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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도피·망명·감금설까지…판빙빙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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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판빙빙 실종 사건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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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명 여배우 판빙빙의 행방이 석달 가까이 오리무중이다. 그의 이번 ‘실종’을 두고, 중국 내에선 자국 연예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완화에 대한 기대로 ‘한류 콘텐츠’의 중국 재진출이 거론되는 시기인 만큼 한국에 주는 의미도 크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판빙빙 실종 사태’와 함의를 짚어본다.

■ 판빙빙은 누구?

1981년생인 판빙빙은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나 옌타이에서 자랐다. 1998년 한국에서도 흥행했던 드라마 <환주의 딸>(환주거거) 금쇄 역으로 데뷔했다. 2004년 영화 <휴대전화>의 주연을 맡아 대중영화백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주연급 스타가 됐다. 이후 최근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대부분 중국 작품이지만, 2011년 한국 영화 <마이웨이>, 2014년 할리우드 영화 <엑스맨> 등에도 출연했다.

판빙빙은 패션 분야에서도 이름을 얻었다. 2010년 칸 영화제에서 스스로 디자인에 참여한 용을 소재로 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호평을 받았다. 2015~2016년엔 <배니티페어> 베스트드레서에 선정됐다. <포브스> 조사에서 2006년 중국 연예인 소득 10위권에 첫 진입했으며, 2013년부터는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직설적인 화법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 대문에 ‘판예’(판씨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010년 한 인터뷰에선 “부유층 가문과 결혼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바로 부유층이니까”라고 답해 화제가 됐다.

2015년 배우 리천과 공개연애를 시작했으며, 36번째 생일이었던 2017년 9월16일 청혼을 수락했다. 동생 판청청(18)은 2018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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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빙빙은 어디에?

중국 베이징 법원은 9월20일 판빙빙 초상권 관련 사건의 판결문을 온라인에 게시했다. 산시성의 부동산 기업, 쑤저우의 미용 기업 등 6개 기업이 판빙빙의 사진을 홍보에 무단으로 사용해 초상권을 침해했으므로 공개 사과하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판결문에 판빙빙의 소재나 현재 상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판빙빙은 6월2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어린이병원 설립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티베트에 간다는 글을 올렸고, 7월1일 상하이의 한 병원에서 열린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행사에 참가했다. 이후 판빙빙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가택연금, 수감, 망명 신청 등 여러 소문과 보도가 잇따르지만, 동선은 일절 확인되지 않는다.

홍콩 <빈과일보>는 17일 소식통을 인용해, ‘판빙빙이 당국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해 외부와 연락을 두절한 채 지내왔다’고 전했다. 홍콩 <동방일보>는 20일 판빙빙이 베이징 창핑구의 호텔에 억류돼있으며, 수사 관계자들이 판빙빙 관련 재산 조사를 위해 미국에 갔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 판빙빙은 왜 사라졌나?

중국 방송인 추이융위안은 5월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연예인의 계약서 사진 2장을 올렸다. 한장은 판빙빙 이름으로 된 1000만위안(약 16억원)짜리였고, 다른 1장은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이의 5000만위안짜리였다. 대중은 이를 판빙빙의 이중계약 관련 문건으로 받아들였다. 판빙빙 쪽은 혐의를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자 국가세무총국이 6월3일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조사에 나섰다. 당국은 “만약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석달 뒤 실제 세무 조사 보도가 나왔다. <증권일보>는 9월6일 판빙빙이 최근 세무 조사를 받았으며, 이중계약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은행 불법대출과 부패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추이융위안의 ‘복수극’도 화제가 됐다. 그는 <중앙텔레비전>(CCTV)의 시사 프로그램 ‘사실대로 말하라’를 진행하던 유명 아나운서로, 2003년 개봉 영화 <휴대전화> 때문에 큰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영화는 인기 시사프로그램 앵커의 불륜 문제를 다뤘는데, 그 실제 주인공이 추이융위안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만들었던 펑샤오강 감독은 5월10일 속편 <휴대전화2>를 예고했다. 첫편의 주인공을 맡으며 스타급 배우가 된 판빙빙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18일 뒤 추이융위안은 판빙빙의 탈세 의혹을 시사하고 나섰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작품의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작정하고 벌인 복수극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추이융위안의 옛 친구이자 <휴대전화> 탓에 원수가 된 펑 감독에게도 불행이 닥쳤다. 그가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 <강호남녀>에서 펑 감독의 출연분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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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빙빙 실종’의 정치적 배경

탈세 의혹은 겉으로 드러난 구실일 뿐, 판빙빙 또는 영화계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이 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영화 전문가인 스탠리 로즌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판빙빙 실종 사건과 관련해, “(중국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당국의) 메시지일 수 있다”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 너무 독립적이 되거나 대중적 사안에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판빙빙이 지나친 유명세와 영향력 탓에 당국에 찍혔다는 의미다.

특히 중국 당국은 지난해부터 문제가 되어 온 ‘고액 출연료’ 문제에 대해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이융위안의 ‘폭로’ 뒤, 지난 6월 중국 정부는 배우들의 출연료에 상한선을 두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연예계가 젊은층의 ‘배금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나치게 높은 출연료에 대한 생각’이라는 칼럼에서 “명백히 정상 범위를 넘어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연기자는 필경 소수”라며 “법률과 정책의 틀에서 시장 규율을 존중함으로써 정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밖에 판빙빙의 뒤를 봐주던 관가 고위인사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의 거침없는 성격이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중국 정치 분석가 차오무는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성공과 실패는 지도자들의 호불호에 달려 있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아무 반항 없이 납작 엎드려 있다. 역사학자 장리판은 “판빙빙을 벌하는 것은 닭을 잡아 원숭이를 겁주는 (일벌백계) 방식이다. 그런데 업계에서 누구도 판빙빙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위상은 매우 낮다.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했다.

■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주는 함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중국 교류 및 진출은 2017년 3월 사드 배치 이후 완전히 중단돼 지난 1년 반 동안 찬바람을 맞았다.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일부가 재개되는 흐름 속에서도 유독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빗장은 단단히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최근 미미하나마 재개 움직임이 감지된다. 한국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방영될 거란 소문이 돌더니, 한국 배우가 참여한 영화가 개봉 날짜까지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판빙빙 사태’로 인해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투자가 잔뜩 움츠러들었다는 점이다. 출연료 등 각종 수입과 관련해 관행처럼 이뤄져 온 편법적 탈세가 세무조사 등을 통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작비가 30~35% 가량 올라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획 단계의 작품들은 제작이 중단됐고, 제작에 돌입한 작품들도 중도 하차 사례가 나오고 있다.

결국 현재로서는 중국 영화관, 방송사, 온라인플랫폼 등이 예전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합작 콘텐츠 생산 또는 외국 콘텐츠 수입에 ‘큰손’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김필정 영화진흥위원회 중국사무소 소장은 “콘텐츠 분야에선 사드 제재가 풀리더라도 예전 같은 투자나 합작이 이뤄지진 않을 것 같다. 다만 한국 드라마 등은 중국에서 대중적 환영을 받는 만큼 전략적 접근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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