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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산후 우울증이 유난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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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전에서 20대 산모가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된 딸을 살해해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러한 산후 우울증과 영아 살해의 기사는 거의 매년 반복해서 나오지만, 댓글 반응은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공감도 있고, ‘산모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도 있다.

산후 우울증.
과연 산모의 탓으로만 돌리면 될 문제일까?

◆ 산후 우울감과 산후 우울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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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감은 30~75%의 산모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하며 별다른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호전된다. 산후 우울감은 일시적인 감정의 변화로서 출산 후 3~5일 가량부터 시작되어 수일에서 수주 이내에 저절로 사라진다. 가벼운 짜증, 일시적인 슬픔,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 등이 잠시 나타난다. 산후 우울증은 산모의 10~15%에서 발생한다. 10명의 조리원 동기가 모여 있으면 그중 1~2명 정도는 산후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산후 우울감과 산후 우울증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산후 우울증은 우울감으로 시작하여 수개월 혹은 수년까지도 지속할 수 있다.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을 때 더 자주 발생하며 과거 기분의 문제 혹은 가족력이 있을 때도 잘 발생한다. 대부분이 수면의 문제를 보이며 과도한 죄책감과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아이를 해치는 생각이 수반되기도 한다.

◆ 옛날엔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 산후 우울증이 주목받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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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다르게 현대 사회는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이 일찍 결혼해서 많은 아이를 양육하며 벼농사를 하던 때와는 달리 삶이 다양해졌다. 스마트폰과 SNS, 유튜브 등은 타인의 삶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기 쉽게 되어 산후 우울증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결혼 연령이 늦춰지면서 출산 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출산 이후 회복하는 속도가 더디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출산율이 낮으므로 아이 한 명을 키울 때 완벽하고 소중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육아 방식에 좌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핵가족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혼자 보는 구조가 되고 있다. 국가에서 산후 도우미, 아이 돌보미 등의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이나 친척, 조카들이 아이와 소통하며 키워 나갔던 과거 세대보다 힘에 부치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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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후 우울증 사례
# 20대 초반의 A씨는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적극적인 구애로 또래보다 일찍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임신이 기쁘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며 스펙을 쌓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 엄마가 될 준비를 못 했다는 생각에 가끔 두려움이 몰려들기도 했다. A씨는 아이가 태어난 후 밤잠을 제대로 못 자며 아이를 키웠다. 남편은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는다며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의 이유 없이 우는 소리를 들으니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점차 아이에게 부족한 나쁜 엄마가 되어 간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자주 흘렀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해외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드레스코드에 맞춰 생일 파티를 하는 친구들의 밝게 웃는 사진 등이 펼쳐졌다. A씨는 자신의 삶이 너무 비참하다고 느꼈다. 수시로 ‘엄마가 못나서 미안해’, ‘나는 엄마 자격이 없어’라는 자책감이 깊어졌고, 결국 아이와 함께 힘든 세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 30대 중반의 B씨는 꼼꼼한 성격에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서 직장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탓에 신입 사원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B씨는 작년에 사내 커플로 결혼에 골인했고,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임신으로 생긴 신체 변화가 신경 쓰였지만, 곧 회복될 거라 생각하면서 출산일을 기다렸다. 책을 읽으며 육아 공부에 매진했던 B씨는 출산 이후 책과는 다른 아이의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중없는 아이의 울음과 수유 시간에 지쳐갔다. 그 와중에 유선염이 발생해서 모유 수유를 포기해야 했다. 아이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견해 차이로 매일 다투었고 결국 혼자서 육아를 하겠다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콤한 과자와 빵으로 허기를 달랬고 체중은 점차 불어났다. 쉽게 회복되지 않는 체형에 점차 위축이 되면서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고 날마다 울면서 지냈다. 남편은 퇴근 후에 육아를 병행하려 했으나 매사에 짜증만 내는 B씨의 태도에 같이 화를 내며 한참을 나갔다 들어오곤 한다.

위 두 사례를 살펴보자. 출산 후에는 생물학적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신체적 변화가 나타난다. 사회적으로는 출산 이전과 이후의 삶의 변화가 커서 원래 자신이 꿈꿔왔던 삶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눌려서 자신을 한없이 질책하고 나아가 죄책감을 느낀다. 남편이 도움을 잘 주지 못하거나 처음에 도와주더라도 결국 우울감을 이해 못하고 양육에 손을 떼게 된다. 이는 산모에게 더 큰 양육부담을 안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 산후 우울증은 극복 대상이 아닌 치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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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을 진단 받으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3~6개월가량의 약물 및 면담 치료를 하게 된다. 면담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끔 인지 교정을 위주로 시행된다. 면담은 남편과 함께 시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상황에 맞게 한 번씩이라도 치료의 경과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장을 이용한 안전한 우울증 치료 방법인 경두개자기자극술(TMS: Trans cranial Magnetic Stimulation) 등을 병행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약물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될 수 있으면 수유는 피하는 것이 좋다.

◆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남들 다 하는 출산이라고 생각해서 대단할 것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못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해보면 안다. 행여나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될까 봐 열 달 날마다 꼬박 마음 졸이며 지냈고, 죽을 고비를 다해 아이를 낳았고, 아직은 불완전한 작은 생명체에 온전한 삶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온 정신을 다 해 지낸다는 것을.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또 잘하라고 하지도 말자.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된다면 내 탓 남 탓을 하지 말고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자.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행복해지자고 함께 시작한 것 아닌가? 어려운 과정을 헤쳐나가다 보면 봄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 에딘버러 산후우울 자가보고 설문지
* 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최저인 우리나라에서도 산후 우울증에 대해 심각한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보건소와 의료원에서 체계적인 산전, 산후 관리를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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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윤석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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