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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덮어주고 드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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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지난 추석 연휴에 하루씩 교대하기로 되어 있는 ‘도산서원 참 알기 도우미’ 해설 봉사활동을 한 분이 자진해서 3일 동안 계속 수고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칭찬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집에 있으나 서원에 있으나 마찬가지여서 나왔을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응당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며 겸연쩍어 했다. ‘도산서원 참 알기 도우미’ 활동이란 도산서원 방문객들에게 서원과 퇴계 선생에 대해 좀 더 깊이 알려드리기 위해 작년 봄부터 주말과 공휴일에 실시하는 해설 자원봉사를 말한다. 주중에 선비수련원에서 수련 지도를 하거나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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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일을 하는 60대 어르신들 50여분이 교대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좋은 취지의 활동에 남도 참여하는데 퇴계 선생의 후손인 자신이 조금 더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겸양의 변이었다. 이 사실을 다른 후손들이 알면 미안해 할 수 있다는 것까지 사려 깊게 고려하는 모습도 비쳐졌다. 자신이 한 일을 자랑은커녕 이렇게까지 하다니 요즘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처신이다. 필자가 이 일을 접하게 된 과정도 아름답다. 본인은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함께 봉사활동을 한 동료들이 그냥 지날 일이 아니라며 이를 칭찬하였고, 그러다보니 필자의 귀까지 들리게 된 것이다.

들어서 알게 되니 기분이 좋고, 칭찬을 전하게 되니 더 기분이 좋고, 칭찬을 받고도 겸손해 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필자만 그럴까? 알린 분들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했고, 당사자도 알려진 것이 쑥스럽기는 할지언정 굳이 싫기야 했겠는가? 아름다운 행동은 이렇듯 드러내고 칭찬하면 당사자는 물론 모두가 기분이 좋아지고 인간관계도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니 함께 하는 도산서원 참 알기 도우미 활동도 더 잘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남의 잘못을 드러내면 상대의 기분이 언짢아지고 나아가 서로 다투게 된다. 없는 데서 남의 흉을 보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세상살이 이치로 볼 때 그 사실이 언젠가는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 사이가 나빠져 끝내는 원수가 된다. 이처럼 남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흉보기를 일삼는 사람은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척을 지는 사람이 점점 많게 될 것이니, 끝내 잘 될 수가 없다.

요즘 우리는 남을 칭찬하는 모습들을 아주 보기 어렵다. 반면 남을 흉보는 것은 너나없이 습성화되어가는 느낌이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지도층 인사들도 상대를 칭찬하거나 존중하기보다 나쁘고 그르다고 몰아세우며 자기만 좋고 옳다는 주장을 되풀이 한다. 과연 그럴까? 모든 사람이 자기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한다면 세상에 옳은 것은 그 사람들 숫자만큼 많아야 한다.

퇴계는 제자들에게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늘 타일렀다. ‘자기를 버리고 타인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不能舍己從人) 배우는 사람의 큰 병통이다(學者之大病). 천하의 옳은 진리가 무궁한데(天下之義理無窮) 어찌 자기만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할 수 있으리오(豈可是己而非人)’라고 한 언행록의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맏손자에게도 ‘착한 것을 보면 내가 한 것처럼 생각하고(見善如己出), 악한 것을 보면 내가 병든 것 같이 하라(見惡如己病)’는 중국 북송시대 학자인 장사숙(張思叔, 이름은 繹)의 좌우명을 손수 써서 평생 실천하도록 일렀다.

그래서인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설립한 퇴계 종손(이근필 16대 종손, 87세)은 얼마 전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착한 것은 드러내자는 ‘은악양선(隱惡揚善)’ 운동을 제안하였다. 이 운동이 확산한다면 이른바 ‘내로남불’은 발을 붙일 수 없게 되고 우리사회는 사람을 만날수록 기분 좋고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양보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와 선비수련원, 도산서원 사람들부터 실천에 나서려 한다.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참여가 이어지면 더욱 좋겠다는 기대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