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알아보니]평양에도 부동산 열풍 있다?···북한 자본주의 ‘알쓸신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현대화된 평양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남북정상회담 이틀째였던 지난 19일 밤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에서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하는 사이에 북한은 시장경제를 향해 급속하게 진화해왔습니다. “한국 맥주 맛없다”는 말로 유명세를 탄 영국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는 동료 저널리스트 제임스 피어슨과 함께 지난해 북한에 대한 책을 펴냈는데요, 제목이 아예 ‘조선자본주의공화국’입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라는 얘기죠. 그런데 그 자본주의적 발전이라는 것에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개방 없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북한전문 기자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최근 펴낸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에서 “북한의 진화는 사상 유례없는 봉쇄 속에서, 세계와 분리된 채 이루어지고 있다”며 “갈라파고스식 진화”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식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바탕으로 몇몇 특징적인 모습들을 정리해봤습니다.

■ 평양 최고의 핫플레이스는?

평양에는 ‘평해튼’(평양+맨해튼)으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평양의 려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가 그곳입니다. 평양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려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는 김정은 위원장 지시로 조성됐습니다. 2017년 4월13일 준공식을 거행한 려명거리는 90만㎡ 넓이 부지에 최고 70층에 이르는 44동, 4804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습니다. 대동강 쑥섬에 조성된 미래과학자거리는 이보다 앞서 2015년 11월에 완공됐는데 6차선 도로 양 옆으로 고급주택단지와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6년 5월 기사에서 북한의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한 젊은이들이 이 지역에서 쇼핑과 운동을 즐긴다면서 ‘평해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려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의 아파트가 김일성대와 김책공대 교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면서 이들 교원의 ‘몸값’이 치솟았다는 겁니다. 월급과 배급만으로는 살 수 없는 북한에서 뇌물을 받거나 부업을 하기에 부적합한 대학 교원은 소학교나 중학교 교원보다 생활수준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비싼 아파트를 무상으로 받으면서 지위가 달라졌습니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려명거리가 완공될 무렵 한두 달 사이에 김일성대 미혼 남성 교원 수십명이 결혼했다고 합니다. 려명거리 아파트는 김일성대 교원, 국방위원회, 호위국, 비행사 등에게 특별 공급됐습니다.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는 김책공대 교원, 김일성대를 제외한 평양 시내 대학 교원과 연구사에게 공급됐습니다.

경향신문

2017년 북한 평양 미래과학자의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 최고의 패션 수도는?

평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따르면 북한 최고의 패션 수도는 청진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진은 접경 지역이자 무역 도시여서 해외 패션이 북한에 가장 먼저 상륙하는 도시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됩니다. 누가 뭐래도 권력과 사람이 집중된 곳은 단연 평앙니까요.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수도인 평양에서는 보안이 훨씬 더 엄하고 순응주의가 훨씬 더 엄격하게 강요된다. 그래서 젊은 평양 여성 같으면 집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을 다른 지방에서는 길에서도 입고 다니는 게 허용될 수 있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옷차림을 단속하기 위해 “눈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을 빼고는 학생 규찰대나 민주여성동맹 규찰대가 완장을 끼고 거리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리설주 여사는 공식 행사에서 김일성 배지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바지 정장을 입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이힐을 신기도 하는 등 북한에서 일종의 패션 리더로 알려져 있지만, 청진 여성들의 눈에는 평범해 보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따르면 청진 출신의 한 탈북자는 평양에서는 ‘규범 파괴자’로 불리는 리 여사의 패션을 두고 “특별한 게 하나도 없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청진에서 인기 있는 의류는 주로 일본산이라고 합니다. 교역상이 공무원에게 약간의 뇌물을 주고 들여온다는데, 일본에서는 철지난 상품이지만 북한에서는 인기가 좋습니다. 청진은 북한에서 스키니 진이 처음으로 인기를 끈 곳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지난 8월16일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서 두 여성이걸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평양에도 부동산 열풍이?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최고가가 5000달러였던 평양 아파트 가격은 올해 들어 3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60배가 뛴 셈이네요.

2013년 4월 완공된 류경동 30층 아파트가 현재 30만 달러에 거래된다고 하는데요, 중국 아파트 설계도로 지었고 지하철까지 100m밖에 안 되는 ‘역세권’입니다. 이 아파트는 달러를 손에 쥐고 있는 대외경제총국이 지은 것인데, 아파트 절반은 대외경제총국 간부들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팔았다고 합니다.

권력기관이 아파트를 지었다는 점이 특이하죠. 주성하 기자가 평양의 한 건설 부문 간부의 말을 인용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각 기관이 평양에 자체적으로 지은 아파트는 최근 10년 사이 7-8만 채나 되는 반면, 국가 차원에서 지은 집은 20년이 넘도록 4만 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권력자의 비자금과 북한에서 ‘돈주’라고 불리는 물주의 달러가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지으려는 건설주는 든든한 권력자와 물주를 끼고 공사에 나서고 권력자들은 그 대가로 아파트를 얻습니다. 권력자(주로 중앙당 간부)는 분양가의 10분의 1만 투자하고도 아파트 한 채를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건설은 주로 군인들이나 ‘속도전청년돌격대’가 맡습니다. 특히 1975년 조직된 청년돌격대는 군대처럼 편제돼 있고 의무복무기간도 군인과 같은 10년으로, 숙달된 건설 전문 인력이라고 합니다.

평양 아파트에서 인기 있는 건 고층이 아니라 저층입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승강기가 자주 멈추고 수리도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양이라고 해도 전기 사정이 썩 좋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고급 아파트들은 전기공급우선권을 가지고 있어 사정이 좀 낫다고 합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