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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컵만 들어도 손목이 시큰…'친정엄마 병' 들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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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29)
눈을 감고 들어보라! 흘러나오는 소리가 바이올린 소리인지 아니면 해금의 연주 소리인지……. 아리랑 선율 마디마디에 국악 특유의 절묘한 시김새와 농현(弄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아리랑은 특별하다. 그녀는 그저 악보대로 아리랑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바이올린으로 ‘한국의 소리’를 창조해 내는 데는 7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주법을 터득하기 위해 스스로 해금을 배우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았다. 그러기에 유시연의 아리랑은 특별하다.

“손목이 아파서 죽겠는데 딸년이라는 것이 엄마 아픈지도 모르고 바쁘다고 자기 애만 맡기고 휙 가버리네요. 어찌나 서러운지.....”

“나도 이제 늙어서 힘든데 애 좀 제발 그만 좀 데려왔으면 좋겠어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


손자를 봐주는 할머니(친정엄마)들의 말이다. 손자가 찾아오면 반갑고 안아주고 싶은데 그것도 한 두시간이지 반나절이 넘어가면 탈진해버린다. 안아달라고 달려드는 손자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할머니의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손목 어디가 아프세요?”

“엄지손가락 쪽인데 손목이 아파서 젓가락질도 어렵고, 글씨쓰기도 어려워요.”

“그럼 엄지손가락을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싸 쥐시고 제가 손목을 이렇게 꺾어 볼 테니 어떤지 보세요.”

중앙일보

핀켈스타인 검사법 (Finkelstein test). 엄지손가락을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싸 쥐고 손목을 꺾을때 통증이 있으면 건초염(드퀘르벵병)을 의심해본다. [사진 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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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그렇게 꺾으니까 엄청나게 아프네요.”

“이렇게 손목을 꺾을 때 아프면 드퀘르벵병(De Quervain disease)을 의심해요.”

“드~퀘~? 뭐라고요?”

“쉽게 손목에 생기는 건초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과 힘줄을 싸고 있는 막(건초)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에요.”

“이런 병이 왜 생겼을까요?

“손자들이 많이 안아달라고 하죠? 손자를 안을 때 겨드랑이에 손을 껴서 들어 올리는데 이때 잘못하면 손목인대에 무리가 가서 염증이 생기게 돼요.”

“그럼 손자 봐주다가 생긴 병이네.”

“네 그래서 제가 ‘친정엄마 병’이라고 별명 지었어요. 물론 아이 육아 때문에 생기는 통증은 많지만요.”

“딸이 육아 휴직 기간이 좀 남았는데 그래도 빨리 복직하겠다고 하니, 애를 안 봐 줄 수도 없고……. 빨리 낫는 방법은 없을까요?”

“엄지손가락을 고정하는 보조기를 하시고 치료를 받으시면 좋아질 거에요. 그보다 아이를 안을 때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통증이 오는 자세는 피하시고 가능한 아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재욱의 한마디
중앙일보

손녀 돌보는 할머니. 이 시대의 친정엄마들은 부모를 봉양했지만 자기 자신은 자식들로부터 봉양을 못 받는 최초의 세대이자,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까지 키워주는 첫 번째 세대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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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친정엄마들은 ‘부모를 봉양해야 했으나, 자신은 자식으로부터 봉양을 못 받는 최초의 세대이자.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까지 키워주는 첫 번째 세대다. 그러면서 딸에게는 하소연도 못 한다. 아무리 아파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서 꾀병처럼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다고 하면 자식들이 안 찾아올까 봐 몹시 아픈데도 자식들에게 아프다고 이야기도 못 하고 혼자서 몰래 병원을 찾기도 한다.

친정엄마도 여자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면 여자 나이 최고의 전성기다. 인생을 즐겨야 할 시기에 아이를 양육하느라 희생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자식 양육의 문제는 오늘날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정엄마의 희생이 대안은 아니다.

나는 양육은 나라에서 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자식을 키우면 그 자식이 한 가족의 노동력이 되어 부모를 봉양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일찌감치 끝났고, 자식들은 커서 세금을 냄으로써 나라를 봉양하게 된다. 그러니 수혜당사자인 나라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옳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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