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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월간중앙 심층분석] 이해찬-손학규-정동영 ‘옛 민주당’ 올드보이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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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 협치 해법은 선거구제 개편?

당·청 관계 바로 세우고 야당에 손 내미는 이해찬 대표…‘동상이몽’ 내후년 21대 총선 게임룰 놓고 치열한 물밑전쟁 예상

중앙일보

2007년 10월 여의도 KBS에서 라디오 ‘열린토론’에 참석한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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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7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토론회 현장. 토론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후보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 외면한 채 대화가 없었다.

토론이 시작되자 이해찬 후보가 곧바로 포문을 열었다. 이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겨냥해 “지난해(2006년) 지방선거 패배 후 대뜸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고 했을 때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치는 죽어도 함께 죽고 이겨도 함께 이겨야 한다. 정 후보는 창당 주역으로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정 후보가 “이해찬 후보와 저는 대학 1학년 때 친구…”라면서 대답을 시작하자 “대학친구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공적인 자리에서”라고 말을 잘라버렸다. 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기로 나이는 이 후보(1952년생)가 한 살 많다. 보통 때는 ‘친구 사이’라고 말해 왔다.

이 후보는 손학규 후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공격하려고 했는데 또 나가실까 봐 공격 안 하겠다. 경선 과정 5%도 안됐는데 자지러지면 국민이 불안해 한다” “옛날에 경포대(경제 포기한 대통령)라는 말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는데, 항간에 또 경포대 말 나온다. 경선 포기한 대선 후보라고.” 한나라당 탈당 이력과 조직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경선 과정을 이탈한 손 후보를 향해 비꼬는 말이었다.

혈투 끝에 정동영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본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패했다. 대선 이후 손학규는 당 대표로 추대됐다. 이에 이해찬은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탈당을 감행했다. 정동영은 대선에 이어 18대 총선(서울 동작을)에서도 패하자 당을 떠났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해찬은 당 대표로, 정동영·손학규는 대선 후보로 다시 한솥밥을 먹기도 했지만 이후 이들은 또다시 갈라서는 운명에 선다. 손학규와 정동영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으로 옮겼지만 올해 2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여러 번의 이합집산 끝에 이해찬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 손학규·정동영은 각각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대표로 다시 만나게 됐다.

올드보이의 귀환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당사자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국민이 정치에서 안정된 경륜을 원하고 있다는 흐름 아니겠느냐”며 “지금 실타래처럼 꼬인 정국을 풀고 여소야대 다당제에 의해서 날카로운 견제와 원숙한 타협 등을 이뤄내려면 연륜과 경험이 크게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퇴행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우석 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새로운 인물을 뽑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당 구조의 허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체할 인물이 없어서 뽑힌 것이다. 정당에서 기회를 줘 경륜을 쌓게 하는 노력을 안 하고 쓰고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된 결과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기득권 구조가 워낙 공고하고 조직문화가 폐쇄적이다 보니 소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했다. 조로화(早老化)되거나 조기 기득권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상황으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각 당의 전당대회 결과를 “새벽이 오기 전의 밤은 어두운 법”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퇴행적인 모습이 맞이지만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는 변곡점으로도 볼 수 있다. 차세대를 꿈꾸는 후보들은 우리가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할 것이다. 정치적 진공 상황을 이용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기회로 볼 수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올드보이들이 새로운 정치의 마중물,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 당·청 관계의 재설정 | “李, 청와대·내각 군기반장 역할 할 것”
중앙일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8월 27일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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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들의 귀환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강한 민주당’을 주장한 이해찬 대표다. 이 대표의 등장을 놓고 당내에서는 반기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당·청 관계의 무게추가 지나치게 청와대 쪽으로 쏠려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의도에서는 추미애 전 대표 체제에서 당과 청와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워낙 높았던 터라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이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인 ‘빅카인즈’에 따르면 임기 만료 전 두 달(6월 25일~8월 24일) 동안 추미애 전 대표가 언급된 기사는 1497건이었다. 반면 홍영표 원내대표는 3583건이었다. 당 대표보다 원내대표의 발언이 더 많이 주목받았던 셈이다. 하지만 8·25 전당대회 이후 결과는 정반대다. 8월 25일부터 3주 동안 이해찬 대표가 언급된 기사의 수는 2796건이다. 홍 원내대표는 917건에 그쳤다.

