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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마젤란호(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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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994년 오늘, NASA의 금성 탐사선 마젤란 호가 임무를 완수한 뒤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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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돌아올 리 없고 찾아갈 리도 없을 이를 떠나 보내며 비장해지지 않기란 힘들다. 오래된 편지, 낡고 정든 자전거, 편도 항공권 같은 사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 비장감의 부피는 시간ㆍ기억과 양과 질에 좌우될 것이다. 따져 보면 크든 작든 모든 것(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운명으로 ‘나’와 얽히는 거지만, 대개는 마지막에야 그 운명을 환기한다. 그래서 그냥 슬프지 못하고, 스스로 설득하고 견디려는 마음으로 비장해지는 것일 테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은, 미연방우주국(NASA)과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SMOS)의 여러 우주선을 설계하고 만들고 발사하는 과정에 개입한 수많은 이들이, 일 사이사이 어쩌면 지금도 시시때때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짐작해 보곤 한다. 불씨 지핀 한지 끈을 매단 정월 대보름의 연들처럼, 1980년대 우주왕복선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대기권 바깥으로 떠난 거의 모든 우주선이 처음부터 편도 일회용이었다.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 항성 간 플라즈마 속을 항해하고 있을 보이저호처럼, 우주 어딘가에 있으리라 여길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까.

금성 탐사선 마젤란호는, 처음부터, 갖은 탐사임무를 완수한 뒤 뜨겁고(섭씨 470도) 높은 기압(지구 90배)에 해체될 게 뻔한 불구덩이 속으로 돌진해야 할 운명으로 제작된 우주선이었다. 1989년 5월,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에 실려 지구를 떠난 마젤란호는 역대 금성 탐사선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발사 100여일 만에 금성 궤도에 진입해 94년 5월까지 행성 표면 지도를 완성했고, 대기 성분과 정밀한 중력 데이터를 측정했다. 수명이 다해 가던 마젤란호의 마지막 임무가, 역추진로켓 없이 태양전지판을 헬리콥터 날개처럼 돌려 금성의 중력을 최대한 상쇄하며 낙하(착륙)하는 거였다. 하지만 사실상 추락이었다. 파손된 전지판 날개나마 돌렸을 그 장엄한 발버둥과 함께, 마젤란호는 1994년 10월 12일 새벽 3시 02분(PDT, 태평양표준시), 지구로 마지막 전파 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추가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오전 11시까지 9시간을 더 기다린 NASA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 마젤란호의 임무 종료를 공식 발표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