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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케이컬처 DNA] `넵!`만 잘 연구해도 스타 작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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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컬처 DNA]

'넵!'

상사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가장 자주 쓰이는 답장이다. '네'라고 대답하려니 건방져 보이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보내려니 정 없게 느껴져 고뇌 끝에 나온 궁여지책이다. 기자는 이러한 직장인의 고충을 파고들어 카카오 콘텐츠 연재 플랫폼 브런치에서 스타 작가가 된 두 사람을 최근 서울시 충무로 매일경제 본사에서 만났다. 한 명은 일러스트레이터 윤직원(본명 윤선영·28), 다른 한 명은 글 쓰는 디자이너 박창선(33)이다. SBS 영상편집기자로 일하던 윤직원과 브랜드 디자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박창선 디자이너는 어느 날 사회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낸 웹 콘텐츠를 제작하게 됐고, 이것이 온라인상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SNS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윤직원=만화를 그리며 영상편집도 하는 프리랜서다. 개인 페이스북에 하나둘 올린 만화를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줘서 브런치에 '윤직원의 태평천하'라는 콘텐츠를 연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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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의 태평천하` 中 취직을 하면 과로사를 걱정하고, 퇴사를 하면 아사를 우려해야 하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그린 `운명의 수레바퀴` 편. 윤직원은 직장인들의 고충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공감대 있게 그려낸다. / 사진제공=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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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선=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 애프터모멘트를 운영하고 있다. 약 4년 전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브런치에 포트폴리오 삼아 글을 하나둘 올렸던 게 본격적인 SNS 연재 출발이었다. 비전공 디자이너로서 전공 디자이너를 따라잡기 위해 이미지가 아닌 글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클라이언트 중 한 명이 일을 너무 짜증나게 진행하는 거다. 술 김에 '클라이언트의 용어 정리'라는 글을 쓰고 잠자고 일어났는데 순식간에 조회 수 20만회를 찍었다. 내 브런치 조회 수가 원래 200~300회 정도였는데, 하루 만에 1000배 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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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선 작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디자이너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에서 발췌. `모던한 느낌으로`라는 애매모호한 말은 `블랙앤화이트에 라인을 써달라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 애프터모멘트 크리에이티브랩 브런치 캡처


-왜 하필 직장인의 고충을 소재로 삼았나.

▷윤직원=나 같은 경우 원래 장편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제가 영상편집기자라 회사에서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취재할 시간이 없다. 나는 리얼리티 떨어지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원래 좋아하는 만화도 '송곳'처럼 사실성 높은 거라서. 그래서 내가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소재를 쓰다 보니깐 직장 생활이 됐다.

▷박창선=열받아서다. 왜 클라이언트들은 일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너무 답답하게 하니깐.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의 용어를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려는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에게 인사를 먼저 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이렇게 맡기고 싶은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근데 페이스북 메시지로 대뜸 '회사 소개서 얼마예요'라고 묻는 이상한 분들이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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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윤직원(왼쪽)과 디자이너 박창선이 각자의 대표 콘텐츠를 스마트폰 스크린에 띄워 소개하고 있다. / 사진=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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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화제가 된 후 각자 삶에 생긴 변화를 소개해달라.

▷박창선=작년 10월 '넵'에 관한 이미지를 하나 봤는데 너무 웃겼다. 그래서 나와 클라이언트 SNS 대화를 살펴봤는데 나도 계속 '넵, 넵, 넵, 넵'거리고 있더라. 그래서 브런치에 ''넵'병을 심층탐구해보았다'는 글을 올렸다. 내가 주고받은 카톡과 이메일을 전부 분석해서 30개 유형을 다뤘다. 처음에 쓰고 2~3일 정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지울까 생각도 해봤는데 '카카오 채널'에 소개되고 조회 수가 폭발했다. 총 47만회에 달하는 뷰가 나왔다.

-화제가 된 후 디자이너로서 수입도 늘었나.

▷박창선=사업 시작하고 3년 동안 생활비를 제외하고 순수익이 '0'이었다. 그런데 '넵' 게시물이 인기를 끈 이후 5개월 동안 이전 3년간 모은 만큼 돈을 벌었다. 정말 궁금했다. 브랜드 이야기를 엄청 썼을 땐 의뢰도 제대로 안 들어왔는데(웃음). 예전엔 어디 강의를 하고 싶어서 제안서를 넣으면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그때부터는 강의를 해달라고 먼저 연락이 오더라.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고' 하지 않나. 그때 번 돈은 한 푼도 못 쓰고 통장에 모셔놨다. 통장에 돈이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이러다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어 공황장애가 오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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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선 작가는 `넵`병을 심층탐구한 글이 화제를 모은 후 본업인 디자이너로서 작업 의뢰가 대폭 늘었다고 했다. / 사진=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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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님도 브런치를 통해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나.

▷윤직원=내 경우는 책을 펴게 된 게 기념비적이었다. 또 카카오톡에 '직장인의 넵!모티콘'이란 이모티콘을 내게 된 것도 SNS 인기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겐 여전히 물성 있는 존재로 내 콘텐츠가 나온다는 게 큰 의미를 갖는다. 어머니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도 내 책으로 바뀌었고(웃음). 만약, 돈이 목적이었다면 웹툰 플랫폼 연재를 노렸을 것이다.

-회사는 계속 다니고 있나.

▷윤직원=올해 2월에 퇴사했다. 현재 프리랜서로 주수입원은 만화보다는 영상편집이다.

-소속이 없어지니깐 소재 얻기가 힘들지는 않나.

▷윤직원=아무래도 그렇기는 한데, 쟁여둔 소재가 많다. 또 주변에서 소재를 얻기도 한다. 백수 이야기도 간혹 가다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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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은 SNS 스타 작가가 돼서 가장 좋은 건 책을 내고, 이모티콘을 출시한 일이라고 했다. / 사진=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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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잘 읽히는 콘텐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메시지가 명확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초기 콘텐츠가 인기가 없더라도 '꾸준함'을 견지할 것을 강조했다. 두 사람 다 9~10번째쯤 올린 콘텐츠부터 본격 인기를 끌었다고.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윤직원은 '퇴사유감'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본격적 운영, 박창선 디자이너는 '스스로의 브랜드 론칭'을 꼽았다. 결국 두 사람을 스타 작가로 만든 건 영향력 있는 SNS라기보다는 무엇이라도 만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창작열이 아니었을까.

[박창영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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