 이미 한쪽의 공민(公民)이 살고 있거나 농사를 짓고 있는 섬과 모래섬은 그 국가의 영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약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 및 두 강의 하중도와 사주(모래톱)의 귀속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조약의 의정서는 451개 섬과 사주 가운데 북한은 섬과 사주 264개(총면적 87.73㎢), 중국은 187개(14.93㎢)에 대해 영토권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모두 조중변계조약을 비밀에 부쳤다. 중국에서 1997년에 '저우언라이연보 1949~76', 1995년에 '진의(陳毅)연보' 등이 나온 뒤에야 조중변계조약이 체결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가톨릭대학의 안병욱 교수가 2000년 여름 북중 국경 조약을 비롯한 국경문제 관련 협정문을 실은 중문판 조약집을 중국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한 다음에야 정확히 알려졌다. 조중변계조약은 백두산과 두만강 상류의 국경선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비밀 조약이어서 한반도가 통일된 뒤 국경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이 간도(間島)의 영유권을 포기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조중변계조약이 확정한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통일한국의 국경선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는 두만강 일부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댄다. 초강대국들과 이웃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에게는 판단과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국토 수호의 과업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총칼을 겨눠온 70년 세월과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물론 통일한국이 교역국가로 건재하다면 기회는 더욱 확대되리라.

명치끝을 찔리는 것 같은 아픔으로 다가오는 지명이 있다. 간도. 만주 지린성 동남부지역으로 중국 현지에서 옌지라고 부르는 지역. 원래 읍루와 옥저의 땅이었다가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여진족이 흩어져 유목생활을 하던 이곳에 조선 후기부터 유민(流民)이 들어가 미개지를 개척했다. '간도 영유권'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신념이었다. 또한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는 간도지역에 조선인이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과 이들이 겪는 시련과 역경의 과정을 근대사라는 시대적 흐름을 통해 조명한 사실주의적 작품이다. 소설에 나오는 이한복은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만주가 우리 땅이라는 강한 자각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강을 건너면 극형을 받던 시기에 월강죄로 체포된 그는 부사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북간도' 상권 28쪽.

"강 건너는 우리 땅입메다. 우리 땅에 건너가는기 무시기 월강쬠메까?"

huhball@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