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실리콘밸리, 중관춘이...판교테크노밸리 1밸리 넘어 2,3밸리로

소형 메모지 프린터 제조 스타트업 망고슬래브는 판교 제2테크노밸리의 기대주다. 창업 1년만인 지난해 매출 80억원의 기염을 토했다. 그간 경기도 성남 제1테크노밸리 스타트업캠퍼스에 있다가, 직원이 늘어나면서 더 넓은 공간을 찾아 지난해 11월 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허브 준공과 동시에 둥지를 틀었다.

2019년 말 준공되는 제2판교테크노밸리 조감도. 약 13만평 규모에 ITㆍBT 등 첨단기술기업 약 2000여개가 들어서면 이 일대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메카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기업지원허브와 기업성장센터 두 곳만 입주가 가능한 상태다. [자료제공=국토교통부]

이곳에는 망고슬래브와 같은 일반 스타트업 120개사 외에도 정보보안과 드론 등 특정 분야까지 모두 160개 스타트업이 ‘창업 열기’를 뿜어대고 있다. 기업지원허브는 경기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민간 주도의 과학기술과 산업 성장동력을 높이기 위해 조성한 제2 판교테크노밸리의 1호 완공건물이다.

망고슬래브의 정용수(37) 대표는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C랩 출신이다. 무선사업부에서 갤럭시 상품기획을 담당하던 그는 C랩을 거쳐 입사 11년 차이던 2016년 6월 억대 연봉을 내던지고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판교에는 망고슬래브와 같은 C랩 출신 스타트업만도 10개가 있다.

제1 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직원 수가 느는 등 사세가 확장 돼 제2밸리 기업지원허브로 사무실을 옮긴 '망고슬래브' 정용수 대표. 망고슬래브는 소형메모지 출력용 프린터 제조기업으로 2017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사진=변선구 기자]

정 대표는 “가까이에 카카오ㆍ넥슨 등 IT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물론 우리와 비슷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모여 있어 언제든 정보교류도 할 도 있고, 세무ㆍ법률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많아서 편리하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중국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과 같은 글로벌 수준의 창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만들어지는 걸까. 판교테크노밸리가 제1밸리를 넘어 제2ㆍ3밸리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덩치뿐 아니다. 창업지원 및 보육시설이 완공되는 족족 3~5대1의 경쟁을 뚫은 스타트업들로 채워지고, 미국ㆍ일본ㆍ중국 등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예비 스타’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2판교테크노밸리의 기업지원허브 전경. 창업진흥원 산하 120개 스타트업과, 항공안전기술원 산하 22개 드론 업체가 이곳에 입주해 있다. 2022년 금토동 일대에 제3판교테크노밸리까지 준공되면 이 일대는 약 10만명의 첨단산업 종사자가 근무하는 미래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판교 제2 테크노밸리는 66만㎡(약 20만평)에 달하는 기존 1 테크노밸리에 더는 기업이 들어설 곳이 없어지면서 구상됐다. 내년 12월 43만㎡ 규모의 제2 밸리가 최종 완공되면 판교에는 첨단 제조업과 지식기반산업 등 2000여개 기업이 들어서게 된다. 기존 1밸리가 정보기술(IT)ㆍ생명공학(BT) 중심 중소ㆍ대기업이 들어선 뒤 정부가 주도한 스타트업 관련 시설이 만들어졌다면, 2밸리는 처음부터 창업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구성됐다. 2밸리에 입주할 기존 중소ㆍ대기업들은 반드시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보육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입주 기업에 대한 분양은 이미 완료된 상태다.

이준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방송기반과장은 “2022년 제2밸리 북서쪽에 58만㎡가 넘는 제3밸리까지 조성이 완료되면 이 일대는 약 10만 명의 첨단산업 종사자가 근무하는 미래신성장동력의 산실이 된 전망”이라고 말했다.

