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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웃소싱 신화는 거짓이었다]③병원의 아웃소싱, 인건비 아끼려다 환자 위험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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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건강 및 의료에 대한 국민적 의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 영역이 대표적인 공공영역에 속하는 분야임에도 서비스적 특징이 대두되면서 대기업이 진출하고 환자유치를 둘러싼 병원 간 경쟁 등이 활발해지고 있다. 의료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인건비의 비중이 큰 만큼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아웃소싱, 즉 외주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러나 병원산업의 아웃소싱 확대는 애초 목표였던 생산비 절감에 따른 생산성 증대가 아닌 생산성 감소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사업장 내에서 일하는 정규직은 물론, 고객인 환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수십 년간 진행된 외주화로 인해 의료서비스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자.

세계일보

◆의료계에 찾아온 기업식 경쟁, 아웃소싱 촉발

24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아웃소싱의 메커니즘과 기업 내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산업의 아웃소싱은 의료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수익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수익의 약 40∼50%를 차지하는 인건비 절감에 매진하면서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 아웃소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점은 1990년대 외환위기였다. 이 시기에 의료서비스 산업은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병원의 대형화 및 상업화였다.

정부의 병원 설립 및 병상 증축 규제가 완화되면서 1980년대 말 사회복지법인 형태로 재벌들이 대형의료법인을 설립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더 적극적으로 병원산업에 진출했다. 1989년 서울아산병원(현대그룹)과 1994년 삼성서울병원(삼성)이 대표적으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국내 최대병원으로 발돋움했다.

이 두 병원의 등장은 기존의 대형 대학병원인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과 함께 의료 ‘빅5’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에 자극받은 후발 대형병원들 또한 이를 모방하면서 다방면의 경쟁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경쟁이 심화됐다는 것은 의료 및 병원산업에도 기업적 경영전략이 도입됐음을 뜻한다. 성과주의 시스템을 내세운 경영전략이 녹아들었고, 유치환자 실적에 따른 임금의 차등지급, 임직원에 대한 서비스 정신 강조, 이밖에 여러 평가 방식이 늘어난 것 등이 대표적인 변화였다.

이 상황에서 2007년 비정규직법안이 개정되면서 병원 내 많은 인력이 간접고용 방식으로 전환됐다. 결국 병원들은 생존을 위해 수익 대비 비중이 가장 높은 인건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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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인력, 주당 10시간 더 일하고 임금은 절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병원산업의 아웃소싱은 인건비 절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고 근로자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는 그대로였지만 소속업체만 계속 바뀌면서 임금 동결 효과 및 호봉 상승 억제 효과 등을 낳았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해고를 뜻했다. 아웃소싱이 해고의 수단으로도 활용될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아웃소싱이 병원산업에 본격도입된 1990년대 이전에도 간병 및 청소, 주차안내, 보안·경비 등의 직종에서는 일부 외주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비정규직법 도입즈음에는 조리·배식을 비롯해 업무보조, 수납, PC보조 등이 추가됐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뒤에는 시설관리, 환자 이송, 간호보조 업무 등 외주화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고 최근에는 진료 보조 업무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등에 따르면 병원 내 외주인력은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에 비해 5년 뒤인 2012년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게다가 병원과 하도급업체와의 계약은 보통 1년 단위로 갱신됐다. 하도급업체들의 상대는 병원뿐 아니라 공공기관 등 여러 곳이다 보니 더 비전문적인 인력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영양실 근무 근로자는 8시간 2교대제, 시설관리 및 경비업무 근로자는 8시간 교대 또는 격일제 근무를 취했고, 병동 근무자는 주 48시간 3교대제 등이 보통이었다. 병원 내 정규직에 비해 하청 근로자들은 주당 평균 10시간 이상을 더 근무했지만 연간 급여 총액은 66%, 상여금은 20%에 그쳤고 휴가·휴일 수는 20일 이상 적었다.

◆병원의 외주화, 고객인 환자의 위험 초래

병원 인력의 외주화는 궁극적으로 환자의 아전과 만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시설관리가 부실해져 전기설비에 이상이 생긴다면 만약의 사태에 중환자실 환자의 안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업무종사자가 자주 바뀐다면 진료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숙련도가 떨어져 업무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그만큼 늘어난다. 전반적인 진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다.

병원의 업무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집약적이라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성뿐 아니라 협업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질수록 근로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증가해 팀워크를 저해하는 것이다.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병원 내 청소 등 환경미화 업무가 외주화될 경우 병원 청소의 질이 떨어져 감염관리가 취약해지고 결과적으로 환자와 근로자 전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됐다.

급식 분야 또한 마찬가지이다. 환자식의 경우 특히 다양한 치료식이 필요할 수 있는데, 업무 전반을 외주화한다면 값싼 재료의 활용, 의사소통 혼란 등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식이 제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A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 급식을 외주화한 뒤 식자재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며 “뿐만 아니라 업무 종사자는 일 16시간 근무가 보통이고 한 달에 쉬는 날도 거의 없다 보니 전반적인 서비스 질 저하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아웃소싱의 확산, 근로자에게도 상호 영향

병원 내 아웃소싱의 확산은 사내 하청 근로자뿐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같은 공간에서 정규직과 사내하청, 파견근로자 등 고용 형태가 다른 근로자들이 섞여 근무할 경우 업무지시나 협업이 원활하지 않다. 또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서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고, 근로자 간 업무 노하우가 전수되기도 힘들다.

A 대학병원의 다른 관계자는 “고객의 폭언 및 폭행이 빈발하는 응급실에서 근로자가 위협받을 때 경비 인력을 자주 부르게 되는데, 늦게 출동하거나 상황을 방관하더라도 같은 소속이 아니다 보니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하청 근로자라면 안전교육을 덜 받고 제대로 된 장비나 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한 채 더 위험한 직무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A 대학병원의 노조 관계자는 “3년 전 메르스 사태 때에도 겪었지만, 청소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병원 내 균은 얼마든지 퍼질 수 있다”며 “이게 잘못돼 환자가 죽을 수 있는데 사내하청 분들에게 그에 맞는 양심과 책임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난방시설을 관리하는 인력을 외주화했다가 차질이 발생해 환자는 물론 임직원 모두가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시설 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더라도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이상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의제기를 하거나 시정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생산비 낮추려다 생산성 떨어질 수 있어

결국 의료·병원 분야에서도 아웃소싱을 도입해 인건비에 대한 비용을 절감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전반적인 혁신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판단이 많다.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이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밝히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 대학병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아웃소싱 업체가 전문 관리 능력이 있는 업체라면 괜찮겠지만 최저가 낙찰제로 들어오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고 전문성 떨어지는 업체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병원의 공신력이 떨어지고 이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병원의 핵심 특성은 공공성이고,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외주화가 과연 병원 본연의 미션과 비전에 부합하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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