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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세안+] '4인 4색' 최장수 총리에서 서민적 대통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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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하는 동남아 리더십

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방문에 나선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25일 베트남을 찾았다. 이 총리가 베트남을 찾은 이유는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를 조문하기 위해서이다. 꽝 주석은 베트남 권력서열 2위로 외교와 국방 부문을 관장해 왔다. 이 총리는 26일 꽝 주석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귀국한다. 대통령 국내 부재 속에서 총리까지 잠시 국내를 비우며 조문 외교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외에도 인접 동남아 각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꽝 주석의 빈소를 찾는다. 동남아가 차지하는 세계 외교무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상 제고 속에서 동남아 각국에서는 다양한 리더십이 실험되거나 교체되고 있다. 한때 독재형 지도자에 민주화 세력이 도전하는 모습이 대세였지만, 최장수 총리의 복귀에서부터 서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의 변주가 펼쳐지고 있다.

세계일보

◆61년 1당 장기집권 끝낸 ‘돌아온 최장수 총리’…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

올해 동남아 정치지도자들 중 세계 언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사람은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지난 5월 9일 치러진 총선에서 말레이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노정객이다. 그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 동안 최고권좌에 있었던 말레이시아 최장수 총리였다. 농업국가 말레이시아를 제조공업국가로 만든 근대화의 아버지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끝낸 61년 장기집권 체제의 본산이 바로 자신이 몸담았던 통일말레이기구(UMNO)를 핵심으로 한 국민전선(BN)이었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UMNO를 이끌었다가 5월 총선 패배로 최고통치자 자리에서 물러난 나집 라작 전 총리는 그가 한때 후계자로 적극 밀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라작은 마하티르 총리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바탕으로 2009년 총리직을 꿰찼다. 마하티르 총리가 나집을 밀면서 밀어냈던 인물은 압둘라 바다위 전 총리였다. 바다위 총리는 온화한 성품으로 정적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마하티르 총리는 자신이 밀었던 바다위 전 총리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 발언을 쏟아내며 부총리였던 나집의 총리직 등장을 예고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바다위를 자신의 후계자로 처음부터 점찍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후계자로 점찍었던 인물은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였다. 그러나 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위기 와중에 안와르 전 부총리는 실각했다. 외면상 남색혐의 등이 씌워졌지만 외환위기 극복 방안을 두고 마하티르 총리와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올해 5월 총선은 돌고돌아왔던 말레이시아 20년 정치사를 다시 쓰게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1998년 내쳤던 안와르와 지난해 7월 손을 잡았다. 당시엔 무모해 보였던 나집의 퇴각을 위한 ‘적과의 동침’이었다. 하지만 마하티르 총리는 성큼성큼 움직였다. 교도소에 있던 안와르에게 2년 안에 넘겨줄 것이라고 약속하며, 당시 여당연합의 61년의 장기집권을 끝내게 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다시 15년만에 권좌에 오르자 안와르는 교도소를 나와 정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정치적 동반자였던 마하티르와 안와르가 다시 화려한 화음을 낼지 여부는 2년 이내에 결정될 것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22년만에 권좌에 등장하며 말레이시아는 물론 세계 정치현장에 강력한 모습을 새기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8월엔 중국을 찾아 노익장 정치를 과시했다. 이번 달에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각국 언론은 2003년 퇴임 전에도 미국이나 영국 등 강대국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했던 마하티르 총리가 각국과의 양자 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의 존재가 말레이시아 외교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일보