단순히 언론 노출만 많은 것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국정 이슈를 선점하는 모습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8월 30일, 취임 이후 처음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이 대표는 서울 집값 폭등으로 논란이 일자 종합부동산세 강화 검토 대책을 촉구했다. 이는 9·13 부동산 대책에 반영됐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카드도 꺼내 들었다. 9월 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 대표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이 되는 122개 기관은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옮겨가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인 지방분권 개헌이 난망한 상태에서 정부 조율 없이 나온 내용이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노무현 정부가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수도권 공공기관을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토록 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가 이전계획을 세우지 않아 중단됐다.

야당은 허를 찔린 모습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서울을 황폐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날을 세웠지만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개인 의견으로 말하긴 그렇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 본 뒤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신설한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었다.

이해찬 대표의 광폭 행보는 당·청 관계 변화를 의미한다. ‘민주당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에서 탈피해 집권 여당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앞으로 이 대표가 당·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정국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이 대표가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다면 부담을 덜 수 있다. 단적인 모습이 9·13 부동산 대책 이튿날인 14일 이 대표의 발언을 꼽을 수 있다. “더 이상 아파트나 주택으로 불로소득을 왕창 벌겠다는 생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다시 또 시장 교란이 생기면 그때는 정말로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대표 등장 이전에 청와대와 내각에서는 볼 수 없던 경고의 메시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청와대와 정부의 부담을 덜어 주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당이 한 발 먼저 앞장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터라 미래권력과 같은 파워 게임의 요소도 없다. 문재인 정부를 위한 공격수이자 리베로 역할을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靑 참모들과 갈등의 소지는 남아”

이 대표의 행보가 본격화되자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박 대표는 “이해찬 대표는 문 대통령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다. 대통령을 지원하되 청와대 참모진을 비롯해 내각의 군기반장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청와대는 이전보다 훨씬 당의 눈치를 볼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가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채진원 교수는 “국회의원을 오래 했고 국무총리를 했기 때문에 당과 청와대의 생각을 잘 헤아릴 것이다. 갈등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만 청와대 참모들과의 갈등 소지는 있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문재인 정부를 위한 ‘선의’로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노하우와 선의를 존중하지 않거나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강하게 경고할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조율을 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안에는 이 대표와 인연을 가진 인물이 많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1991년 이 대표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8년 동안 옆을 지켰다. 이 대표가 200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내리 5선을 했던 서울 관악을을 물려받은 인물이 정 수석이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예방한 한 수석에게 그 자리에서 고위 당정청협의회 월 1회 정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이 대표가 주도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련)의 기획실 간사 출신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내각에는 이 대표와 함께 일했거나 수하에 있던 사람이 많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장점도 있으나 이 대표가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2. 자세 낮추고 협치 시그널 보내는 李 | “예산정국이 협치 리더십 첫 시험대 될 것”
중앙일보

이해찬 민주당 대표(왼쪽)가 9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포용국가전략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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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당시 이해찬 총리는 야당 의원이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묻자 이렇게 답변한 적이 있다. “빨갱이로 몰아갔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이념적인 정체성 문제를 주장하는 걸 보면서 사람이 살면서 ‘참 별꼴 다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직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그는 야당과 각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논란도 야기됐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강성 이미지는 8·25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다른 후보의 공격 소재가 됐다. 당 대표 경쟁 후보였던 김진표 의원은 당시 이해찬 후보를 겨냥해 “나만이 옳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오만과 불통의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 국민들께는 욕먹고, 대통령께는 부담만 드리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최근 행보는 그간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당선 수락 연설에서 “국민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 대표의 첫 공식 일정은 국립현충원 참배. 이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참배 뒤 방명록에 “분단시대에 비정상적인 것을 많이 경험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그 나라가 평화로워야 한다. 여기 계신 분들이 다 분단으로 인해 희생된 분들”이라고 적었다. 첫 현장 최고위원회 장소는 보수의 심장이라 할 경북 구미로 선택했다. 야당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자세를 낮추는 행보라는 평가다.

협치를 위한 무대는 마련됐다. 9월 5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오찬 회동에서 이 대표 등 여야 5당 대표는 당적을 초월한 모임이란 의미의 ‘초월회’를 만들어 매달 첫 월요일 점심 때 만나기로 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초월회를 창구로 활용해 이 대표가 야당 대표들과 직접 쟁점 법안 협의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협치 가능성? 부딪힐 일만 남아” 반론도

협치를 위한 시동은 걸었으나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통령 임기 2년차가 되면 지지율이 떨어진다. 그때부터 야권은 싸울 만하다고 판단한다”면서 “대북, 경제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협치가 이뤄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역대 정부를 보면 임기 2, 3년차는 여야가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기”라고 밝혔다.

