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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SF&사이언스] 영화 인터스텔라로 보는 우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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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는 본격적인 영화' 이삭줍기'의 시즌이다. 시간표만 잘 짠다면, 미처 보지 못한 지난 명화들을 보며 말라버린 영감을 채울 수 있는 기간이다. 지난 21일 오후부터 오는 26일까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이 방영하는 추석 특선 영화는 모두 36편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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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2014년 11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영화 인터스텔라. 올해 지구 최초의 민간인 달 여행자 마에자와 유사쿠가 선정되며 다시금 주목되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론 물리학자 '킵 손'이 2006년 기획단계부터 자문을 맡아 상대성이론 등 깊이 있는 물리학 이론을 영화에 담아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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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유독 눈길을 끈 것은 23일 오후 10시에 방영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다. 2014년 개봉 당시 한국에서만 10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은 명작이지만, 올해 유독 주목되는 것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지구 최초의 민간인 달 여행자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조조타운의 창업자 '마에자와 유사쿠'는 오는 2023년 빅팰컨로켓(BFR)을 타고 달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는 영화감독ㆍ화가ㆍ음악가 등 예술가들을 초대해 함께 우주를 보고 지구인 모두에게 예술로서 그 영감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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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왼쪽)가 지난 17일(현지시간), 2023년 인류 최초의 민간인 달 여행자로서 우주로 떠나는 '마에자와 유사쿠'를 소개하고 있다. 마에자와는 일본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조조타운의 설립자로서 영화감독ㆍ화가ㆍ패션디자이너 등 예술가들과 함께 달 여행에 참가할 계획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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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모티프는 인터스텔라에서도 발견된다. 주인공 쿠퍼는 3차원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자신의 부성(父性)을 딸인 머피에 전한다. 마에자와와 쿠퍼가 모두 감정을 느끼고 전달하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우주를 택한 것을 보면, 우주는 인류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언젠가 달을 너머 새로운 지구를 찾아 여행할 제2의 쿠퍼와 마에자와가 볼 우주의 모습은 어떨까.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들이 볼 '현실적인 우주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행성의 중력 이용해 여행하는 레인저호...'중력 새총 효과'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지난해 중력파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론 물리학자 '킵 손'이 오랜 기간 자문하고 프로듀서에까지 이름을 올린 만큼, 인터스텔라의 내용이 과학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중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과 가장 유사한 것은 '중력 새총 효과'로 불리는 우주여행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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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새총 효과는 주변 행성이나 블랙홀에서 추진력을 얻어 비행하는 방법으로 육상종목 해머던지기에서 해머를 빙빙 돌린 후, 원심력을 높여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 사진은 지난 14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이스라엘 군에 돌을 던지기 위해 새총을 사용하는 모습.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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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새총 효과란 주변 행성이나 블랙홀의 중력에서 추진력을 얻어 비행하는 방법이다. 육상종목 해머던지기에서 해머를 빙빙 돌린 후 원심력을 높여 던지는 것과 유사하게, 우주선은 행성의 궤도를 돌면서 추진력을 얻는다. 인터스텔라 속 '인듀어런스호' 역시 화성을 근접 통과하면서 새총 비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대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중력을 이용해 밀러ㆍ에드먼즈ㆍ만 행성에 접근하기도 한다.

실제로 1997년 10월 15일, 지구에서 출발해 2004년 토성에 도착한 NASA의 우주비행선 '카시니 호' 역시 중력 새총 효과를 이용했다. 직선으로 토성까지 가기에는 연료가 부족했기에, 행성들을 돌며 중력의 도움을 받았다. 금성의 중력이 지구로, 지구의 중력이 목성으로, 목성의 중력이 토성으로 카시니 호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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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북반구 상공에 떠 있는 카시니 호. 1997년 10월 지구에서 출발해 금성ㆍ지구ㆍ목성 등 천체의 중력으로 토성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카시니 호는 20년 간의 임무를 종료하고 지난해 9월 15일(현지시간) 토성과의 충돌을 염려해 토성 대기에서 산화했다. 카시니호의 마지막 임무에는 '죽음의 다이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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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보이저 1호를 비롯해 파이오니어 같은 비행체 역시 모두 중력 새총 효과를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지난 5월 7일 기준, 태양계 경계부인 헬리오시스를 벗어나 태양으로부터 약 341억9300만km 지점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 먼 제2의 지구 케플러 78b...웜홀 있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나


"태양계엔 생명체가 살 행성이 없고 가장 가까운 별까지 1000광년이 넘는다. 성공 가능성이 없는데 어디로 (사람들을) 보냈나"

쿠퍼의 딸 '머피'가 지구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으며, '나사로 계획'에 따라 제2의 지구를 찾기 위한 탐사대를 보내야 한다는 브랜드 교수의 주장에 쿠퍼는 이렇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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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된 블랙홀 '가르강튀아'(오른쪽). 테두리의 밝은 빛은 블랙홀 뒤편의 별빛이다. 블랙홀 때문에 휘어져 보인다. 또 두 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웜홀을 통하면 빠른 속도의 우주여행이 가능하다(왼쪽).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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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킵 손은 어떤 특정 조건만 있으면 웜홀을 통과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블랙홀처럼 큰 중력을 발휘하는 천체들을 관찰해보면 광선이 통로 안쪽으로 휘어져 통로가 좁아지게 되는데, 반대로 어떤 물질이 웜홀을 통과하면서 바깥쪽으로 광선을 휘게 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킵 손은 이를 '별난 물질(exotic matter)'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킵 손 역시, 자연상태에서 웜홀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영화에서처럼 초고도 문명이 인위적으로 이를 만드는 것에 유일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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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브랜드 교수의 연구실 세트 칠판에 중력방정식을 적는 킵 손 박사. 그는 2006년부터 인터스텔라 자문을 맡아왔으며, 중력파 연구로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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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웜홀의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주 핸퍼드에 위치한 '라이고(LIGOㆍ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에서는 블랙홀들이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하는 공간의 물결, 즉 중력파를 탐지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 왔다. 1992년 이후로 900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결과, 2016년 2월에는 마침내 13억 광년 떨어진 지점에서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유발된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한 것을 관측하기도 했다.