◆재선 꿈꾸는 서민친화형 리더십…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지난 9월 초 한국을 방문했던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서민친화형 리더십을 자랑한다. 지난 2014년 7월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조코위 대통령은 내년 4월 재선에 나선다. 첫 도전 당시에 ‘서민적 풍모’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웠던 조코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도 동일한 접근법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9월 초 한국 방문에서도 조코위 대통령은 당시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패션몰, 한국외국어대 등을 찾아 서민친화형 리더십을 여실히 과시했다. DDP 패션몰의 하루 유동인구는 100만명, 연간 외국인 방문 수는 250만명에 달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조코위 대통령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패션몰을 함께 찾아 여성복과 남성복 의류 매장을 잇따라 찾았다. 한국외대를 방문해서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외대에서 특강을 했던 점을 언급했다. 이어 이들보다도 자신이 오토바이를 가장 잘 탄다는 농담을 하며 강연장에 웃음이 가득 차게 했다. 그는 강연 이후 한국외대 김인철 총장이 기념품으로 제공한 학교 점퍼(과잠)와 티셔츠, 모자를 받아들었다. 사회를 맡았던 고영훈 한국외대 교수가 “단체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으니, 대통령이 강연 참석자들과 셀프카메라(셀카)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자 스스럼없이 학생들 쪽으로 다가섰다. 강연 이후 베트남 방문을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오른 순간에도 한국외대 점퍼를 입어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한국 기업이 더러 선물 전달을 원했지만 이를 피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난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KB)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등장하는 동영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강탈했다. 동영상에서 조코위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차량은 경기장으로 이동하지만 교통 정체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상황에 봉착했다. 좀체 정체가 풀릴 것 같지 않자 조코위 대통령은 경호 오토바이의 운전자를 내리게 한 뒤 직접 몰아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는 수준급 운전 실력으로 생계형 트럭 운전사를 배려하기도 하고, 교통경찰로 변신도 하며 골목길을 통과했다. 영상 속에 담긴 모습을 뒤로하고 조코위 대통령과 비슷한 체형의 인물이 개막식 현장에 등장했다. 개막식 장면을 전하던 언론은 조코위 대통령이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개막식장에 도착하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외에도 여러 차례 서민친화적인 오토바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세계일보

◆‘배신’한 민주화의 영웅…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은 이제 더이상 민주화의 영웅도 아니고, 인권의 상징도 아니다. 수치 자문역을 칭송하는 언론이나 인권단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각국 언론은 수치 자문역의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한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당사자가 미얀마의 최고지도자 위상을 확보했지만 기대되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2016년 수치 자문역을 실권자로 하는 민간정부가 출범했을 당시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당시 서구 언론 등에서는 수치 자문역의 등장으로 동남아에도 인권을 중심하는 정부가 출범했다는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군부독재의 잔재가 여전할 것이지만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었던 수치 자문역의 역할에 기대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 미 국무부는 지난 24일 미얀마 군부가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해 조직적인 폭력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 3일엔 미얀마 법원이 로힝야족 사태를 취재하던 로이터통신 기자 2명에게 공직비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야기했다. 로힝야족 사태와 법원의 판결에 국제사회의 질타가 쏟아졌지만, 수치 자문역의 행보는 기대 이하였다. 수치 자문역은 이러한 폭력적 행위를 사실상 두둔하며 국제인권단체의 기대를 온전히 배반했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에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소수민족의 인권을 사실상 무시했다. 아직도 영향력이 여전한 군부를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 인권의식이 부재했든지 비겁한 행보만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다수 외신은 거친 언어로 수치 자문역을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치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심사위원들조차도 이제 그 결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년은 수치 자문역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몰락’의 시간이었다는 냉정한 비판인 것이다.

세계일보

◆스트롱맨(철권통치자)의 거침없는 질주…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2016년 6월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취임 직후부터 오랜 우방이었던 미국과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이 필리핀의 마약 유혈소탕전을 비판하자 즉각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며 거칠게 반응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미국과의 연합 군사훈련 목적도 한계를 명확히 했다. 그간 필리핀 정부가 미국과 공유했던 공동의 목적이었던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적 패권 확장 견제를 테러 대응과 구조·구난으로 바꾼 것이다. 또 미국이 분쟁지역에서 펼치는 전쟁은 필리핀 안보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뒤, 이런 전쟁엔 자국 군대를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의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최근엔 공개 석상에서 기독교 교리와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 22일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성경의 창세기를 거론하며 독설을 가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신은 자신의 창조물을 의심하고 시험해 뱀을 시켜 사과(선악과)를 이브에게 가져다줬고, 이브가 그것을 먹고는 아담에게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원죄를 갖고 태어나고 심지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죄를 짓고 있는데 무슨 종교가 그러냐”며 “이는 매우 바보 같은 명제이며, 이런 이유로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비판적인 입장과 관련이 있다. 가톨릭 교회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펼치며 초법적 처형 의혹을 야기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스트롱맨이지만 투박하고 거친 표현을 주로 하며 탈권위주의적인 행보도 펼치고 있다. 집권 이후 마약근절과 공직자 부패근절, 환경보호 등을 내걸어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미국과 거리 두기 속에서 중국과 접근도를 높이며 자국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스트롱맨의 이미지 속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70% 초중반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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