실제로 향후 예상되는 정국은 산 넘어 산이다. 당장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놓고 여야는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9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로 넘어온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은 13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상정 자체가 불발됐다. 일단 여야 원내대표는 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이 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특히 철도·도로 협력 등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2986억원의 비용추계안에 대해 보수 야당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정쟁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

10월 국정감사 기간을 거쳐 11월 시작될 예산 정국은 이해찬 대표의 협치 리더십의 첫 번째 검증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8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올해 예산 428조8000억원보다 9.7%(41조7000억원) 증가한 470조5000억원 규모의 ‘2019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부 예산안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 내년 예산안은 정권 후반기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 3년차 국정운영에 소요되는 재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은 예산 삭감을 주장하며 벼루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로마는 세금중독으로 망했다”며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일자리 고갈-세금중독은 우리 경제 ‘불(火)의 고리’다. ‘미친 세금중독 예산’을 싹둑싹둑 잘라내겠다. 나라 재정 구멍 내는 ‘세금중독 적폐’를 반드시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미 청와대가 현 경제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뜻을 밝힌 터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올해도 지난해처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기는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18년 예산안’은 공무원 증원 규모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며 법정시한을 사흘이나 넘긴 바 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한을 넘겼지만 민주당은 공무원 증원,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등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을 잘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밑바탕에는 중재 역할을 한 당시 국민의당과의 ‘선거구제 개편 추진’이라는 빅딜이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예산안 협상 수단으로 선거제도 개편 시나리오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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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9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친 세금중독 예산을 싹둑싹둑 잘라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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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치 시금석은 선거제도 개편? | “민주당-한국당, 공생관계 도구 전락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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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5당 대표들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했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의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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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의원 소수 정당은 선거구제 개편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다당제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함부로 쥐고 흔들지 못하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정치체제의 미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제가 이야기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했고, 또 유럽의 많은 나라가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선거제도 개혁을 외면한 개혁입법연대는 어려울 것”이라며 선거제도 손질 필요성에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이 선거구제 개편에 목을 매는 이유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다음 총선 이후 당의 존립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들의 주장대로 중·대선거구제 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소수당의 기사회생 가능성이 높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2월, 20대 총선 결과를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중선거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의석 수가 123석에서 77~110석으로, 자유한국당은 122석에서 101~105석으로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당은 38석에서 81~83석으로, 정의당은 6석에서 22~23석으로 각각 늘어나는 것으로 나왔다. 소수당들이 선거구제 개편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선거구제 개편을 협치의 유일한 연결고리로 본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여당의 지지율을 고려할 때 어떤 정당도 소선거구 최다득표제에서 확실한 이익을 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선거구제 개편을 고리로 협치의 기회가 열릴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야당은 현재 선거제도에서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PK를 내준 상황이고 의석수 30석의 바른미래당 지지율은 5석의 정의당보다 낮다. 다른 야당의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남북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 민평당, 정의당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 후년 총선을 앞두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 “선거제도 개편 지지…여야간 합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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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8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당제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개혁’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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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제 개편이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선거구제 개편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손학규 대표나 정동영 대표의 경우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를 민주당이나 한국당이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세가 지속되면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 선거구제 개편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지금은 지지율 답보 상태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해볼 만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최소한 선거구제 개편에 있어서는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대 양당에게 유리한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는 앉을 수 있지만 속도가 지지부진할 경우 선거구제 개편은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다음 총선을 위한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한 데드라인은 내년 4월이다. 선거구 획정이 총선 1년 전에 완료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올해를 넘기면 선거제도 개혁이 물 건너간다고 본다”며 지속적으로 선거구제 개편 군불을 떼는 이유다.

여기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 8·25 전당대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선거구제 개혁은) 정당법만 바꾸면 할 수는 있는데 기본적으로 헌법상 권력구조와 연계된 사안이어서 가능한 개헌과 연계해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구제 개편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여야 5당 원내 대표를 만난 문 대통령은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로 추진될 문제”라고 전제했다.

이해찬 대표는 “문재인 정부 성공,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줄곧 얘기하고 있다. ‘백전노장’ 이해찬은 가시밭길을 넘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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