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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과학을읽다]참기름에 냉장고 선반이 녹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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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넣은 참기름이나 드레싱 등 오일 종류는 용기에서 새어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서 보관해야 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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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한밤 중에 갑자기 냉장고 안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이웃에 그런 집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냉장고가 귀하던 시절에는 이웃집 물건을 잠시 보관해주기도 했었지요. 그러다보니 무게를 못이겨 냉장고 내부의 선반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소란이었습니다.

요즘은 냉장고 선반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은 소재로 튼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도 플라스틱 선반이나 문짝의 진열대가 녹을 수 있습니다. 냉장고 불량이 아닌, 관리의 잘못 때문입니다.

요즘 냉장고는 큽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냉장고에 넣어 두지요. 대표적인 것이 예전에는 냉장고에 두지 않던 참기름이나 들기름, 각종 드레싱 같은 오일 종류입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공기 속에 오래 방치하면 산성으로 변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나빠지고 빛깔이 변하는 산패가 빠릅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오일 종류는 쓰기 편한 냉장고의 문쪽 진열장이나 선반에 각종 소스류와 함께 둡니다. 이런 오일들이 무슨 문제를 일으킬까요?

냉장고 내장재는 대부분 플라스틱입니다. 흰색 내벽은 충격에 강하고 화학적 변화가 크지 않으면서도 성형하기 쉬운 소재인 ABS(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resin)를 주로 사용하고, 투명해야 하는 냉장고 선반은 폴리스타이렌(PS, Polystyrene)이 주재료가 됩니다.

ABS가 장점이 많지만 투명하게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폴리스타이렌은 성형하기 쉽고 투명성이 높아 CD케이스나 일회용 컵 등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딱딱하지만 충격과 기름 성분에 약한 것이 단점이지요. 그래서 폴리스타이렌은 다른 중합체와 혼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타디엔 고무(butadiene rubber)를 섞어서 SBS(styrene-butadiene-styrene), SAN (Styrene-AcryloNitrile copolymer), HIPS(High Impact PS) 등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충격 강도는 고무 함량이 높을수록 커지는 반면, 투명성은 낮아집니다. SAN은 투명성이 높고, SBS는 강도가 높다. HIPS는 둘의 중간 정도의 위치입니다. 냉장고 선반은 종류와 필요에 따라 이 세 성분을 적절히 사용하게 됩니다.

플라스틱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한 말인 것처럼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변형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고,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환경호르몬이 배출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냉장고 선반에는 대체로 용기에 담긴 반찬이나 양념류가 밀폐된 상태로 저온 보관되는 만큼 플라스틱 선반이 변형될 위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기름이 용기 밖으로 새어 나와 플라스틱 선반이나 벽면에 오래 흡착돼 있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참기름 등을 사용하면서 용기 바깥에 묻어있던 참기름이 플라스틱에 닿아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나 변형이 생깁니다.

실제로 참기름이 흘러 플라스틱과 흡착하는 바람에 냉장고의 선반이 깨지는 경우가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냉장고 사용설명서에 식물성 기름을 보관할 때 주의하라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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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식히지 않은 음식을 넣으면 용기의 플라스틱이 녹으면서 환경호르몬을 배출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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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어떤 종류든 석유에서 추출해 만드는 만큼 유기용매에 녹아내립니다. 같은 무극성이란 말이지요. 설탕이 물이 잘녹고, 식용유와 참기를이 잘 섞이듯이 같은 극성끼리는 분자들이 서로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주성분은 원유의 성분 중 하나인 에틸렌입니다. 플라스틱과 참기름, 결국 기름끼리 만나는데 서로 결합하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플라스틱 CD케이스 위에 지우개를 오래두면 지우개가 달라붙거나 CD케이스가 녹기도 하지요. 지우개의 성분이 고무와 식물성 기름, 경석가루로 구성돼 있는데 이 또한 기름과 기름이 만난 것이니 서로 결합해 변형될 기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기름과 멀수록 좋습니다. 기름이 흘러도 그저 고여만 있다면 요즘은 기술이 뛰어난 만큼 플라스틱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흡착돼 있는데다 냉장고 문을 여닫으면서 유입되는 공기와 만나 기화하면 변형이나 균열, 파손은 더 빨라 집니다.

참기름 외에도 버터, 각종 드레싱과 오일, 마요네즈 등 기름 성분이 포함된 오일 종류는 플라스틱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의 잘못이 아닌 사용자의 잘못인 것이지요. 냉장고 내부의 플라스틱이 온전하도록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청결입니다.

오일 종류는 용기에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고, 사용후에는 물티슈 등으로 용기를 닦아서 보관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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