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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위기의 한복]③ SNS 인증 문화 타고 쑥쑥 크는 생활한복...기회인가,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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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 한복 입기 열풍, 놀이에서 생활이 되다
싸고 편한 생활한복, 40~50대도 즐겨 입어
"전통성 와해해" VS "입다 보면 전통 찾을 것"…의견 분분

조선일보

한복 입고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재현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이 방송에서는 특히 한혜진이 입은 철릭 원피스(오른쪽)가 관심을 끌었다./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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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예쁘다. 한혜진이 입은 한복 어디 건가요?" 지난 8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 여름 현무 학당 편’이 방영된 이후 인터넷은 모델 한혜진이 입은 옷에 대한 관심으로 떠들썩했다. 이 방송에서 한혜진은 철릭(綴翼·고려 시대 말부터 문무관의 복장으로 사용된 포)을 응용한 꽃무늬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다.

전통 한복 시장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쪽에선 한복을 입고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한복을 입고 모여 놀거나 여행하는 동호회가 생기는가 하면, 개량한 한복을 생활복으로 입는다.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SNS 문화가 한복 놀이에 불을 지폈다. 인스타그램에서 #한복 을 검색하면 126만여 개의 게시물이 검색되고, #한복스타그램 #한복대여 #한복스냅 등 관련 게시물도 수십만 건에 달한다.

◇ 한복 입고 인증해요…놀이에서 생활이 된 한복

한복을 입고 세계 여행을 하는 한복 여행가 권미루 씨는 요즘 들어 한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걸 실감한다. 2014년 처음 한복을 입고 여행할 때만 해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젠 함께 한복을 입고 함께 여행 갈 친구들이 생겼다. 권 씨는 "체험 한복으로 좋은 경험을 한 젊은이들이 일상에서도 한복을 찾게 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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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프로젝트 그룹 권미루 대표와 단원들, 전통 한복부터 생활한복까지 취향에 맞는 한복을 입었다./권미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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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관심 갖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이들의 구미에 맞는 패션 한복을 선보이는 업체들도 늘었다. 전통 한복을 만드는 차이 김영진은 기성복 ‘차이킴’을, 장년층을 겨냥했던 생활한복 브랜드 돌실나이는 젊은 감성의 세컨드 브랜드 ‘꼬마크’를 내놨다. 한복의 패션화를 지향하는 ‘리슬’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요즘 한복은 전통 한복이 가진 단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저고리와 치마를 붙여 원피스 형태로 만드는가 하면, 물빨래가 가능한 원단을 사용해 관리가 쉽다. 가격도 3~10만원대로, 전통한복보다 저렴하다. 황이슬 리슬 대표는 "처음엔 젊은 고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40~50대까지 연령층이 확대됐다. 중장년층 가운데엔 천연염색과 항아리 형태로 대표되는 기존의 생활한복이 싫어 젊은 디자인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에서도 한복을 새롭게 활용하는 시도가 포착된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아이돌(IDOL)’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도포를 응용한 재킷에 갓을 연상시키는 모자를 쓰고 나이키 조던과 오프화이트 운동화를 신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추석을 맞아 개량 한복과 갓, 태극권 도복 등의 아이템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어 호응을 얻었다.

◇ 한복 모티브만 딴 생활한복, 이것도 한복인가요?

생활한복이란 1990년대 전통한복을 현대의 생활에 맞게 변형한 한국적 양식의 옷을 지칭한다. 전통한복의 현대화를 목적으로 등장한 생활한복은 처음엔 한복의 유형을 유지했지만, 점차 디자인이 캐주얼화 되고 패션화됐다. 그래서인지 생활한복의 범주는 매우 넓고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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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킴의 철릭 원피스(왼쪽)와 리슬의 기모 저고리./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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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현대복에 가까운 옷까지 생활한복이라 부르는 것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한 한복 전문가는 "요즘 생활한복이라 불리는 것들은 엄밀히 말해 한복을 디자인 모티브로 활용한 현대복이다. 이를 생활한복이라 부른다면, 한복의 정의와 전통성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활발히 유통되는 질 낮은 저가 생활한복도 문제다. 권미루 씨는 "한복 모티브를 차용한 조악한 디자인의 옷이 생활한복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팔린다. 이런 옷들이 퍼지다 보면 결국 고궁 앞의 체험용 퓨전한복처럼 논란이 될 수 있다. 생활한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전통성 와해해" VS "입다 보면 전통 찾을 것"…의견 분분

한복 진위 논란에 앞서, 한복에 관심 두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꺼져가는 전통 한복의 불씨를 살릴 가능성이 열렸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권미루 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생활한복과 전통한복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연 전통한복이 돋보인다. 그래서 한복 입는 사람 중엔 생활한복으로 입문했다가, 나중에 전통한복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많다. 한복을 친근하게 여기고 즐기다 보니 어느덧 전통에 눈을 뜨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씨도 이에 동의한다. 1세대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2006년부터 한복과 현대복을 조합한 화보를 통해 한복의 패션화를 시도해 왔다. 그는 "지금처럼 한복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즐기다 보면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이슬 리슬 대표는 "생활한복의 부상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전통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고, 시대의 요구로 봐줬으면 좋겠다"라며 한복에 대한 열린 시각을 촉구했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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