2022년 준공 예정인 성남시 금토동 일대의 제3 판교테크노밸리 부지는 경부고속도로를 끼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인근의 대왕판교IC에서 LG전자ㆍ삼성전자 등 대기업 R&D 센터가 위치한 양재동까지 10km도 채 되지 않는다. 정부는 제1밸리의 성공모델을 제3밸리까지 확장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중앙포토]

판교 제1테크노밸리는 이미 성공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과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물론, 성공한 ‘선배 기업’들이 멘토가 돼 투자와 창업보육까지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스타트업캠퍼스 3층에 입주한 ‘이놈들연구소’와 ‘베이글랩스’는 미국의 인디고고와 킥스타터로부터 각각 210만 달러와 190만 달러를 투자받는 데 성공했다. 웨어러블(wearable) 기기와 히어러블(hearable) 기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이놈들연구소는 삼성전자 C랩 출신 1호 벤처기업으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6에서 ‘웨어러블 톱 10’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 1월 유럽 최대 멀티미디어 전시회인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8에서 손가락으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줄, '시그널'을 선보여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삼성전자 C랩 출신 1호 벤처기업인 이놈들연구소가 개발한 스마트 시계줄 '시그널'. 통화 소리가 외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기존 스마트 워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제공=이놈들연구소]

성공한 벤처투자 전문가들의 경험을 활용해 스타트업 시장을 키우는 이스라엘 모델을 따라 2013년 신설된 '팁스(TIPS)'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중소기업벤처부와 민간 엑셀러레이터 인포뱅크 등이 9대1 비율로 기금을 출자하고, 판교 유스페이스의 일부 공간을 대여해 현재 약 70여개의 파트너사를 두는 등 스타트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또 네오위즈ㆍ스마일게이트 등 민간 게임업체 역시 자회사에 벤처캐피털을 두고 기존 온라인 유통망을 이용해, 게임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판교를 찾는 외국 스타트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1밸리 스타트업캠퍼스 3동 1층은 흡사 미국 실리콘밸리나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와 같은 풍경이다. 25개국에서 온 외국계 우수 스타트업 70여 사가 입주해 휴일과 밤낮없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스타트업캠퍼스 내 기존 국내 스타트업들과 교류하고, 벤처캐피털이 함께하는 데모데이에 참가하는 등 활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스타트업캠퍼스에는 국내외 스타트업 200여 개 외에도 창업 멘토링센터 등 입주지원기관 23곳과 성균관대와 경희대의 캠퍼스까지 운영되고 있다.

제1판교테크노밸리 3동 1층에는 전세계 25개국 약 70여개 해외 스타트업이 자리하고 국내 기업들과 교류하며 기술ㆍ사업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9월 그랜드챌린지에서 선정된 해외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진=오상민 기자]

김종갑 본투글로벌센터장은 “조만간 기업가치 1조원을 뜻하는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판교에서도 생겨날 것”이라며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사례를 보기 위해 독일 등 해외 기업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 따르면, 판교테크노밸리는 2016년 말 기준 77조5000억원의 매출을 내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이는 국내 제2 도시인 부산의 지역내총생산(GRDP)과 맞먹는 수치다. 정부는 이 같은 성과를 확산시켜 나가기 위해 지난해 11월, 2022년까지 제2밸리 북서쪽 금토동 일대에 제3밸리를 조성하는 계획까지 만들었다.

판교테크노밸리 매출액이 2016년 말 기준 인천의 지역내 총생산(GRDP)을 추월해, 부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자료제공=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런 성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단계의 지원에서 나아가, 스타트업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사후 관리체계 등 아직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을 지적된다.

이동훈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정책연구본부 전문위원은 “제 중추 역할을 하는 중견ㆍ강소기업이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맺거나 인수합병(M&A)을 함으로써 혁신역량과 안정성을 주고받는 시너지 효과가 필요하다”며 “시장에서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판교=최준호ㆍ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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