파도 덮치고 시간지연현상 일어나는 블랙홀 주변...원인은 '강한 중력'


중력 새총 효과와 웜홀을 이용해 다른 은하계로 이동할 수 있다 해도, 제2의 지구를 찾는 일은 절대 만만치 않다. 각 행성이 처한 조건에 따라 환경이 극명하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 속 밀러 행성은 그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2의 지구 후보로 여겼던 '밀러' 행성은 거대한 파도와 극심한 시간 지연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쿠퍼와 브랜드 박사는 이전 탐험대가 남겨두고 온 데이터 박스를 찾기 위해 밀러 행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거대한 파도로 인해 예상보다 오래 밀러에 머물게 되고, 잠깐 사이에 23년 4개월 8일이 지났다. 밀러 행성에서 1시간은 지구 시간 기준으로 7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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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행성의 극심한 시간 지연 현상으로 인해 3시간 남짓이 지구시간 기준으로 23년 4개월이 흘렀다. [영화 인터스텔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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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간지연현상은 밀러 행성 주변에 매우 강한 중력을 내뿜는 블랙홀 '가르강튀아'가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설명하듯, 블랙홀 주변처럼 중력이 강한 곳에는 시공간이 심하게 왜곡돼,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지구와 우리 주변에서도 시간 지연 현상은 늘 일어나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위성항법장치(GPS)가 바로 그 예다. GPS 좌표 신호를 보내는 위성들은 대개 지구의 중궤도, 약 2만㎞ 상공에 떠 있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이 지표보다 훨씬 덜 미치기 때문에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위성 내부의 시간은 조금씩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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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행성 탐사선은 지구 표면과 중력의 영향을 다르게 받고, 1만3800km의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내부의 시간이 지구와 상대적으로 다르게 흐르게 된다. 이 때문에 GPS 위성을 비롯한 지구 궤도를 도는 각종 위성 내부에는 시간 보정 장치가 설치 돼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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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중력을 받는 밀러 행성과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인듀어런스호의 시차는 이와 동일한 원리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운동할수록 시간이 더욱 느려진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GPS 위성은 시속 1만3800㎞의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중력 효과와는 별개로 위성 내부 시간은 느리게 간다. 이 원장은 "위성과 지구는 1초당 1억분의 1초, 하루에 40마이크로초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이를 보정하지 않으면 내비게이션 상으로 10㎞의 거리 차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휴대전화에 탑재된 GPS에도 일반상대성 이론까지 계산한 어마어마한 과학이 들어가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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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행성에서 거대한 해일이 이는 것은 기조력 때문이다. 블랙홀이 똑같은 힘으로 밀러 행성을 끌어당기고 있다 하더라도, 밀러 행성의 지역에 따라 그 힘의 크기가 다른데, 가까운 쪽은 중력의 영향이 더 크고, 먼 쪽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 힘의 차가 기조력으로 이어진다. 지구에도 동일한 원리로 조수 간만의 차가 발생한다. [영화 인터스텔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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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밀러 행성에 발생하는 거대한 파도 역시 블랙홀의 중력이 만든 '기조력'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가르강튀아가 밀러 행성에 동일하게 중력을 가하고 있지만, 행성 내에서 블랙홀과 가까운 지점은 중력의 영향을 크게, 먼 지점은 작게 받기 때문에 이에 따라 조수간만의 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구에도 이 같은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나, 다만 블랙홀에 가까이 붙어 있는 밀러 행성에서는 기조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미래 지구의 문제...개척하려면 과학의 가치 인정해야


이런 우주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쿠퍼를 우주로 밀어내는 것은 지구가 점점 사람이 살기 힘든 행성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의 자문역 킵 손에게 도움을 준 여러 생물학자는 지구를 극한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대기의 오존 구멍으로 들어오는 자외선이 돌연변이를 만들어내, 바다와 육지의 농작물을 멸종시킬 병원체를 만들 수도 있으며, 엽록체를 파괴하는 병원체가 진화해 식물의 광합성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지구의 산소가 부족해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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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충해로 인해 식용 작물이 옥수수 밖에 남지 않은 인터스텔라 속 미래 지구. [영화 인터스텔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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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 손은 "21세기 로켓기술과 중력 새총 효과를 이용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초속 300 ㎞ 정도다"며 "이 속도로 여행한다면 태양을 제외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5000년이 걸릴 것이다"고 전망했다. 인터스텔라 속 지구처럼, 암울한 미래가 온다고 해도 현재로써는 이주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생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할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했지만 "인류가 재앙에 대처하고 운명을 개척하려면 많은 사람이 과학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인터스텔라 말미에 그려진 아름다운 '쿠퍼 정거장'의 모습은 과학의 한계와 가능성을 인식한 인류가 극복한 미래 모습을 담고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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