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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첫 구속영장 기각된 사법농단 수사…법원 방패 뚫을 검찰의 묘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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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협조 메시지에도 ‘영장 발부’ 요원
행정처 "檢 협조 공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정작 ‘물적 증거’ 확보 위한 영장은 대부분 기각
"묘수? 손발 묶였는데…저인망식 수사가 최선"

조선일보

김명수 대법원장.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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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가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초(超)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법원의 '방패'를 뚫을 검찰의 '묘수'는 무엇일까.

◇"수사 안 하는 방향이었는데…"
애초 검찰 내부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사를 내키지 않는 분위기가 많았다. 판사 개인의 비리가 아닌, 사법부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수사 착수 직전 수십건의 고발이 들어와도 검찰이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인 이유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의 성패는 법원에서 결론이 내려진다"며 "이번 수사는 법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각종 영장이 줄줄이 깨질 것으로 예상되는 입장이어서 초기에는 수사를 안 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었다"고 했다. 법원 내부의 일을 검찰로 가져와 수사하기 보다는, 법원의 자정작용을 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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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며 공개한 98개 문건 가운데 일부.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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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협조" 메시지와 달리…
검찰 수사의 도화선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월 15일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은 김 대법원장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법원의 협조는 검찰이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행정처의 자료 협조는 지지부진했다. 검찰은 지난 17일을 기준으로 115건의 수사협조 공문을 법원행정처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처 관계자는 "검찰의 협조 공문이 올 때마다 검토를 해서 적절한 답변을 보냈다"는 입장이다.

◇깨지고, 또 깨지는 영장
문제는 각종 압수수색·검증 영장이다. 이번 수사 국면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율은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장 기각 이유도 일반적인 사안과 다르다. "주거의 침해를 해칠 우려가 있다", "이메일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특정)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필요없다" 등이다.

세 달이 넘는 수사 이후 검찰이 처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검찰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절도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20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허경호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3600자' 분량으로 기각 사유를 밝혔다. 통상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가 200자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어떻게든 구속사유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에 불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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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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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 없는 검찰, 인적조사에 심혈
검찰이 낼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라며 "물적 증거를 수집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건이다. 자연스레 인적증거를 모으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법원의 ‘방패’를 뚫을 묘수가 마땅치 않으니 ‘저인망식’ 수사를 두는 식으로 풀어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관련자 대부분을 소환해 진술을 통해 상황을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리를 따져본 뒤 혐의를 입증해 나가는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결국 폭넓은 인적조사가 수순"이라며 "수사팀을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릴레이 조사가 불가피한 만큼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키맨'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조사는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전망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실무를 맡았던 판사나, 유 변호사도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며 "의혹의 정점이고, 윗선으로 나아가는 길목인 만큼 여러 차례 조사가 이뤄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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