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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조선의 병풍 미학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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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해상군선도10폭병풍. [사진제공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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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닮은 건물로 랜드마크가 된 서울 신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조선의 '보물급' 병풍이 걸린다.

개관전으로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체험형 작품 등 동시대 미술을 선보였던 이곳이 두 번째 전시로 고미술을 선택하는 파격적인 변신에 나선 것이다. 이달 3일부터 12월 23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에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을 비롯해 보물 제733-2호 '헌종가례진하도8폭병풍', 보물 제1199호 '홍백매도8폭병풍' 등 보물 2점을 비롯한 조선시대 병풍과 액자 78점을 만날 수 있다. 국내 10여 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병풍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를 둘러본 소감은 가히 조선은 '병풍의 나라'였다는 것. 병풍은 조선시대 600년에 걸쳐 임금의 의자인 용상(龍床) 뒤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국가적 의례와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거나,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 집안 장식 등에 쓰인 실용적이면서도 호화로운 조선 미술의 '팔방미인'이었다.

지하 1층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작품은 '금강산도'다. 불교와 도교의 성지였던 민족의 영산, 금강산은 고려 때부터 흔히 그려졌고 겸재 정선에 이르러 진경산수화 유행의 정점을 맞았다. 가로 폭이 5m가 넘는 10폭의 '금강산도'는 압도적으로 큰 화폭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산세는 먹으로만 표현하고 주요 지명만 붉은색으로 표기한 것은 금강산 전경의 해설에 집중한 작품임을 알려준다. 편지혜 큐레이터는 "작가는 미상이지만 완성도를 볼 때 왕실 관련 집안이나 사대부가 소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해외 문화재 환수 일환으로 2013년 국내에 돌아온 '해상군선도10폭병풍'도 사연이 재미있다. 서왕모(西王母)의 요지연(瑤池宴)에 참석하는 여덟 신선을 그린 작품이다. 신선 그림에 출중했던 김홍도의 신선도를 모본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최초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창업주인 독일인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는 구한말 고종으로부터 이 병풍을 선물받았다. 볼터는 고국으로 돌아가 이를 유산으로 남겼고, 외손녀 바버라 미셸 예거후버가 소장하고 있었다. 외손녀는 한국에 돌려주라는 볼터의 유지에 따라 2013년 서울옥션에 판매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합 끝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는 이 병풍을 6억6000만원에 사들여 1년6개월의 복원을 거쳐 이번 전시에 공개했다.

세밀한 묘사를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병풍도 있다. 1902년 11월 덕수궁에서 열린 고종의 망육순(51세)과 즉위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를 그린 '고종임인지연도8폭병풍'이다. '미스터 선샤인'의 배경이 된 대한제국 시대, 서양식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신식군대가 궁궐에 도열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보물인 '헌종가례진하도8폭병풍'은 1844년 낭양 홍씨 재룡의 딸을 계비로 책봉하고 경희궁 숭정전에서 있었던 진하례를 그린 작품이다. 헌종의 외삼촌인 예문제학 조병구가 쓴 하례교문이 첫째 폭에 기록됐다. '기성도8폭병풍'은 19세기 평양성 일대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았다. '태평성시도8폭병풍'은 18세기 말 이후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풍족한 소비와 유흥을 즐기는 2100여 명의 인물이 활동하는 장관을 그린 도시풍속화다. 이 밖에도 구운몽, 춘향전, 삼국지연의 등 당시 유행했던 소설을 그린 병풍이나 화조도, 책가도, 묵죽도, 민화 등 다양한 소재의 병풍을 만날 수 있다.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에 대해서 편지혜 큐레이터는 "궁중에서 제작됐을 것으로 보이는 특징이 보인다. 순종이 병에서 쾌차한 뒤 그린 작품이 아닐까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전승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관장은 "4~5m의 장대한 화면이 펼쳐지는 병풍은 조선을 대표하는 가장 커다란 전통 회화이지만 오히려 병풍 자체를 조명한 전시나 연구는 드물었다. 이번 전시는 병풍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의 작품을 비롯하여, 전통을 잇는 근대의 몇몇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기 위하여 기획됐다"고 말했다.

성인 입장료 1만2000원.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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